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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현대] 두가헌, 임충섭전 8월 11일~27일

갤러리현대, 임충섭전 2021년 8월 11일~27일]

갤러리현대 두가헌에서 8월 11일부터 27일까지 임충섭의 개인전 《드로우잉, 사잇》이 열린다. 신작 드로잉 20여 점을 선보이는 이번 전시는 2017년 《단색적 사고》에 이어 갤러리현대가 기획한 작가의 두 번째 개인전이다.

두가헌 임충섭 전시 장면 사진제공 갤러리 현대

전시 제목인 ‘사잇’은 임충섭의 작품 세계를 함축하는 단어다. ‘사잇’은 두 장소나 대상끼리의 거리나 공간을 의미하는 ‘사이’와 그것을 연결하는 ‘잇다’를 결합해 만들어졌다. 1973년 새로운 예술형식을 찾기 위해 서울에서 뉴욕으로 이주하고, 그곳에서 작가 활동을 이어온 임충섭에게 ‘사잇’의 개념은 창작의 원동력이자 시각적 모티프가 되었다. 작가는 자신이 한국(동양)과 미국(서양), 자연(시골)과 문명(도시), 과거와 현재, 여백과 채움, 평면과 입체, 추상과 구상 등 양자 사이를 연결하는 촉매자 역할을 하고 있으며, 작품은 그 사이를 중재하는 과정에서 ‘시각적 해학’을 펼친 조형 행위의 결과라고 강조한다.

《드로우잉, 사잇》의 출품작은 2015년부터 팬데믹을 맞은 2020년까지 작가의 뉴욕 스튜디오에서 오랜 시간에 걸쳐 완성된 120여 점의 드로잉 중 일부로, ‘사잇’의 개념을 형상화한 결과물이다. 임충섭은 서양의 현대미술과 동양의 서예 예술의 조형성 ‘사이’의 관계를 다각도로 연구하며 조형적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그는 일련의 드로잉 시리즈를 제작하며 동양의 서예 예술의 방법론이 미국의 추상미술가의 작품 형성 과정에 미친 영향 관계를 작가로서 시각적으로 반추하고, 그 ‘사잇’에 존재하는 자신만의 독자적 작품을 완성했다. 작가는 “한문의 조형성이 지닌 반추상적 입지 때문에 서양 미술의 추상 표현 등에 밑거름이 되었다”라고 설명한다. 그의 이러한 분석을 뒷받침하듯, 그의 드로잉 작품에는 언어적 이미지가 두드러진다. 서예의 엄격하면서도 자유로운 붓질을 떠올리는 형상, ㅇ, ㅣ, ㄴ, ㅅ, ㅂ 등 한글의 자음과 모음, 綠(록) 角(각), 居(거) 등의 한자를 닮았거나, 그 음이나 의미를 연상시키는 반추상적 형태를 확인할 수 있다. 대부분 ‘무제’라는 제목을 지닌 드로잉 작품에, 꼬리, 바람, 혀, 너, 뿌렁이 등의 순우리말이나 방언을 부제로 붙여 임충섭만의 시적 감성과 언어유희적 유머를 부여했다. 단어의 지시 대상과 시각적 유사성을 지닌 화면의 형상은 관람객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사잇’의 개념은 드로잉의 재료 선택에서도 반복 및 변주된다. 회화, 설치, 영상, 조각 등 매체와 방법론의 경계 없이 작품을 제작해온 임충섭은 다양한 일상적 사물을 콜라주하거나 아상블라주하며 화면에 이색적 형태와 유기적 구조를 만든다. 작가는 유화, 아크릴릭, 연필, 캔버스처럼 전통 회화에서 흔히 사용하는 재료부터, 먹, 한지 같은 동양적 재료, 페이퍼타올(휴지), 플라스틱 망, 카펫, 나무 못 등의 발견된 오브제, 그리고 린시드오일(흔히 목공에 사용되는 오일), 왁스 같은 공업적인 재료까지, 그 성질과 쓰임이 다종다양한 소재를 한 장소에 놓고 병치하거나 중첩하면서 재료 사이를 잇는다. 모든 재료는 캔버스에 투명하게 침잠하듯 스며들어 조화를 이루는 동시에 질감과 입체감이 돋보이는 부조적 화면을 구축한다. 임충섭은 “현대인의 잠재의식의 흔적을 간직한” 일상적 사물의 파편을 화면에 깊숙이 침투 시켜 시간과 기억의 풍화를 입은 화석을 연상시키는 독특한 미감을 완성했다. 한국적인 색채로 평가받는 미니멀한 단색조를 간직한 드로잉 작품은 작가가 나고 자란 고향에 관한 기억과 추억으로 우리를 조용히 안내한다.

임충섭의 단색작품사진 제공 갤러리 현대

임 작가는 1941년 충청북도 진천에서 출생하여 유년기를 보냈다. 1964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을 졸업한 이후 약 10년간 한국에서 작업 활동을 펼치다 1973년 뉴욕으로 이주했다. 1993년 뉴욕대학교(New York University)에서 미술대학원을 졸업했으며, 현재까지 뉴욕을 거점으로 작품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OK 해리스갤러리, 산드라게링갤러리, 국제갤러리, 학고재갤러리 등에서 개인전을 개최했으며, 2017년 갤러리현대에서 《단색적 사고》를 열었다. 2012년에는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작품 세계를 집대성한 대규모 회고전 《임충섭: 달, 그리고 월인천지》를 선보였다. 이밖에 국립현대미술관(2011), 시드니현대미술관(2011), 스미소니언국제갤러리(2003), 서울시립미술관(1999), 허쉬혼미술관과 조각공원(1997), 퀸즈미술관(1997) 등 국내외 주요 미술 기관의 기획전에 참여했다. 그의 작품은 메트로폴리탄미술관, 허쉬혼미술관과 조각공원, 국립현대미술관, 리움 삼성미술관, 경기도미술관 등 유수의 기관에 소장되어 있다.

"임충섭의 단색작품들이 농도를 달리하는 단색의 여러 물감층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의 작품의 내용 역시 철학, 학문, 관찰, 통찰, 유머, 기발함 등 다양한 층위들을 포섭하고 있다. 그의 작품은 또한 여러 대조적 요소들을 한 데 담고 있기도 하다. 매체에 대한 임충섭의 초기 고민이 이제 침착한 표면이라는 결과물로 이어졌다고 할 때, 그의 최근 작품에서 목격되는 다양한 특징들 — 거대한 크기, 아치형으로 굽어지며 관람자의 공간으로 침투하는 표면, 도려내어 함몰된 면(面), 다다이즘 작품들에서 볼 수 있는 엉뚱한 수식(修飾)들처럼 투명한 플라스틱관, 부드럽게 칠해진 쇠장도리의 머리 등등의 다양한 부착물들 — 은 세계의 상황에 대한 불안과 권력에 대한 애매모호한 태도를 드러내고 있다. 임충섭의 작업에서 감지되는 동요(動搖)는 그 순수성의 와해와 끊임없이 달라지는 형태와 더불어 그의 작업을 수용과 공격이 공존하는 불확실한 영역에, 즉 역사적 사실을 불안정한 평화로 애써 가리고 있는 위기상황에 위치시킨다."- 토마스 미켈리, 미술평론가

“나는 서예가 서양에 미친 영향과 그 관계를 미학적 조형론으로 일목요연하게 이론화할 수 없다. 그저 작가로서 시각적인 반추를 시도할 뿐이다. 나는 한문의 조형성이 지닌 반추상적 입지 때문에 서양 미술의 추상 표현 등에 밑거름이 되었다고 본다.” – 임충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