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갤러리] 9월 1일 이승조 개인전 《LEE SEUNG JIO》 개최 전시기간: 2022년 9월 1일(목)~10월 30일(일) 전시장소: 국제갤러리 K1, K2, K3 <사진 이미지 국제갤러리 제공> 아래, 이승조 작가가 그의 작품세계를 포착하는 순간을 토로
“기차 여행중이었다. 눈을 감고 잠시 여러 가지 생각에 잠겨 있었는데 얼핏 무언가 망막 속을 스쳐가는 게 있었다. 나는 퍼뜩 눈을 떴다. 그러나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마치 첫인상이 강렬한 사람에 대한 못 잊음과도 같은, 그 미묘한 감동에 휩싸여 집에 돌아온 즉시 이틀 밤을 꼬박 새우며 마음에 남은 이미지를 조작한 결과 오늘의 파이프적 그림을 완성했다.”
국제갤러리는 오는 2022년부터 9월 1일부터 10월 30일까지 이승조의 개인전 《LEE SEUNG JIO》를 개최한다. 국제갤러리에서 처음으로 열리는 이번 이승조의 전시에서는 한국의 기하학적 추상을 구축하는 데 평생을 바친 화백의 주요 작품 30여 점을 소개하며 그만의 굳건한 시각언어를 새로이 조망하고자 한다.
1941년 평안북도 용천에서 태어난 이승조는 해방 공간기에 가족과 함께 남하해 중고등학교 시절 미술반을 거치며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고, 1960년 홍익대학교 서양화과에 입학했다.
1962년에는 동급생이었던 권영우, 서승원 등과 함께 기존의 미술 제도와 기득권에 반하여 ‘오리진’이라는 이름의 전위그룹을 결성하기도 했다. 그룹 이름이 시사하듯 ‘근원적인 것’으로의 환원을 모색하며 자신의 조형언어를 만들어 가던 이승조는 1967년 최초의 〈핵〉 연작을 발표했다.
이승조의 가장 대표적인 모티프로 알려진 ‘파이프’ 형상이 처음 등장한 것은 그로부터 4개월 후, 〈핵〉 연작의 열 번째 작품을 통해서였다. 마스킹테이프로 캔버스에 경계를 지정한 뒤 납작한 붓으로 유화를 입히는데, 붓의 가운데 부분에는 밝은 물감을 묻히고 양쪽 끝에는 짙은 색 물감을 묻힘으로써 각 색 띠의 한 면을 한 번에 그을 수 있었다.
이러한 붓질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색 간의 경계가 사라짐과 동시에 그라데이션이 생겨나 3차원적 입체감이 형성되는데, 색을 칠한 후 작가는 사포질을 통해 화면을 갈아 윤기를 내어 금속성의 환영을 더했다.
엄격한 질서 안에서 단순한 형태와 색조 변이로써 시각적 일루전(illusion)을 만들어내는 파이프 형상은 곧 이승조의 주요한 언어가 되었다. 파이프 형상이 등장하던 1968년은 작가에게 기념비적인 해였다.
제1회 《동아국제미술전》에서 대상을 수상하고 같은 해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에서는 문화공보부장관상을 받으며 서양화 부문의 최고상이 추상화 작품에 수여되는 국전 역대 최초의 기록을 남겼다. 이후 1971년까지 연달아 4회의 국전에서 수상하며 “상을 타기도 어렵지만 안 타는 것이 더 어렵다”는 어록을 낳기까지 했다.
“나를 ‘파이프 통의 화갗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 별로 원치도 않고 또 싫지도 않은 말이다. 구체적인 대상의 모티프를 전제하지 않은 반복의 행위에 의해 착시적인 물체성을 드러내고 있음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물론 현대문명의 한 상징체로서 등장시킨 것도 아니다.” 작가가 밝히듯 이승조의 회화에서 반복되는 파이프-적인 형태는 구체적인 사물의 연상도 연장도 아니다.
이를 어디까지나 회화의 소재로서의 선과 색채의 앙상블로 읽어야 한다고 강조한 평론가 이일은 이승조가 “조형의 기본원리인 규칙적인 반복의 질서를 통해 클레멘트 그린버그(Clement Greenberg)가 말하는 ‘자기환원적 추상’, 다시 말해서 ‘탈회화적 추상’의 세계를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제시한 것”이라 정리하기도 했다.
하지만 기계비평가 이영준이 설명하듯 추상미술이란 “급격히 산업화되고 현대화된 세상의 새로운 감수성에 대한 반응”이라는 것을 인지한다면, 새로운 기계문명이 가져온 지각 방식의 변화가 평면이라는 캔버스 안에서 어떻게 표현되는지에 대한 고민, 즉 과학 기술과의 연관 속에서 예술을 바라보는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두 발로 걸으며 바라본 풍경과 시속 100km 이상의 속도로 달리는 기차 안에서 지각할 수 있는 창밖의 풍경은 같을 수 없다. 기차 여행을 회고하는 작가의 말에서도 엿볼 수 있듯 새로운 기계는 그것을 경험하는 이로 하여금 그 생경한 감각의 표현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현대미술의 발전은 기계 미학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 것이다.
이승조는 자신의 작업에 대해 “아폴로 우주선 발사로 새롭게 우주의 공간 의식에 눈뜨고부터 시작한 이 작업이 작가인 내가 살고 있는 시대를 표현하는 데 가장 적합한 것 같아” 끊임없이 매진하고 있다고 소회한 바 있다. 이런 작가에 대해 훗날 유족은 “수학도 모르면서 속도와 확장성은 꿰뚫었던 사람”이라 소개한다.
각 시대가 그 이전 시대에 비해 이룬 진보란 새로운 과학기술이 담보하는 가속화의 결과라 보았던 작가이자 철학자 폴 비릴리오(Paul Virilio)는 속도를 집단 경험이 펼쳐지는 매체이자 그 경험의 역사적 역동을 밑받침하는 핵심 원동력이라 진단하며, 속도는 “도착지인 동시에 운명”이라 단호히 정의한 바 있다.
기술문명의 현대화를 화폭 안에 소화해내며 이 운명을 기꺼이 받아들였던 이 화백은 그의 말년에 4m 이상의 폭에 달하는 대작을 그리며 자신의 우주를 무한히 확장해 나가고자 했다.
[작가 소개] 이승조(1941-1990)는 한국의 기하학적 추상회화를 선도한 화가로, 모더니즘 미술의 전개 과정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점한다.
1967년 처음 선보인 〈핵〉 연작으로 기하추상 화풍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고, 이후 작고하기까지 20여 년간 일관되게 특유의 조형 질서를 정립하는 데 매진했다. 특히 1970년대 후반부터는 무채색의 전면회화를 전개하거나 한지와 같은 재료를 도입하는 등 단색화 움직임과의 연계성 속에 작업세계를 확장해 나갔다.
파이프를 연상시키는 원기둥 구조를 근간으로 하는 이승조의 회화는 현대문명을 상징하는 동시에 평면성과 입체성, 추상과 구상을 넘나드는 환영감을 불러일으키며 시각성의 본질적 문제를 제기한다. 물질의 기본 요소를 의미하는 ‘핵’으로 명명된 이승조의 작품은 순수하게 회화적인 것에 대한 작가의 심도 깊은 고찰의 응결체로서 모더니즘 추상회화의 본질을 드러낸다.
이승조는 홍익대학교와 동 대학원에서 회화를 전공했으며 중앙대학교 회화과 등에서 오래간 교편을 잡았다. 전위미술 단체 ‘오리진’과 ‘한국 아방가르드 협회(AG)’의 창립 동인으로서 활약한 한편, 보수적 구상회화 중심의 국전에서도 여러 차례 수상하며 전위와 제도권 미술의 흐름을 뒤바꾸는 데 일조했다.
나아가 단색화가들이 이끌었던 주요 단체전과 해외전에도 빠짐없이 참여하며 한국의 대표적인 추상화가로서 공고히 자리매김했다. 이승조의 화업은 최근 2020년 국립현대미술관이 개최한 대규모 회고전에서 체계적으로 소개된 바 있으며, 작품의 주요 소장처로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호암미술관, 토탈미술관, 독일은행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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