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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갤러리] 이기봉 개인전 'Where You Stand' 12월 31일

국제갤러리, 1117일 이기봉 개인전 Where You Stand개최

전시기간: 20221117() 1231() <이미지: 국제갤러리 제공>

전시장소: 국제갤러리 서울점 K1, K2, 부산점

내가 관심을 갖는 주요 모티브는 물과 안개다. 이들은 사물이나 존재의 모습을 변화시키고 초월적 영역에 다가서게 만든다. 평상시 드러나지 않았던 사물의 다른 측면에서 어떤 정신이나 영혼을 발견하는 것 같은 느낌이다.” 이기봉

국제갤러리는 오는 20221117일부터 1231일까지 이기봉의 개인전 Where You Stand를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국제갤러리에서 2008년 이후 14년 만에 선보이는 작가의 다섯 번째 개인전으로, 서울점 K1, K2와 부산점에서 동시 개최한다. 이기봉은 회화와 설치를 넘나들며 세계의 본질을 이루는 구조 및 흐름에 대한 관심을 지속적으로 탐구하고 실험해왔다. 지나간 시간, 과거에 대한 향수와 함께 덧없는 순간에 대한 갈망을 역설적으로 불러일으키는 그의 작업은 무의식과 실재 및 환상 간의 언캐니(uncanny)한 균형을 생성한다. 많은 경우 몽환적이라 묘사되는 작가의 화면에 그려지는 풍경은 시간을 초월한 또 다른 차원의 풍경으로 존재하게 된다. 이번 전시 역시 자연의 순환과 사라짐에 대한 사색을 담은 작가만의 바니타스(vanitas)’ 50여 점으로 꾸려질 예정이다.

이기봉의 회화는 시각이 포착하는 바의 깊이를 꾸준히 관찰하고 의심하게 하는 동시에 관람자로 하여금 그 표면을 집요하게 관찰하게 한다. ‘실재의 농도를 변주하며 세상을 마주하는 경험을 생경하게 환기시키고자 하는 그의 작업에서 가장 주요하게 활용되는 요소는 바로 물이다. 물은 그 자체로서 절대적인 형태를 갖지 않고 외부의 대상과 관계를 맺으며 형태와 의미를 발생시키는 속성을 가진다. 작가는 2003년 국제갤러리 개인전 There is No Place - The Connective를 통해 푸른 물을 담은 수조를 등장시키며 직접적으로 물의 형태를 드러내는 작업을 선보인 바 있으며, 2008년부터는 더욱 순간적이고 가변적인 성격의 안개, 수증기와 같은 형태로 드러내며 꾸준히 작업에 들여왔다. 특히 안개라는 요소는 습한 산 중턱에 위치한 작업실에서 30여 년간 작업을 이어온 작가의 독창적인 조형언어로 자연스레 자리잡았다. 안개는 관계 속에서 의미를 형성하는 물의 특성을 드러냄으로써, 화면 내 신비스러운 감각을 불러일으키는 시각적 효과를 넘어 인간과 사물, 그리고 세계가 관계 맺는 메커니즘을 가시화하는 요소로 활용된다.

서울점에서는 작가가 그간 꾸준히 작업해온 안개 속의 몽환적인 물가 풍경이 중점적으로 펼쳐진다. 흐릿한 질감과 경계는 안개가 피어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지만, 이는 캔버스 위에 일정한 간격을 두고 플렉시글라스(얇은 아크릴 판) 또는 폴리에스테르 섬유를 겹쳐 올려 두 개의 이미지를 덧댄 결과이다. 여기서 작가는 재현의 대상으로서 배경에 등장하는 나무나 호수가 아니라,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물안개에 관심을 갖는다. 안개는 평면에 놓인 복수의 화면의 거리감을 뒤섞고 인식체계를 교란함으로써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뿐만 아니라 반투명한 뒤편의 안개가 피어 있는 듯한 화면 너머를 들여다보는 행위는 인간이 저마다의 프레임을 통해 세상을 경험하는 일상적인 행위와 일맥상통한다. 안개의 정도에 따라 지각 경험은 달라질 수밖에 없는데, 특히나 더욱 짙어진 안개 속 풍경을 담은 K22층 전시작에서는 작가와 대상 간의 거리감을 더욱 부각함으로써 관람자와 안개 너머 사이의 공간을 보다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몸의 실재성을 감각케 하는 것, 즉 몸과 눈으로 이 세상과 충돌하며 지각하려는 욕구를 드러내는 것이 회화의 본성이라 설명하는 작가에게 안개 속의 장()이란 또렷한 형체 없이 상호작용을 통해 의미를 발생시키는, 우리를 둘러싼 세계의 복잡성이 발생하는 무한한 가능성의 공간이다.

한편 본 전시에서 처음 소개되는 새로운 연작은 텍스트에 대한 작가의 오랜 관심을 기반으로 한다. 앞선 몽환적 풍경 속의 섬세하고 디테일한 표현과는 대비되는 거친 표면에는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Ludwig Wittgenstein)논리철학 논고(Tractatus Logico-Philosophicus)에서 발췌한 텍스트가 깔려 있다. 작가는 2008년 국제갤러리에서의 전시 The Wet Psyche에서도 동일한 텍스트가 수조 속에서 유영하는 설치작품 End of the End(2008)를 선보이는 등 인간의 사고를 명확하게 제시하기도, 세계를 완벽하게 재현하기도 어려운 언어의 한계를 통해 실재에 다가갈 수 없음에 대한 서사를 풀어온 바 있다. 이번에는 캔버스 뒷면으로부터 밀어낸 듯한 모양새로 쌓아 올린 비트겐슈타인의 텍스트가 모호한 형체의 풍경 뒤에 숨어 또 다른 형태의 막으로 기능하며 우리를 둘러싼 불확정성을 드러낸다.

비트겐슈타인의 텍스트는 또한 설치작품의 형태로도 제시되는데, 서울점과 부산점에 각기 한 점씩 설치되는 A Thousand Pages신작은 한 면의 양각의 텍스트를 다른 면의 안료 가루에 찍어 펼쳐 보이는 작업으로, 마치 펼쳐진 책을 보는 듯한 감각을 일으킨다. 텍스트가 눌려 새겨지는 안료 가루 더미는 마치 타 버린 책의 재를 연상시키기도, 나비가 흩뿌리는 화분을 연상시키기도 하며 또 한 번 생의 순환과 고리를 암시한다. 이렇듯 삶과 죽음이 서로의 그림자가 되는 양태는 물만큼이나 실재를 감각하는 데 주요한 도구로, 창가에 비친 그림자를 그린 연작이 부산점에서 함께 전시된다. 주체가 없는 그림자만을 그린 이 작업들 역시 실재가 아닌 실재로부터 발생하는 하나의 불완전한 현상이자 현현인 것이다.

이번 개인전은 보이지는 않지만 세상을 작동시키는 메커니즘으로 분명히 존재하는 흐름에 대한 이기봉만의 고유한 접근을 엿볼 수 있는 전시다. 작가는 인간이란 결국 자신에게 비쳐지는 세상을 인식하는 존재라 인지하며, 자신이 변주하여 자각하는 과정의 메커니즘을 시각화 하는 데 주력해왔다. 전시 제목이 주지하듯, 어디에 서느냐에 따라 다른 효과를 감각하고 다른 세상을 보는 것이다. 작가는 이로써 어디에나 있지만 어디에도 없는 것을 스스로 재발견할 수 있게 해주는 장치로서 회화를 만들어내며, 이것이 작가 스스로 미술가보다는 몽상적인 이미지의 예술을 만들어낸 공학자라 생각하는 이유다. 물이 그렇듯이 외부의 것과의 접촉을 통해 세계의 여러 층위의 모습과 복수의 층위가 얽히고 설켜 나타나는 세계의 복잡성을 가시화하는 작가의 예술세계를 통해 일상에서 쉽게 간과되는 지점을 고찰해볼 수 있기를 권유한다.

[작가 소개] 이기봉은 인간과 사물, 세계의 본질을 이루는 구조와 흐름에 대한 일관된 관심을 표현해왔다. 작가는 이를 기본적으로 생성과 소멸 그리고 순환의 구조로 보고, 그 흐름 속에서 파생되는 의미와 역학구조를 파고든다. 순환 구조에 기인한 사라짐이라는 주제는 하나의 필연적인 물리적 현상인 동시에 아름다움, 욕망, 향수 등의 감정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캔버스와 플렉시글라스, 또는 반투명한 천에 그려진 이미지들은 단수의 시점에서는 양립할 수 없는 두 개의 세계가 복수의 층위 구조에서 공존하고 있다. 이처럼 그는 작품 내부의 역학구조를 통해 작품과의 대화를 시도함으로써 의미의 맥락이 사라지고 추상성이 강조되는 내면의 공간을 만들어낸다.

1957년에 서울에서 태어난 작가는 서울대학교에서 수학했다. 1986년 대한민국미술대전에서 대상을 수상한 후 전 세계적으로 광범위하게 전시를 이어가고 있다. 주요 작품 소장처로는 한국 국립현대미술관, 호암미술관, 리움미술관, 독일 ZKM미술관 등이 있으며, 2021년 로스엔젤레스 카운티 미술관(LACMA)의 단체전에서 그의 작품이 소개되었다. 작가는 2016 창원조각비엔날레, 2012 폴란드 포즈난의 미디에이션 비엔날레(Mediations Biennale), 2011 모스크바 비엔날레, 2010 부산비엔날레, 2009 비엔날레 큐베(Biennale Cuvée), 그리고 2008 세비야 비엔날레(Sevilla Biennale) 및 싱가포르 비엔날레 등에 참여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