[랜덤 액세스, 백남준의 비밀을 푸는 열쇠]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다. BTS가 랜덤 엑세스다. 아래 모니터 어떻게 변할 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랜덤 액세스(Random Access 임의접속)는 현대예술의 핵심어로 백남준의 비밀을 푸는 열쇠이기도 하다. 일종의 흔들기 내지 어지럽게 만드는 것이다. 순차적인 것을 뒤죽박죽 만드는 것이다. 무질서해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질서가 있다.
이런 것은 유럽에서는 나치즘의 일사불란한 한 줄 세우기를 경험한 후 나왔다. 동양에서는 '아니다 그렇다'이고 '그렇다가 아니다'이다(不然其然)와 같은 것이 이미 있었다. 백남준은 서양예술의 숨통을 뜨는 길은 동양사상에서 찾았다. 그는 서양의 주어진 게임을 이길 수 없다면 그 규칙자체를 바꾸라고 했다.
랜덤 액세스는 일종의 카오스이론으로 우연성이나 순환성이나 선형성을 기반으로 삶과 우주를 아우르는 다의적 개념을 가진다. 쇤베르크의 12음-기법,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원리, 프로이트의 무의식세계, 아르토의 부조리연극 그리고 현실 비틀어 삶의 선형으로 충격주기, 백남준의 부처 목 자르기, 스승의 넥타이 자르기, 피아노 바이올린 때려 부수기가 다 그런 것이다.
5개 국어를 능통한 백남준은 한국인 중에서는 서양을 정확하게 꿰뚫고 있었는데 백남준은 동양을 제대로 꿰뚫고 있는 존 케이지를 좋아했다. 그가 결정적으로 미국으로 건너간 것도 그 때문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동양의 선불교와 노장사상에 심취하여 존 케이지는 침묵도 소음도 그리고 모든 것이 음악이라는 동양사상에서 크게 깨달음을 얻고 그 유명한 4분33초를 작곡했다. 이것은 4분33초 동안 관중들이 모인 콘서트홀에서 피아노연주자가 피아노 앞에서 그냥 앉아있기만 하는 것이다. 바로 랜덤 액세스다.
이영철 백남준아트센터 관장에게 우리 주변에서 찾아 볼 수 있는 랜덤 액세스가 뭐나고 물으니 불교에서 말하는 옷깃만 스쳐도 인연(karma)과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전혀 예상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는 것인데 바로 인간의 의도성을 배제하고 신령한 영역을 일구어내는 것이다.
김수자의 보자기미학과 랜덤과 통한다. 보자기처럼 주머니에 넣고 다닐 수 있는 작은 것이 있을까 그러나 펼치면 우주공간보다 넓다. 서양의 고정관념으로 만들 수 없는 것 우리네 가옥구조가 그렀다. 이불을 개고 펴고 하는 불편은 있지만 그 공간을 최대로 활용할 수 있다. 무질서하고 황당하게 보이나 거기서 피어나는 미적 상상력을 생각 외로 기상천외한 세상을 낳는다.
이것을 한국적인 아름다움에 적용한다면 멋이고 한국의 멋은 엇이 없으면 안 된다. 즉 엇박자를 말하는데 이 박자는 틀을 깨는 파격의 미를 창조한다. 이는 모든 예술창조의 근간이기도 하다. 무질서해 보이나 그 속에는 내재율이 있다. 비-전형이고 비-선형이다. 샤머니즘의 성격이 농후한 대동굿에서 맘판놀이가 보여주는 황홀경이다.
보들레르에게 있어 엇은 바로 악의 미학이다. 선과 숭고함보다는 악과 우울함에서 미의 본질을 찾는다. 원효는 타락을 통해서 도를 깨닫는 것과 같은 원리다. 보들레르는 아름다움에서 악을 발견하여 서구의 모더니즘을 낳았다. 기존의 서구미의 모든 기준을 뒤집었다. 그것이 바로 랜덤 액세스이다.
랜덤 액세스는 책으로 비유하면 처음부터 읽는 책이 아니라 아무데도 펴서 읽어도 되는 책이다. 앞뒤가 없다. 과거와 미래가 없다. 마구 뒤섞인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백남준, 말(馬)에서 크리스토까지>을 읽으면 어디서 펴서 읽어도 상관이 없다. 백남준은 "책은 랜덤 액세스가 가능한 정보의 가장 오래된 형태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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