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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럭서스

[백남준] 그의 예술동지 '플럭서스'의 경제 사정은 어땠나? 독일시대(1958년~1962년) 정도 백남준은 유학비를 받아서 경제가 바닥을 아니었다. 그러나 그의 동료 예술가들은 날마다 밥을 제대로 못 먹는 지경이었다. 남정호(뉴욕특파원)와 바우어마이스터와 인터뷰 소개 [질문] 남정호: 당시 경제적 여유가 전혀 없었나? [대답] 바우어마이스터: 당시 우리는 너무나 배가 고팠다. 어느 정도였는가 하면 플럭서스 동료 중에 디자이너 겸 기자가 있었는데, 시내에서 리셉션이 열리면 우리는 2마르크를 모아 그에게 쥐여 주면서 그곳에 가도록 했다. 그에게는 아주 품위 있는 검은색 양복이 있어서 그것을 입고 리셉션장에 가더라도 전혀 이상하지 않게 보였다. 입구에서 초대장을 보여달라고 하면 그는 “아, 택시에 두고 내렸네”라고 둘러댔다. 연기까지 하며 행사장으로 들어간 뒤에는 호주.. 더보기
[백남준] 제로미술운동, 플럭서스 그리고 '+-아트' 백남준 1956-1963년 독일에서 7년 그 사이에 독일에서 일어난 '제로미술운동(1957-1969)'에 동조하면서 '플럭서스(1962년 창간)'에 참여하고 동시에 존 케이지와 쇤베르크 등의 영향을 받은 신음악(액션음악 구음악과 차별화)과 실험적 전자미술을 했고 첫 전시에서 16가지 뉴 미술개념을 제시했다. 이때 백남준은 제로 미학에 경도되어 있었다. 그러다가 서서히 비빔밥 융합예술를 실험하면서 플러스 미학을 추구했지만 그의 플러스미학은 더하기를 위한 플러스가 아니라 빼기를 위한 플러스였다. 결국엔 빼기(마이너스)미학으로 간 것이다. 즉 인터넷으로 가다. 인터넷은 더하기가 아니고 빼기이다. 특권적 정보 독점을 거부한다는 의미다. 즉 나누기이고 공유(share)이고 공생이고 공존이다. 세계평화를 추구하는 .. 더보기
[백남준] 테이트 모던 순회전(II), 암스테르담 백남준 1932년생 남준왈 11932년 난 10만살이 될 것이다 -'자서전' 중에서 백남준 30세기를 내다보다 [백남준 테이트 모던 순회전(6개월간 전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편] -미래가 지금 (The Future is Now) 2020년 3월 14 -8월 23일 Stedelijk Museum에서 백남준은 우리의 삶을 형성하는 대중 매체의 힘을 예측했다. 그는 인터넷 시대의 커뮤니케이션의 미래를 예언했다 그게 바로 '전자 초 고속도로'이다. TV Garden 및 Sistine Chapel 과 같은 대규모 설치 , 비디오 조각, 수정 된 TV 세트, 초기 악보 및 로봇 과 같은 대규모 설치를 통해 50 년 간 예술 흔적을 따라갈 수 있다 The Stedelijk Museum presents the lar.. 더보기
[백남준] 나의 실험TV는 '완전범죄'다 [1963년 백남준 첫 전시 후 쓴 후기(Afterlude)] 원문은 독일어(?), 여기는 영어다. 더보기
[백남준] 가장 비정치적 그러나 가장 정치적(?) 아래 작품을 보면 백남준은 천재 중 천재다. 1995년 광주비엔날레 작품(?) 인터넷 개념, 전자 초고속도로(Electronic Super-Highway) 상징하는 작품이다. 백남준이 천재는 천재다. 1995년 광주비엔날레 작품(?) 인터넷 개념, 전자 초고속도로(Electronic Super-Highway) 상징 민중미술은 정치를 예술화했다 그러나 백남준은 예술을 정치화했다. 인간은 무엇보다 정치적인 동물이다. 백남준이 유명예술가가 되려고 한 것은 그가 세계적 정치적 발언을 하기 위해서 였다. "예술은 사기다" 사실은 정치적 언어다. 백남준은 민중미술처럼 정치를 예술화한 것이 아니라, 예술을 정치화했다. 피카소가 '한국에서의 학살'이라는 작품을 발표했을 때 그 파급효과는 컸다. 백남준이 같이 1960년.. 더보기
[백남준] 플럭서스, 고체사회를 액체로 흐르게 "물방울(액체)이 바위(고체)를 뚫는다" -한국속담 "눈물(액체)은 견고한 대리석(고체)도 뚫을 수 있다"- 고대 그리스 경구 "고체(hard)사회를 액체(soft)사회로 만드는 것" -플럭서스 정신 플럭스서(fluxus 흐름), 영어로 flow다. 고체를 액체로 흐르게 하는 사회 만들기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