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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랩소디

[백남준] 세계화 초기, 1992년 그의 회갑전에서 남긴 정신유산

탄생 90주년 백남준 축제 <백남준 효과>, '과천국립미술관'에서 내년 226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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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전 백남준이 우리에게 보낸 강력한 메시지

탄생 90주년 백남준 축제 '백남준 효과' 전, 과천국립미술관에서 내년 2월 26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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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이번 백남준 축제, 백남준 전 위해 만든 '아카이브 포스터', 그의 여러 활동이 담겨있다.

국립현대미술관(관장 윤범모)은 백남준(1932~2006)의 예술적 성취와 영향을 조명하는 대규모 기획전 '백남준 효과'를 내년 226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과천)에서 연다. 이번 전은 1992년 과천국립미술관에서 열린 백남준 전시 30년 주년이라 더 의미가 깊다.

이번 기획전은 1992'회갑전'을 재해석하고 그의 예술적 성취와 영향을 조명했다. 이번에 대표작 '나의 파우스트'가 소개되고 90년대 혜성 같이 나타난 백남준 영향을 받아 다양한 실험을 시도한 전수천 작가 등 25명의 작품도 선보인다. 지난 915일 백남준의 <다다익선>을 성공적 재가동 이후 전시라 진정 백남준 축제가 되었다.

윤범모 관장은 1985~1995년 뉴욕 등에서 함께 지낸 백남준을 회고하면서 탄생 90주년 맞아 그가 90년대 국제화 시대 활약이 대단했죠. 1992년 과천 전, 1993년 대전 엑스포, 1995년 광주비엔날레까지 한국미술 정체성에 큰 영향을 끼쳤어요. 이번 전를 계기로 <백남준학>이 전 세계적으로 마련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라고 밝혔다.

비디오아트, ''''이 없다

[사진] 1992년 과천국립미술관에서 열린 '전시 도록과 포스터'. 독일어판에는 "백남준은 동아시아의 전통과 서양의 스타일을 마치 하나가 된 것처럼 결합한 노마드 예술가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아시아적 가치에 기울어져 있다"고 평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이번 전은 4부로 돼 있다. 1부는 세계 속 한국미술의 위치, 2부는 문명사를 재해석한 '나의 파우스트', 3부는 TV 아트와 관련된 달과 위성 아트, 4부는 그의 가족과 철학에 관련된 정체성을 소개한다. 이번 전은 1992년 과천에서 열린 '백남준 회갑전'의 리메이크다.

그때 당시 전시 제목이 '백남준:비디오때·비디오땅'이었다. 여기서 ''는 시간을, ''은 공간을 의미한다. 여긴엔 백남준의 예술철학이 담겨있다. 비디오아트란 시공간을 넘어서는 유비쿼터스 예술이고, 과학과 예술을 결합된 '확장된 매체 미술'이라는 것이다.

미국 포스트모더니즘 권위자 프레드릭 제임슨 ⓒ 위키미디어 코먼스

90년대 백남준의 이런 개념을 간파한 사람은 바로 미국 포스트모더니즘 권위자 '프레드릭 제임슨'이다. 미술평론가 김홍희 저서 <굿모인 미스터 백>에 인용돼있다. 그는 백남준의 비디오아트를 "시공간의 궁극적인 경계선을 탐색하는 유일한 예술"이라고 말하면서 "백남준은 포스트모더니즘의 가장 징표적 인물 중 하나"라고 평했다.

스위스 시계
노스탤지어는 피드백의 무한제곱

백남준은 비디오아트를 공간예술보다 시간예술이 봤다. 그래서 평생 시간에 대해 고민했다. 이번에 선보인 '스위스 시계''노스탤지어는 피드백의 무한제곱'이 그런 작품이다. 전자는 시계와 TV를 연결해 시간의 흐름을 보여준다. 후자는 우리가 시대를 연대기로 나눠 볼 게 아니라, 문명 이전과 모더니즘 이후를 통째로 묶어 봐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1992년 백남준, 우리에게 준 '자신감'

[사진] 1992816일 도올과 백남준이 모 호텔에서 인터뷰하는 장면 김용옥

1992년 과천국립미술관에서 열린 백남준 전시에서 세계화 시대를 맞아 백남준이 우리에게 남긴 말은 '자신감을 가져라'. 도올은 전시 중 백남준과 인터뷰했다. 도올 선생이 서구가 어떠냐고 묻자, 백남준은 "내가 서양에 가보니 다 쓰레기야!"라는 폭탄선언을 한다. 그땐 빈말로 들렸지만, 생각해 보면 맞다. 우린 지금 한류 전성시대를 살고 있지 않나.

장영실 1990
김유신(1992)

1992년 과천 전에 세종대왕 때 발명왕 '장영실(1990)'과 첨성대를 건립한 '선덕여왕(1992)' 김유신 장군(1992)이 등장했다. 이는 한국인이 주자학만 아니라 과학과 천문학을 사랑한 민족임을 증명하려 애썼다. 우리의 저력을 보여주려 한 몸짓이다. 다음 해 '베니스'에서 '칭기즈칸 복원(1993)'도 선보였는데 이도 몽골계인 한국인의 위용을 간접적으로 과시한 작품이다.

TV 아트로 서양에서, 깡패 노릇

김유신(1993)

[사진] 백남준 I '칭기즈칸 복원(1993)' 217×110×211cm. 백남준아트센터 소장. '피버옵틱(1995)'[오른쪽]

백남준은 실크로드를 상상하면서 1974년에 인터넷 개념을 창안했고 이를 '전자초속도로'이라고 명명했다. 위 작품은 그런 개념을 전자유목민 모습으로 형상화했다. 13세기에는 빠른 말로 칭기즈칸이 세계를 제패했듯 앞으로는 정보와 지식 빠르게 전하는 인터넷 속도가 인류문명의 좌우한다고 본 것이다.

백남준은 한국이 작은 나라지만 정보화에는 유리하기에 새천년엔, 세계적으로 더 주목 받을 거로 봤다. 그래서 20000'호랑이는 살아있다(위성아트)'를 전 세계에 방영했다. 또한, 세계권력이 교육열 높고 변화에 민감한 유라시아 중심으로 재편될 것으로 내다봤다.

이런 발상은 하루아침에 나온 게 아니다. 그는 문화 전략가로 자신이 서양 미술판에 파투를 내는 '문화 깡패'라 자처했다. 30살에 "내가 '황색재앙' 문화 칭기즈칸이 되어 서구미술을 다 쓸어버리겠다고 장담했다. 1993년 동아일보 칼럼에서 백남준는 "TV 아트가 점잔 빼는 서구미술에 '예술 깡패'가 될 거다"라고 술회했다.

'TV 아트' 상상력 확대

TV 알

[사진] 백남준 I 'TV ' 멀티스크린 1994. 알 이미지와 태아 품은 여성 이미지가 교차한다

이 말은 백남준 'TV 아트'가 서양에서는 듣도 보도 못한 생소한 아트라는 것이다. 기존의 매체를 무한대로 확장한다는 의미도 내포된다. 그러다 보니 'TV (1994)' 같은 작품이 나왔다. 생명의 근원을 다뤘다. 백남준은 이런 TV 아트 상상력을 통해 '알과 달, 비디오와 미디어, 위성과 인터넷, 디지털과 레이저'를 긴밀하게 연동시켰다.

블루 네온 부처

그런 면에서 이번에 'TV 부처'는 변형한 '눈 덮인 부처', '블루 네온 부처' 등은 적절했다. 그리고 광대를 코믹하게 묘사된 '로봇 크라운''에스키모인'도 등장한다. 그냥 로봇이 아니라 우주와 접촉하는 전자 인간의 모습이다. 그의 '비디오아트'는 이렇게 통신·유통을 기반으로 하는 '전자조각''정보 아트'로 나갔다.

동서 공존 고민한 사상가

무제

[사진] 백남준 I '무제' 1994. 백남준아트센터 소장품. 백남준이 '니체' 책을 읽고 감동 후 그 소감을 적은 서예

'이수연' 학예연구사가 이 전을 기획하면서 백남준을 비디오 작가만이 아니라 문명의 방향을 제시한 사상가, 전략가의 면모도 부각시켰다. '운명애'라는 단어로 시작하는 위 작품은 이 학예연구사의 설명에 의하면 백남준이 니체 책을 읽고 영감을 받아 만든 텍스트 아트란다.

니체는 <우상의 황혼>에서 "내 철학은 최고 가치를 탈() 가치화하는 것"이라 했는데 백남준과 생각이 같다. 니체는 "서양 신은 죽었다"고 했듯, 백남준은 "서양 미술은 죽었다"고 했다. 결국, 예술가나 철학자의 역할은 그 시대의 우상을 파괴하는 것이다. 그래야 진정한 창조가 나온다고 봤다. 백남준은 왜 서양인이 애지중지하는 피아노를 그렇게 부쉈겠는가?

또 백남준이 심취한 선불교 경전인 '벽암록'(18)을 직접 옮겨적은 작품도 있다. 이 경전은 혜충국사가 입적을 하면서 당나라 황제 대종(代宗)과 나눈 마지막 문답이다.

여기에 '무봉탑'(無縫塔) 이야기도 나온다. 간단 소개하면 황제가 "내가 당신에게 뭘 해드리면 좋겠소?"라고 물으니 혜충국사는 "절 위해 무봉탑을 세워 주십시오"라고 답한다. '무봉탑'이란 형체도 이음새도 없고,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탑이다. 이 말은 결국 황제가 마음을 비우고 백성들에게 자비를 베풀어야 나라가 편안해진다는 메시지다.

백남준 제단, '나의 파우스트'

나의 파우스트(1989-1991)

[사진] 백남준 I '나의 파우스트' 높이 2.6m, 혼합 매체, 모니터 251989-1991. 13(1. 환경 2. 농업 3. 경제학 4. 인구 5. 민족주의 6. 정신 7. 건강 8. 예술 9. 교육 10. 교통 11. 통신 12. 연구 개발 13. 자서전) 6점 소개

1992년 전시 때 선보인 '나의 파우스트(제단)'가 이번에 총 13점 중 6점이 나왔다. 국립이 아니면 이런 건 불가능했다. 9인치 TV 25대와 레이저 디스크 플레이어 3대를 결합한 작품이다. 당대 '농업, 인구, 통신, 교통, 예술' 등 정치·사회·문화의 핵심을 주제로 했다.

이 작품은 인간 내면에서 벌어지는 선악의 갈등을 묘사한 괴테의 연극 <파우스트>에서 가져온 것이다. 여기 나오는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의 농간 속 방황하는 인간을 생각하며, 13개 테마를 가지고 백남준이 생각하는 인류가 나가야 할 문명의 방향을 제시했다.

백남준 가족사진과 이정성 소장품

[사진] 백남준 I '비밀이 해제된 가족사진' 1984, 종이에 에칭, 29.7×37.5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여기 10명의 여성이 등장하는데 백남준은 영어로 어머니, 누이, 큰어머니, 큰 사촌 누이 등 주석을 달다. 집안의 개방적 분위기가 느껴진다.

끝으로 백남준의 특이한 가족사진 이야기해본다. 위를 얼핏 보면 남녀가 뒤섞여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다 여자다. 한국도 이제는 가부장제를 버리고 여성 중심으로 나아가야 함을 암묵적으로 제시했다. 갓을 쓴 사람은 백남준 어머니다. 백남준은 가족사진마저 기존의 방식을 뒤엎어 파격적 실험물로 만드는 걸 즐겼음을 알 수 있다.

백남준 가문을 보면 부친 '백낙승'은 니혼대 상대와 메이지대 법대를 나온 엘리트였다. 백남준은 이런 분위기 속 서양문물을 쉽게 접했고, 통념을 깨는 자유로움 속에서 자랐다. 동시에 굿과 같은 한국전통문화도 체험했다. 그러다 보니 세계적이면서도 한국적인 작가가 되었다.

이정성 대표
이정성 백남준 메가트론 작품 앞

이번에 1988년부터 백남준과 평생 작업을 같이한 '이정성' 아트마스타 대표 소장품도 선보인다. 백남준과 작업 중 얻은 지시문, 사진, 설계도 등을 볼 수 있다. 이번에 눈길을 끄는 건 백남준 후기 3점의 야심작 '메가트론' 사진. 그러나 이 대표는 서울 한강 마포 강변에 세우려 했던 메카토론은 백남준이 건강문제(뇌졸중)로 중단됐다며 안타까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