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MMCA, 관장 윤범모)은 백남준의 예술적 성취와 영향을 조명하는 대규모 기획전시 《백남준 효과》를 11월 10일(목)부터 2023년 2월 26일(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열다. <작성 중>
오마이뉴스 관련 기사 http://omn.kr/21plh
1992년 30년 전(백남준 과천 회갑 전시) 때 백남준이 우리에게 남긴 소중한 메시지는 <자신감 가져라(도올과 1992년 인터뷰에서 "서구에 가 보니까 다 쓰레기야")> 그는 전 세계를 누비면서 전 세계 최고 작가들을 경험하면서 내린 결론이다. 이제는 우리가 이 바톤을 이어받아 정말 세계로 나가야 한다. 지금 정치가 엉망(무정부 상태)이라 그렇지 이 장애물만 잘 제거하면 확실하게 잘 할 수 있다. 그리고 남북평화를 조속히 구현해야 한다. 우리가 미국과 일본마저도 도와줄 실력을 키워야 한다. 그래야 미국과 일본도 지금처럼 방해하지 않고 한국통일에 협조한다.
백남준 1992년 과천에서 열린 회갑전 제목이 《백남준: 비디오때·비디오땅》이다 이런 개념을 미국의 포스트 모더니즘 권위자인 '프레드릭 제임슨' 문학평론가(사르트르 연구로 예일대에서 박사 받다)는 1993년에 이렇게 풀이했다 *"비디오는 시공간의 궁극적인 경계선을 탐색하는 유일한 예술이다. 백남준은 또한 가장 포스트 모더니즘의 징표적 예술가 중 하나이다"
여기서 '때'는 시간을, '땅'은 공간을 암시한다. 백남준이 이런 제목을 붙인 것은 비디오아트는 시공간을 넘어서는 유비쿼터스 예술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아래 92년 백남준 전시 도록 및 포스터> *출처 프레드릭 제임슨의 <해석없는 책읽기-포스트모더니즘과 비디오 텍스트>
1992년 30년 전(백남준 과천 회갑 전시) 때 백남준이 우리에게 남긴 소중한 메시지는 <자신감을 가져라(도올과 1992년 인터뷰에서 "서구에 가 보니까 다 쓰레기야")> 그는 전 세계를 누비면서 전 세계 최고 작가들을 경험하면서 내린 결론이다. 이제는 우리가 이 바톤을 이어받아 정말 세계로 나가야 한다.
지금 정치가 엉망(무정부 상태)이라 그렇지 이 장애물만 잘 제거하면 확실하게 잘 할 수 있다. 그리고 남북평화를 조속히 구현해야 한다. 우리가 미국과 일본마저도 도와줄 실력을 키워야 한다. 그래야 미국과 일본도 지금처럼 방해하지 않고 한국통일에 협조한다.
[한국인의 정체성 선언] 백남준 과천 회갑전(1992년)에서 우리에게 자신감을 넣어주려 했다. 그해 도올과 인터뷰에서 "서양에 가보니 다 쓰레기야"라는 발언을 하다. 1984년 백남준의 "예술은 고등사기다"라는 선언만큼 파격적이다.
"서양에 가보니 다 쓰레기야!" - 백남준 1992년 회갑 때 도올과 인터뷰에서, 그의 발언은 늘 파격적이고 스마트하고 통쾌하다. " 선진이라는데 가보면 후진도 있고, 후진이라는데 가보면 선진도 있지"
"백남준 꼭 30년 전 1992년 과천 회갑 전시에서 한국인에게 자신감을 넣어주려고 애썼다. 세종대왕 때 발명왕 장영실과 첨성대를 만든 선덕여왕 등 한국인의 과학과 천문학을 사랑했던 영웅들을 부각시켰다. 아래 세번째 사진 1992년 작 선덕여왕 그리고 세종 때 발명왕 장영실 그리고 기마민족의 기상과 위용을 살려내 한국인의 무한한 가능성을 세계에 널리 알렸다"
“미술작품의 매력이란 게 본래 남이 안 갖는 것을 소유-독점할 수 있다는 허영심을 충족시키고 땅이나 주식과는 달리 유산과정에서 상속세를 사기 칠 수 있다는 것 아닙니까? TV(비디오)라는 것은 대중들이 모두 공유할 수 있고, 보기만 하고 소유할 필요가 없는 것이니 상품성이 적을 수밖에요. 그런데 80년대 들어 제 비디오 작품에도 손때를 묻히고 의도적으로 영원성을 불어넣으려 하니까 좀 팔리기 시작했습니다…자본주의 사회에서 예술가의 존재 양식이란 돈도 벌면서 "장난도 치자는 것(공짜를 많이 만드는 것)"이지요.” (백남준 인터뷰, 조선일보 1992.1.28, 《백남준·비디오때·비디오땅》 전시관련)
<자료> 백남준의 <칭기즈 칸의 복권>(1993)은 백남준이 황금사자상을 수상하였던 1993년 베니스 비엔날레 독일관에 출품한 작품이다. 칭기즈 칸은 잠수 헬멧을 쓰고 망토를 두른 채 여러 대의 텔레비전 모니터를 가득 싣고 말 대신 자전거를 탄 모습이다. 이 작업은 동서양을 잇는 실크로드가 광대역 전자 고속도로로 대체된 것을 표현한 작품으로, 네온으로 된 문자와 기호들은 전자 고속도로를 통해 정보들이 빠르게 압축되어 전달할 수 있는 기술적 가능성을 암시한다.
백남준은 유례없는 속도로 유럽을 휩쓸었던 칭기즈 칸이라는 상징을 통해 기마병의 빠른 속도를 이용하여 세계를 재패하였던 아시아의 과거와 미래의 전자 고속도로를 연결하였다. 인터넷이 가져올 새로운 패러다임의 미래를 보여주는 백남준의 이 비디오 조각은 베니스 비엔날레에서의 수상과 함께 한국관의 설립으로 이어지는 1990년대 뜨거웠던 한국 세계화의 꿈과 맞닿아있는 작품이다.
백남준의 예술적 성취와 영향을 조명하는 대규모 기획전, 103점 출품 [1] <나의 파우스트> 등 백남준의 80년대 말~90년대 초 대표작 43점 [2] 구본창, 박이소, 이불, 전수천 등 한국 작가 25명의 90년대 대표작 60점 [3] 미술관과 백남준이 기획한 《백남준·비디오때·비디오땅》(1992), 《휘트니 비엔날레 서울》(1993)의 주요 주제와 1990년대 한국 미술계 가늠할 아카이브 자료 [4] 11월 10일(목)부터 2023년 2월 26일(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은 백남준(1932-2006) 탄생 90주년을 기념해 ‘백남준 축제’를 진행하고 있다. 앞서 9월 15일 백남준의 최대 규모 비디오 아트 작품 <다다익선>을 성공적으로 재가동하였고, 아카이브 기획전 《다다익선: 즐거운 협연》을 선보였다. 《백남준 효과》에서는 백남준이 한국 현대미술 발전과 후대 작가들에 끼친 영향을 비추어 백남준의 예술적 성과를 드높인다.
윤범모 관장, 어제 미국 출장에서 돌아오고 80년대 뉴욕에서 백남준과 같이 시간을 보내기도, 다다익선 재가동 백서도 발간 예정이라고 백남준 작품 저작권자하쿠다 켄으로부터 다다익선 재가동 축하의 글도 받았다고, 이번 전시 '이수연' 학예연구사 준비를 많이 했네요.
이번 전시는 백남준의 비디오아트 작가만이 아니라 전방위로 한국작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줬다는 점에 초점을 맞췄다고 과학과 접목한 백남준의 <예술매체의 확장> 등을 전시 포인트를 설명한다. 휘트니비엔날레 서울(동성애 등 다원주의가 주제, 1993)에 대한 내용은 보도자료와 다르게 거의 나오지 않네요. 30년 전 비디오때 비디오땅(1992) 도록 등 자료가 있었으면 더 좋았는데 아쉽다.
《백남준 효과》는 비디오 아트의 선구자인 백남준이 1984년 35년 만에 귀국한 후 1990년대 한국 현대미술의 발전에 직·간접적으로 끼친 영향을 조명한다. 또한 백남준이 국립현대미술관과 함께 기획하였던 역사적 전시 《백남준·비디오때·비디오땅》(1992), 《휘트니 비엔날레 서울》(1993)의 주요 주제들을 통하여 1990년대 한국 미술의 상황을 새롭게 살펴볼 것이다.
당시 한국 미술계는 세계화와 정보사회 도래라는 급격한 정세변화 속에서 ‘한국의 정체성’을 새로이 발굴하고, 과학과 접목한 ‘예술매체의 확장’을 고민하였다. 이번 전시에서는 이러한 고민이 담긴 1990년대 한국 시각 문화의 정체성을 백남준과 당시 활동한 한국 작가들의 작업을 통해 들여다본다. 이를 통해 비디오 아트로 1990년대 국내 미술계의 흐름을 주도하여 동시대 미술에까지 큰 영향을 미친 백남준이 꿈꿨던 비전을 조명한다.
전시는 5개의 섹션으로 나뉜다. 각 섹션의 서두에는 백남준이 꿈꾸었던 이상과 비전이 드러난 실제 인터뷰 및 칼럼 일부를 제시하여 각 섹션별 주제를 환기한다.
[섹션1] 국가와 국민(의 정체성), 국제적인 행사들과 세계화의 꿈으로 세계화의 물결 속에 새로운 방식으로 등장한 정체성의 문제들을 다룬다.
백남준의 주요 작품으로 1993년 베니스 비엔날레 수상작이자 한국 세계화의 꿈을 담은 <칭기즈 칸의 복권>(1993)을 비롯해, <장영실>(1990), <김유신>(1992) 등이 출품된다. 또한 외교·문화적 교류 등에 적용되는 국제사회의 힘의 논리를 비판적 시각으로 바라본 윤동천 <동그라미 날뛰다>(1993)와 세계화의 바람 속에 변해가는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혼합매체로 표현한 구본창 <아! 대한민국>시리즈(1992-1993) 등의 작품이 전시되어 세계화 속 대두된 문화적 이슈와 당시 미술계의 분위기를 엿볼 수 있다.
<자료> 백남준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개최한 대규모 회고전 《백남준·비디오때·비디오땅》(1992) 전시를 전후하여 한국 관람객들을 위하여 친숙한 역사적인 인물들을 로봇으로 재탄생시켰다. 선덕여왕, 바보온달, 김유신을 비롯한 한국 전통설화의 인물들과 위인들을 주제로 한 로봇 시리즈가 제작되었다.
<장영실의 꿈>(1970년대)은 조선시대 과학자인 장영신의 발명 정신과 현대의 최첨단 과학 문명의 만남을 시도한 작품으로, 장영실을 의미하는 비디오 로봇과, 발명품으로 보이는 비디오 조각들로 구성되어 있다. <김유신>(1992)은 말을 타고 있는 김유신 장군의 모습을 구형 TV 모니터, 전화기, 라디오 등의 통신매체로 형상화 하고있는 작품으로, 기술과 인간, 문명의 조화를 상징한다. 백남준은 아직 비디오 조각에 익숙하지 않던 1990년대 한국의 관람객들이 자신의 작품 앞에서 오래 머무르며 즐기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역사적인 인물들의 초상을 효과적으로 차용했다.
[섹션2] 근대화의 길, 과학과 기술의 발전, 미래를 향한 낙관 등을 다루며, 1990년대 말 본격적인 정보사회가 도래하기 직전 한국 미술계가 실험하였던 예술과 과학의 만남을 이야기한다. 주요 작품으로 동시대에 떠오르는 사회적 주제를 바라보는 백남준의 세계관을 첨탑에서 이미지와 과다한 정보 흐름이 쏟아지듯 표현한 <나의 파우스트>(1989-1991)가 있다.
한편으로 조각과 비디오를 합체한 파우스트 시리즈의 총체성은 섹션3의 혼합매체와 설치의 바람을 예견하기도 한다. 이와 함께 양주혜 <그래도, 남아있는 것들...>(1994/2022), 홍성도 <시간 여행>(1995/2002), 전수천 <방황하는 혹성들 속의 토우-그 한국인의 정신>(1994-1995) 등 새로운 기술이 만들 신세계의 가능성에 대한 상상과 실험이 반영된 당대 한국미술 작품들을 선보인다.
[섹션3] 혼합매체와 설치, 혼성성, 제3의 공간과 대안적인 공간을 다룬다. 사회적인 변혁기에 접어든 신세대의 문화적 감수성과 새로운 기술매체 실험을 다양한 혼합매체 작업들을 통해 엿볼 수 있다.
주요 작품으로 복사기를 이용해 기존 이미지를 왜곡, 변형하여 시각예술의 표현영역 확장을 꾀한 석영기 <앤디 워홀의 옷>(1992)을 비롯해, 대중문화 속 이미지를 회화로 옮겨 새로운 의미와 맥락을 부여한 이동기 <프로그램>(1992-1993), 달을 TV로, TV를 달로 은유하며 새로운 매체와 가장 오래된 매체를 넘나드는 백남준의 <달은 가장 오래된 텔레비전이다-1965-67>(1996) 등이 있다. 또한 홍승혜 <종이 풍경>(1994/2022), 이상현 <잊혀진 전사의 여행>(1988/2022) 등 현대의 기계 문명을 이용한 매체 실험을 넘어 주변부와 중심부, 고급과 대중의 경계를 흐트러트리는 작품들을 소개한다.
[섹션4] 개인의 탐색, 소수(정체성), 다원성 등을 주제로 정체성의 고민이 곧 개인의 욕망과 자아의 탐색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주요 작품으로 백남준의 작가로서의 개인사의 출발을 보여주는 <비밀이 해제된 가족사진>(1984)을 비롯하여 백남준 <TV 알>(1994), 이불 <갈망>(1989), 문주 <이름 없는 원>(1997/2022), 김해민 <춘>(1994/2022), 이수경 <다중의 나>(1992) 등이 있다. 당대 문화의 주요 이슈였던 개인 욕망의 발현과 자기표현의 시도를 투영한 작품들을 통해 당시 한국 시각 문화의 정체성을 보다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섹션5(아카이브)] 1990년대 시대상을 보여주는 대중매체 자료 및 역사자료와 함께 《백남준·비디오때·비디오땅》(1992), 《휘트니 비엔날레 서울》(1993)기관자료, 1993년 베니스 비엔날레, 1995년 리옹 비엔날레를 비롯하여 백남준이 참여하였던 주요 전시들의 전경이 담긴 영상 등이 공개될 예정이다.
백남준은 세종대왕 시절 발명의 천재 장영실을 가장 존경했다 그에 대한 오마주 작품이다 그리고 그가 발명한 측우기다.
이런 작품은 전자초고속도로와 동서문화의 교류등을 연상시킨다. 유목민이 결국 세계를 지배한다는 의미인가 그러나 모든 방식이 수동식이 아니라 전자방식이라는 점이 특징이다. 동서가 하나로 연결시키려면 통신과 유통과 상호소통방식이 발달되어야 함을 간접적으로 언급하다.
그런데 30년 전에 이런 작품을 발명했다는 것은 믿기 어려운 일이다. 지금 우리가 봐도 너무 첨단화된 현대적 예술품이다. 그는 기계와 그 부품을 마치 종이처럼 자유자재로 제작하는데 전혀 주저함이 없이 엄두를 내었다니 믿어지지 않는다.
백남준은 1990년대 작품에서 서양영웅 못지 않는 한국영웅발굴에 심혈을 기울이다. 그래서 나오는 주인공이 장영실, 다산 정약용, 선덕여왕(첨성대의 설계자), 김유신 등등 나온다.
백남준의 <김유신>, 백남준은 왜 김유신을 존경한 것인가? 김유신은 가야 사람이다(신라에 귀순한 가야 왕족의 후손) 신라에 와서 그 능력을 발휘하다. 그 뒷이야기가 흥미롭다 김유신과 첨단통신 어떻게 연결해야 하나 백남준이 김유신에게 관심을 가진 것은 그가 보다 통합적 인간형이라 그런 것인가?
이탈리아 위키에는 김유신을 이렇게 소개한다 // 김수현 장군과 신라 진흥왕의 동생인 김숙흘종의 딸 만명의 아들이다. 서기 595년 진천군 계양에서 태어나 15세에 화랑 기사가 되었고, 18세에 막강한 검의 천재이자 고대 한국 의 가장 위대한 장군이자 지도자 중 한 사람이었다 . 34세의 나이로 신라 의 모든 군대를 통솔했다. 김유신은 한국의 삼국(고구려, 백제, 신라)을 통일하는 데 이바지했으며, 6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살아남은 몇 안 되는 화랑 중 하나였다.
'인플럭스 하우스(In-Flux House)' 1993 모니터를 통해 '플럭서스 퍼포먼스의 이미지'가 다채롭게 편집됐고 레이저 디스크의 지붕이 백남준의 엉뚱한 발상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그의 군사적, 정치적 권력과 영감 받은 지혜는 그를 한국인에게 신비로운 인물로 만들었다. 673년에 돌아가셨고 오늘날에도 그의 무덤은 한국에서 매우 중요한 기념물이며 많은 사람이 그것을 숭배한다. 선택과 가능성이 있는 동안 그는 통일 신라의 왕이 되지 않고 말년까지 그를 섬기는 일을 계속했다. 그는 사후에 극도의 존경의 표시로 왕으로 선포되었다. 그의 생애와 행적은 한국의 주요 서사시와 역사서인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기록되어 있다.
1993년 작 위 작품은 미니 TV 모니터 28개에서 다양한 이미지가 나와 <미래의 집> 풍경을 보여준다.
옷에 단추가 많듯이 백남준 작품에는 채널이 많다 모바일 시대에 맞게 매우 역동적이다. 정말 전자 말이 힘차게 달리고 있는 것 같다 첫 작품 인플러스 하우스 1993년 다채널 시대 인터넷 개념이 들어가 있다
<백남준 과학 지식과 정보와 통신과 유통과 화폐순환을 독점하려는사회를 극복하는 공유 사회(공론장)에 대한 유토피아를 평생 가지고 살았다. 디지털 시대에 와서 정말 신기한 건 자본주의가 극도로 발달했음에도 백남준의 "저비용 철학" 즉 공짜(자본 골리기)가 많아졌다는 것이다 디카가 대표적>
불교는 사실 서양 종교다 불교 중 선불교는 매우 동양적이다. 선불교 문답 중 가장 유명한 텍스트(선사들 어록과 일화가 담긴 '벽암록' 18계명 )인데 백남준은 이 문구를 즐겼다. 이걸 백남준 친필로 옮겨적어 그의 예술동료인 바우어마이스터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제목: 충국사 무봉탑
이영철 해설: 백남준은 특히 '벽암록'(18번)에 나오는 '무봉탑'(無縫塔)을 좋아했다. 이 이야기는 혜충 국사가 입적하기 직전 당나라 대종(代宗)황제와 하직할 때에 나눈 대화로 황제가 "내가 국사를 위해서 뭘 해드리면 좋겠습니까?"라고 물으니 국사는 "저를 위해 이음새가 없는 무봉탑을 세워 주십시오"라고 답한다.
형체도 이음새도 없고,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무봉탑이라. 이는 결국 황제가 마음을 비우고 우주의 모든 법계를 하나의 탑으로 세워 백성들에게 자비를 베풀어 그들을 편안케 하라는 뜻이다. 하여간 이런 선문답에 매료된 백남준은 예술동료 마리 바우어마이스터에게 병풍에 직접 한자로 써서 선물할 정도였다. 가장 멀리 보고 가장 깊게 사유하기
巖錄 十八則 忠國師無縫塔
擧. 肅宗皇帝 問忠國師 百年後 所須何物,
國師云 與老僧 作箇無縫搭,
帝曰 請徙搭樣 國師良久云 會麼, 帝云不會.
國師云 吾有付法弟子眈源 却此事 請詔問之.國師遷化後 帝詔眈源
問此意如何.
源云 湘之南(兮)潭之北(雪竇着語 獨掌不浪鳴.)
中有黃金充一國. (雪竇著語云, 山形杖子.)|
無影樹下合同船 (雪竇著語云, 海晏河清.)
瑠璃殿上無知識(雪竇著語云,拈了也.)
|無縫塔見還難. 澄潭不許蒼龍蟠層落落,影團團,千古萬古與人看,
이수연 학예연구사의 설명인데 이 작품은 백남준 니체 심취했을 때 독서 후 감상을 쓴 글이라고 들었는데 자세하게는 생각이 안 난다. 니체는 "서양 신은 죽었다(1885)"고 했고 78년 후 백남준은 "서양 미술은 죽었다(1963)"고 했다. 서로 통한다.
예술가나 철학자의 역할을 결국 그 시대의 우상을 파괴하는 것이다. 백남준은 얼마나 피아노를 많이 때려 부셨는가 그 때문이다 " (나의 철학은) 최고 가치를 탈가치화하는 것이다. 모든 시대의 현자들은 삶에 대해 의미 없는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니체의 《우상의 황혼》
백남준 판화 작품 살 갑다. 2번째 작품은 '주역'을 주제로 한 것이다.
벽난로 형식 혹은 TV 형식의 작품 작품 주변에 사자성어가 적혀 있다 이 작품의 비밀은 이런 문장에 대한 해설을 통해서 쉽게 풀수 있을 것 같다.
<TV를 통해 공유사회 유토피아 건설에 관심이 높았다>
“미술작품의 매력이란 게 본래 남이 안 갖는 것을 소유-독점할 수 있다는 허영심을 충족시키고 땅이나 주식과는 달리 유산과정에서 상속세를 사기 칠 수 있다는 것 아닙니까? TV(비디오)라는 것은 대중들이 모두 공유할 수 있고, 보기만 하고 소유할 필요가 없는 것이니 상품성이 적을 수밖에요. 그런데 80년대 들어 제 비디오 작품에도 손때를 묻히고 의도적으로 영원성을 불어넣으려 하니까 좀 팔리기 시작했습니다…자본주의 사회에서 예술가의 존재 양식이란 돈도 벌면서 "장난도 치자는 것(공짜를 많이 만드는 것)"이지요.” (백남준 인터뷰, 조선일보 1992.1.28, 《백남준·비디오때·비디오땅》 전시관련)
<백남준 과학 지식과 정보와 통신과 유통과 화폐순환을 독점하려는사회를 극복하는 공유 사회(공론장)에 대한 유토피아를 평생 가지고 살았다. 디지털 시대에 와서 정말 신기한 건 자본주의가 극도로 발달했음에도 백남준의 "저비용 철학" 즉 공짜(자본 골리기)가 많아졌다는 것이다 디카가 대표적>
그의 로봇 혹은 전자조각은 통신과 운송 그리고 은하계(갤럭시)와 네트위킹하는 모습이 가장 많다. 그리고 광대의 모습을 하고 있다
백남준의 자신감, 이걸 따라갈 작가 없다.
[문화 전략가] 백남준은 서양에 쳐들어가 문화 전략가로서 행보를 보인다
<백남준은 서양미술판에 파고 들어가 그들의 예술적 룰과 철학을 여지 없이 파괴하는 "예술 깡패"였다는 자신의 정체성을 1993년 동아일보에 기고한 컬럼에서 밝힌다. 그가 유학을 간 것은 그들에게 배우러간 것이 아니라 그들의 것을 전복시키고 새로운 예술을 만들겠다는 각오를 가졌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런 그의 의도를 서양인들이 잘 눈치채지 못한 것 같다고 기술하다>
“비디오 예술이란 예술이 고급화되던 당시의 정서에 반하여 만인이 즐겨보는 TV라는 대중매체를 예술형식으로 선택한 일종의 예술 깡패였다. 그 안에는 동양 사상이나 한국의 고유한 이야기 등도 내포되어 있었지만, 서양인에게는 독특한 것으로만 보일 뿐 눈치채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백남준 칼럼, 동아일보 1993.9.26) -보도자료
[백남준 최고 걸작인 파우스트 13개 중 이번에 6개 소개] 백남준은 세계문명사를 13개 키워드를 가지고 종교적 재단 양식으로 재해석하다. 인류 중 과학 문학 예술을 결함된 가장 르네상스적이고 문명적 인사를 이름을 가져와 제목을 파우스트로 붙이다. 총 13개의 작품이 있는데 이번에 국립현대에서 무려 6점을 소개하고 있다. 국립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다
<자료> 비디오 설치 연작 ‹나의 파우스트›(1989–1991)는 1992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선보였던 개인전 «백남준·비디오때·비디오땅» 전시에 출품했던 백남준의 주요 작업이다. 전체 13점으로 이루어진 이 연작은 각각 환경, 농업, 경제학, 인구, 민족주의, 영혼성, 건강, 예술, 교육, 교통, 통신, 연구와 개발, 자서전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작가가 바라보는 세계관을 통합적으로 제시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 가운데 ‹농업›, ‹인구›, ‹민족주의›, ‹예술›, ‹통신›, ‹교통›의 총 6점을 호출하여 보여준다. 뾰족한 고딕 성당을 연상시키는 구조물에 20여 대의 작은 TV 모니터들이 콜라주 되어 종교적 제단을 연상시키는 이 작품은 첨탑 부분에 각 주제를 상징하는 오브제들을 달고 있다. 모니터에는 백남준 특유의 폭포처럼 쏟아지는 빠른 이미지의 전환과 과다한 정보의 흐름이 영상으로 편집되어 송출된다. 전통적이고 엄숙한 종교 제단에 갖가지 일상적인 물건들이 콜라주 되고, 파편적인 영상 이미지가 결합된 이 작업은 예술이 동시대의 정치, 사회적인 주제들에 관해 무엇을 표현하고, 어떤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지 질문하고 있다.
백남준 파우스트 6개(인구, 통신, 예술, 농업, 교통, 민족) 가 보인다
백남준은 세계문명사를 13개 키워드를 가지고 종교적 재단 양식으로 재해석하다. 인류 중 과학 문학 예술을 결함된 가장 르네상스적이고 문명적 인사를 이름을 가져와 제목을 파우스트로 붙이다. 총 13개의 작품이 있는데 이번에 국립현대에서 무려 6점을 소개하고 있다. 국립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다
백남준 파우스트 6개(인구, 통신, 예술, 농업, 교통, 민족) 중 하나 붓과 피아노가 보인다
'나의 파우스트' 연작 13점은 모두 뾰족한 탑 모양의 구조물 안에 TV 모니터를 쌓아 올린 동일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TV 화면에는 3개의 채널을 통해 현대 사회의 12가지 이슈를 보여주는 장면들이 일그러진 영상으로 압축되어 전송된다. 구조물 주변에는 갖가지 일상적인 오브제가 부착되어 있다.
이 작품의 전체 형상은 첨탑이 달린 고딕성당의 외관을 닮았다. 세부 디테일은 성당 내부의 제단이나 회랑을 장식하는 교회 건축의 장식적 디자인을 조합하였다. 이것은 전통문화에 대한 향수 어린 찬미로서 과거 건축 잔재를 복구하려는 신고전주의 경향을 다룬 것읻. 거기에 포스트 모던한 유희 정신을 더했다.
백남준은 각양각색의 오브제와 모니터로 제단을 뒤덮어 교회 건축의 원래 구조를 파편화시킨다. 각각의 작품은 기술이라는 새로운 종교로 찬미 되는 현대문화의 신고전주의 취향과 키치적인 모조품으로 재구성되었다. - 중앙일보 발췌
생명의 기원을 달(음력)의 원리에 비유해 만든 작품 <TV 알(1994)>
TV 부처를 네온아트 형식에 담아 업그레드 시킨 새로운 형식의 TV 부처인 '블루부처' 1992-1995
아카이브 포스터 90년대 중심으로 백남준의 활동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백남준 방식의 서예 작품 마음 심, 2000년 몸이 불편한 시대에 할 수있는 작품 중 하나이다.
백남준의 예술철학 중 시간과 역사에 대한 은유가 담긴 작품 제목이 상당히 난해하다. 노스탤지어는 피드백의 무한제곱(이에 대한 한 가지 해석 가장 먼 과거인 선사시대를 안다면 가장 먼 미래인 30세기를 미리 내다볼 수 있다)
<자료> 백남준 ‹비밀이 해제된 가족사진›(1984)은 백남준이 가족사진에 직접 인물을 식별하여 쓴 매우 독특한 작업이다. 비디오 아트의 선구자라고 불리며 파격적인 예술 실험을 거듭하였던 작가의 가족들의 자유롭고 개방적이었던 면모를 확인할 수 있으며, 작가가 이러한 유년시절을 바탕으로 실험적이고 전위적인 작가로 성장하였음을 알 수 있다. 사진에 등장하는 백남준의 가족들은 모두 여성으로, 여성들끼리 모여 동네의 사진관에서 찍은 가족 단체 사진이다. 그중 남성의 복장으로 차려입은 인물들이 눈에 띄는데, 이는 백남준의 어머니가 낸 엉뚱한 제안으로 이루어졌으며, 백남준의 어머니 또한 남성 복장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사진을 찍은 사진관의 주인이 이 독특하고 재미있는 사진을 진열장에 내 거는 바람에 이후 가족들은 남사스러워 한동안 문밖을 나서지 못했다고 한다. 50대에 접어든 작가는 가족들이 전한 일화를 담아 사진에 등장하는 10명의 여성들에 ‘나의 어머니(母)’, ‘누이 희덕(나의 첫 피아노 선생님)’, ‘큰어머니’, ‘큰 사춘 누이’ 등 주석을 달아 두었다. 유교적인 한국 사회에서 여성들끼리, 그것도 남장을하고 사진을 찍을 수 있었던 백남준 집안의 멋스러운 가풍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작업이다.
이 가족사진은 백남준의 예술의 출발점이다 그를 가장 세계적 작가라 하지만 그는 가장 한국적인 작가다. 자신의 가족사진을 전복시키다 가부장적 한국 사회를 여성 중심의 21세기 세계로 바꿔야 한다는 그의 여성숭배주의 즉 페미니즘이 깔려 있다 아래 왼쪽에 갓을 쓴 사람은 바로 백남준의 어머니다. 그의 가족 사진에 아버지는 없다. 여기 나오는 가족 사진의 모든 사람은 다 여성이다. 그의 예술적 기질인 <전복의 미학>이 여기서도 드러난다. 한국사회는 여자가 남성중심 사회를 전복시켜야 한다고 믿었고, 서양사회는 동양중심 문화로 전복시켜야 한다고 믿었다. 그런가 아닌가
비디오아트 공간보다 시간의 예술이다. 백남준은 평생 시간이 뭔가를 고민하다. 이 작품은 시계와 TV 모니터를 연결해 시간의 흐름을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제목은 스위스 시계
1988년부터 생존시까지 그리고 지끔까지 백남준의 손이 되어 그의 모든 작품을 제작하신 이정성 아트마스터 대표(백남준 전자 엔지니어)가 소장한 백남준 관련 자료를 일부 소개, 많은 소장품 백남준아트센터에 기증하다
백남준 후기 야심작 메가트론 3작품만 완성하다. 서울 한강변 마포에 세우려고 한 메가트론은 건강상 문제로 아쉽게도 완성하지 못했다. 아래는 그 설계도다. 1996년 백남준 뇌졸증으로 쓰러지기 전후 야심작 작품 <메가트론>구상 지도 이와 관련해 3작품을 완성하고 서울 마포구에 설치하려고 한 <메가트론> 작품은 뇌졸증으로 쓰려진 이후 완성하지 못했다고
이정성 아트마스터 대표(백남준 테크니션)와 백남준 당시는 주로 팩스를 통해 교신한다
TV모니터 430대짜리 백남준 대형 전자벽화 뉴욕 체이스뱅크 소장품 이 은행(브루클린 지점) 입구에 설치되어 있다 1992. 앤디 워홀, 재스퍼 존스, 폴락보다. 백남준 작품을 설치한 것은 시대정신에 맞춘 앞선 생각이다. -이정성 아트마스터 대표 보관 사진 중에서. 뉴욕에서 이 작품을 본 기억이 난다 뉴욕에는 체이스뱅크 유난히 많다
이번 전시의 출품작은 총 103점으로, 백남준의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초반의 주요작품 43점과 한국 동시대 미술사에서 중요한 작가 25명의 90년대 회화·설치·사진 대표작 60점을 포함한다.
특히 백남준의 주요 출품작으로 1992년 국립현대미술관 전시에 나왔던 대표작 <나의 파우스트>시리즈(1989-1991) 총 13점 중 6점과 함께 세계화를 향한 열망을 담았던 작품 <칭기즈 칸의 복권>(1993), <리옹 비엔날레 세트>(1995), 그리고 백남준의 아시아성에 대한 탐구를 보여주는 <김유신>(1992), <장영실>(1990), 과학기술과 예술의 만남에 대한 백남준의 선구안을 보여주는 <인플럭스 하우스>(1993), <달은 가장 오래된 텔레비전이다-1965-67>(1996),
작가 백남준의 시작과 끝을 보여주는 작품 <비밀이 해제된 가족사진>(1984)과 <태내기 자서전>(1981)이 함께 출품된다.
이와 함께 장르와 매체의 확장성을 활발히 탐구하던 구본창, 김해민, 문주, 박이소, 석영기, 양주혜, 윤동천, 이동기, 이불, 전수천, 홍성도, 홍승혜 등 25인의 90년대 초반 실험작이 전시된다.
전수천 작가 백남준의 효과를 낸 작가 중 하나(?) 1995년 베니스비엔날레 처음 참가해 특별상을 받다. 여기서 토우는 한국적 신화 속 영웅을 상징, 서양의 거창한 영웅과 다르게 소박하고 인간적인 영웅의 모습을 형상화하다
전수천은 동서양의 전통적 모티프를 토대로 하여 다양한 매체를 아우르는 실험적 작업을 통해 사회와 개인, 역사와 시간이라는 다양한 주제에 대한 폭넓은 작업을 선보인 작가이다. 전시된 ‹방황하는 혹성들 속의 토우–그 한국인의 정신›(1994–1995)은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1995) 수상 후 한국관이 처음 설치된 «제46회 베니스 비엔날레»(1995)에서 특별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흙으로 빚은 신라시대의 토우와 함께 실크스크린 벽을 배경으로 산업 쓰레기, 네온, 비디오 모니터를 거대한 유리판 위에 설치했던 원작의 부분 설치이다.
작품의 주요한 모티프인 작은 토우는 거대한 그리스 로마신화의 신상들과 달리 한민족의 소박한 민족정신을 반영한 오브제로 네온, 유리, 철 등 과학 기술 발전으로 인해 생겨난 현대적 잔여물과 한데 어우러져 고대의 시간을 딛고 발전한 현대 문명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거대한 설치가 연출해낸 몽환적 공간에서는 고대와 현대, 삶과 죽음, 꿈과 현실이 교차한다.
<총평> 1992년 백남준전:비디오때 비디오땅(비디오로 시공간 없어진다는 주제) 2022년 백남준전:백남준의 효과/벌써 30년 지났는데 지금도 1992년 시공간이 사라진다는 개념(메타버스개념)의 백남준 전시를 따라가지 못한다
<백남준은 서양미술판에 파고 들어가 그들의 예술적 룰과 철학을 여지 없이 파괴하는 "예술 깡패"였다는 자신의 정체성을 1993년 동아일보에 기고한 컬럼에서 밝힌다. 그가 유학을 간 것은 그들에게 배우러간 것이 아니라 그들의 것을 전복시키고 새로운 예술을 만들겠다는 각오를 가졌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런 그의 의도를 서양인들이 잘 눈치채지 못한 것 같다고 기술하다 >
“비디오 예술이란 예술이 고급화되던 당시의 정서에 반하여 만인이 즐겨보는 TV라는 대중매체를 예술형식으로 선택한 일종의 예술 깡패였다. 그 안에는 동양 사상이나 한국의 고유한 이야기 등도 내포되어 있었지만, 서양인에게는 독특한 것으로만 보일 뿐 눈치채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백남준 칼럼, 동아일보 1993.9.26) -보도자료
홍성도 작가 작품 백남준 전시와 함께 기계친화적 철을 실처럼 사용하다
Hong sung do 작가는 1953년 생으로 홍익대학교 조소과를 졸업하고 Maryland Institute College of Art에서 수학하고 Pratt Institute 조각과를 졸업(M.F.A)하였다. 서울, 뉴욕 등에서 다수의 개인전을 가지다. / 조각가 홍성도가 만들어낸 작품들은 몇 장의 사진 자료 이외에는 별로 남아 있는 것이 없다. 그 이유는 그가 만들어낸 작품들이 대개는 설치(installation)의 영역에 속하는 것들로서, 전시를 위해 일단 만들어져서 보여지고 난 후, 해체되는 운명을 가졌던 것들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기념비적인 재현의 논리를 갖는 전통적이 조각의 개념이 크게 붕괴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의 작품 세계는 초기 단계부터 새로운 시각적 표현의 가능성을 찾아 나서는 여정을 보여준다. 그 여정은 상당히 가벼운 발걸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는데, 그 탄력적인 가벼움만큼 우리에게 제시되었던 시각적 즐거움은 상당한 것이었다.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은 “탄생 90주년 ‘백남준 축제’의 피날레를 장식할 이번 기획전을 통해 1990년대 한국 시각 문화 정체성에 큰 영향을 끼친 백남준의 예술적 성취를 재조명하고 드높이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라고 밝혔다. - 일반인 전화문의: 02-2188-6000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대표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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