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문학을 사랑한 영국인 주교 리처드 러트
영국 더럼대학 동양박물관 한국실의 특별전 개막ㅇ 사업내용: 국립중앙박물관의 ‘영국 더럼대학 동양박물관 한국실 전담인력 채용 지원’을 바탕으로 첫 특별전 개최ㅇ 전 시 명: 함께 엮다, 리처드 러트와 조앤 러트의 한국에서의 삶과 유산 (Knitted Together: the Korean Lives and Legacies of Richard and Joan Rutt)ㅇ 전시장소: 영국 더럼대학 동양박물관 특별전시실, 한국실ㅇ 전시기간: 2024. 9. 28.(토) ~ 2025. 5. 4.(일)
국립중앙박물관(관장 김재홍)이 국외박물관 한국실 지원 사업의 일환으로 지원한 영국 더럼대학 동양박물관(Durham University, Oriental Museum)에서 특별전 개최라는 첫 번째 결실을 맺는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지원으로 채용된 동양박물관 최초의 한국실 전담 큐레이터가 개최한 첫 전시이다.
한국과 깊은 인연을 맺은 영국인 주교, 리처드 러트
이번 전시는 동양박물관의 한국컬렉션 형성에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한 영국의 성직자 리처드 러트(Richard Rutt, 한국명 노대영(盧大榮), 1925~2011)가 한국에서 보낸 20년의 시간을 집중 조명한다. 리처드 러트는 한국 전쟁 직후인 1954년 28세의 젊은 나이로 한국에 파견된 영국 성공회 선교사였다. 전쟁의 잔해로 가득한 서울에서 2년간 한국어 공부를 시작한 그는 1956년 경기도 안중에서 8년간 사제로 재직하며 지역사회와 긴밀히 교류했다. 이후 1965년 서서울 부주교, 1968년 대전 주교를 역임하며 1974년 영국에 돌아갈 때까지 목회 활동을 계속했다. 한편 그는 성미카엘신학교(성공회대학교의 전신) 교구목사, 휘문고등학교 영어교사 등 교육자로도 활발히 활동했다.
한국문학과 문화에 깊이 심취했던 한국학 연구자
리처드 러트는 영국왕립아시아학회 한국지부 소속으로서 국립중앙박물관과도 오랜 인연을 쌓았다. 러트와 국립중앙박물관의 초대관장 김재원 박사가 1960년대에 주고받은 서신을 보면, 왕립아시아학회가 박물관의 발굴조사를 지원하는 등 한국 문화유산 연구를 위해 협력했음을 알 수 있다. 박물관과의 교류는 러트가 한국을 떠날 때까지 지속되었는데, 박물관신문 1974년 3월호 기사에 따르면 러트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고려 말기의 문화”를 주제로 강의를 진행했다. 성공회 신부였던 그가 이러한 강의를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한국의 언어와 역사, 문화에 심취해 번역과 저술, 출판 활동으로 한국 문화를 해외에 알리기 위해 힘썼던 그의 노력이 담겨 있다.
리처드 러트는 한국 고전 문학 번역에 앞장서 한국학 연구에 큰 족적을 남겼다. 그는 경기도의 작은 마을 안중에서 한국의 시조를 처음 접하고 시조 번역을 시작했다. 이규보의 산문과 한시를 여러 편 번역하여 각종 시선집에 소개했으며, 1971년에는 총 264편의 시조를 번역한 『The Bamboo Grove』를 출간했다. 러트가 한국어를 읽을 수 없는 사람들에게 시조로부터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을 제공하고자 저술한 이 시조집은 한국어 문학 번역의 최고 역작 중 하나로, 현재 미국에서 영향력 있는 대표적인 시조집이자 이론서로 손꼽힌다. 러트는 한국 고전 소설에도 관심을 가져 구운몽, 인현왕후전, 춘향가를 번역한 『Virtuous Women』(1974)을 출간하기도 했다. 그는 한국을 떠날 때도 『동국이상국집』등 이규보의 여러 저작을 챙겨가 3년 만인 1977년 『백운소설』을 완역해 발표했다. 이러한 러트의 저서는 한국 문학이 영어권으로 확산되는 데 크게 기여했으며, 그 공로로 국민훈장 모란장과 다산문화상을 수상했다.
그의 아내 조앤 러트(Joan Rutt, 1919~2007) 또한 한국 요리책과 이방자 여사의 자서전 영문판인 『The World is One』(1973)을 편집했다. 이처럼 일찍부터 한국 문화를 이해하고 세계에 알리고자 했던 러트 부부의 특별한 관심과 애정은 K-컬처, K-문학, K-푸드가 선전하고 있는 오늘날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러트 부부의 한국에서의 삶과 유산을 소개하는 특별전
이번 특별전은 러트 기증품을 중심으로, 1950년대~1970년대 한국 사회와 생활상에 깊숙이 녹아들었던 러트 부부의 삶을 소개한다. 기증품에는 병풍, 가구, 문방구, 복식, 종교 물품 등 부부가 한국 거주 시절에 실제 사용했던 생활용품부터 선물 받거나 수집했던 작품까지 다양하게 포함되어 있다. 특히 이번 전시에는 리처드 러트의 흑백사진 자료가 풍부하게 공개된다. 리처드 러트는 한국에 머무르던 20년의 시간을 사진으로 촬영하여 남겼다. 이들 사진에는 성직자로서의 역할, 한국 사람들과의 친밀한 관계, 한국 문화에 대한 학문적 관심이 다채롭게 나타난다. 이 사진들은 마치 타임캡슐처럼 당시 한국의 생활상이나 사라져가던 풍습을 생생하게 담고 있는 20세기 중후반 시각 자료로 의의가 크다. 한편 이번 특별전과 연계하여 리처드 러트의 미완성 자서전도 출간되어 전시의 의미를 한층 더할 예정이다.
동양박물관에 한국실이 만들어지는 계기가 된 기증품
더럼대학 동양박물관은 런던을 제외하면 영국 내에서 가장 많은 한국 문화유산을 소장하고 있는 곳으로, 러트 부부는 동양박물관 한국컬렉션의 가장 주요한 기증자이다. 이들의 기증으로 더럼대학의 한국컬렉션이 두 배 이상 확대되었고, 한국실이 독립된 전시 공간을 확보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1991년 첫 기증에 이어 2011년과 2024년에도 추가 기증이 이루어졌으며, 이번 특별전에는 올해 신규 기증품이 최초로 공개되었다.
러트 부부의 기증은 동양박물관이 한국실을 자체 설치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더욱 의의가 크다. 상당한 규모와 다양성을 갖춘 러트 기증품을 전시하기 위해 별도의 상설 전시 공간이 필요했고, 2013년 처음으로 동양박물관에 단독 한국실이 문을 열었다. 이를 시작으로 동양박물관은 한국컬렉션을 지속적으로 확충하고 관련 행사와 대학 연계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기획하고 있다.
김재홍 국립중앙박물관장은“국립중앙박물관은 지역별, 기관별 특성에 맞는 한국실 지원을 강화하고 있다. 영국 더럼대학 동양박물관의 사례와 같이, 해외 유수의 대학 박물관에 대한 지원은 관련 연구 활성화와 대학 및 지역사회 구성원의 참여도 확대에 기여하는 바가 크다. 앞으로도 국립중앙박물관은 세계 각지에 미래의 잠재적 한국 문화 애호가들을 길러내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2024년 국립중앙박물관의 지원으로 신규 채용된 동양박물관 한국실 전담 큐레이터는 소장품 연구 및 신규 입수 확대를 바탕으로 2026년을 목표로 한 한국실 개편을 추진할 예정이다. 이번 전시에 이어 한국실 지원 성과가 다시 한번 빛날 수 있으리라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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