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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현] 다다익선 3년 계획 복구, 그러나 방식?

<오마이뉴스 관련 기사> http://omn.kr/1kxbd

 

백남준 작품의 시대성은 모니터가 아니라 콘텐츠다

[주장] 국립현대미술관, 백남준 '다다익선' 복원 계획에 부쳐

www.ohmynews.com

백남준은 1993년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 열리는 휘트니 비엔날레 서울 순화전에 왜 약 3억 당시 25만 달러를 기부하게 되었나 지금시가로 치면 10억 정도에 되지 않을까 싶네요 서울신문 기사네요 당시 국현이 예산문제로 어려움을 토로하자 백남준이 기부한 것이다 당시 관련기사 휘트니 비엔날레 내년 서울서 열린다[출처: 서울신문에서 제공하는 기사]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00326020003&fbclid=IwAR3HeVVrLAN9_BxizDKCUTNTZ-GItDsDiGTkyHwEHch3AmAFLNMHzesisl0#csidx53b4cefcbb33787b70a504be1525f68 

 

백남준 후손들 다다익선 처리하는 모습 보고 좀 섭섭해 할 것 같다. 그러나 그러지 않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이런 걸 미리 알고 있었고 그래서 그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인생은 길고 예술은 짧다" 내 작품이 없어지면 어떠냐? 다만 내가 산 인생에서 내가 생각한 아이디어는 오래갈 것이다. 백남준다운 천재적 발상이다. **나의 생각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남준 작품은 우리가 그에 빚진 바를 갚기 위해서도 잘 보전해야 한다.

1000대를 사려면 5억 정도... 국립미술관 예산으로 턱없이 부족했을 것이다 당시 삼성에서 기부를 많이 했죠. 아이디어만 있으면 사실 돈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백남준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피아노를 때려부수고 나서 그걸 다 버리게 되는 경우가 있죠 그럴 때 "예술은 찰나에 지나지 않는다(예술은 짧다)"라고

-백 선생님은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요? " ‘철거? 뭐 그럴 수 있지.’ 이렇게 말할 것 같아요. 오히려 백 선생은 ‘그래 또 새로운 것이 하나 탄생했구나!’ 그렇게 생각했을 거예요. 이 양반이 작가 초창기에 로봇을 만들었어요. 그걸로 전시도 여러 번 하고 자기 분신처럼 아꼈는데 나중에는 그 로봇이 뉴욕에서 차에 치여 깨지는 퍼포먼스를 했어요. 작품은 영원하지 않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거야. 참 재밌지 않아요?" 그렇다고 정말 없애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다. 

<들어가는 말> 일단 다다익선 복구하게 되어 대환영이다. 그러나 방식이 문제다. 근거는 잘 모르겠지만 다다익선 LCD 식 복원에 대해 호응이 안 좋다고 하는데 이보다 중요한 건 다다익선 적어도 25년 지속 가능한 방식의 복원이다. 지금 이 건에 대해 최고 기술과 가장 많은 정보 소유자는 이정성 선생이다. 조상인 기자 제외지만 기자들마저 턱없이 정보가 부족하다.

기자 간담회 때 이정성 선생을 초대했다면 호응 90퍼센트(?) 얻었을 것이다. 그분 30년 간 백선생과 동고 동락했잖아요. 게다가 백남준은 전자제품 사용 20-25년 후 고장난다는 것 너무 잘 알았기에(모니터 수명 7-8만 시간이라는 것도) 작품 수리 위임권 이정성 선생에게 직접 전했다. 근데 왜 이번 간담회에 그를 초대 안 했는지 모르겠네요. 만약에 다른 분이 수리한다면 이것은 작가의 의도 즉 백남준 선생의 위임권을 무시하는 것이 된다. 저작권자 켄과도 상의해야 한다.

다다익선 제막식 장면1 1988.09.15

만약에 지금 단종된 브라운 방식의 땜질식 복원 후 2년 3년 안에 또 고장 나면 아예 없애버리자는 강경한 해체파 급증하겠죠. 이에 대해서 누가 책임을 질 것인가? 지금대로 한다면 국립미술관 관장님의 책임이 된다. 예방 차원에서 이정성선생 의견 최대한 존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세계적 석학 의견 아무 소용없어요. 추신 그리고 요즘은 LCD 모니터도 round가 나와 겉모양에서도 전혀 문제가 없다. 장점이 훨씬 많다 이렇게 되면 전기세 3분의 1로 줄고, 더 발고 무게도 가볍고, 수명도 훨씬 길다. 에어컨 등 유지비가 안 든다


1987년 백남준과 건축가 김원 다다익선 쌓아올리는 방식에 대해 논의 다보탑 분위기

시대성을 대변하고 유지하기 위해서 지금 단종되어 버린 브라운(CRT) 방식을 써야 한다. 이런 국립미술관의 궁색한 주장은 설득력이 약하다 왜 그런가? <대답> 1988년에 만들어진 다다익선 이것은 그 모니터가 시대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1988년이 시대성을 말한다. 1988년 정말 우리에게 중요한 한 해였다. 1989년 유럽 파리에 가서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북이냐 남이냐 십중팔구 묻는다. 그것도 88올림픽 때문에 나아진 게 그 정도였다. 1988년 올림픽으로 다시 말해서 서구에게는 거의 무명의 낯선 한국이 세계 무대 처음 데뷔한 해이다. 그래서 시대성이 중요하다. 또한, 동구 사회주의를 무너지게 한 원인이기도 하다. 그런 점을 너무 잘 알기에 백남준 이번 기회에 조국에 <큰놈> 선물하겠다고 하지 않았나. 그런 분위기 속에서 무리하지만 1003대 모니터를 동시에 켜는 작품을 기획했고 기염을 토했다. 그런데 운이 좋았다. 당시 기술로는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이정성 기술자를 만나 대성공을 이룬 것이다. 이것이 시대성이다.

이런 점을 강조해야 한다. 그리고 백남준 위성아트 3부인 <세계를 하나로 감싼다(Wrap around the World)>는 작품의 연장 선상에서 만든 것이다. 여기서 꼭 기억알 것은 바로 백남준의 세계동포주의다. 즉 세계 평화 사상의 발현이다. 그리고 백남준 여기서 중요한 건 모니터의 종류 등 하드웨어의 문제가 아니고 소프트웨어가 중요하다고 선언했다 백남준과 같이 작업한 김원 건축가는 "백남준에게 모니터의 종류가 중요하지 않았다. 소프트웨어 안에 88올림픽 임춘애나 머스 커닝햄의 춤 등 그 내용이 중요한 것이었다" 1003개의 contents가 중요했던 것이다. 거기에 시대성이 있다. 그 시대를 영상으로 증언한 것이다. 여기서 백남준 작품을 옛방식 모니터 유지해야 한다는 말은 탁상공론이다. 현실성이 없다. 그 자체가 불가능할 뿐이다. 그렇다면 비올라 등 전 세계 비디오-미디어작가의 작품도 고쳐서는 안 된다는 말이 된다. 폐기처분시켜야 


세기말 복원 2019년

1988년 다다익선이 왜 시대성이 중요하냐 모니터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다음에 미국에 가서 미국판 다다익선을 만들었는데 그 제목이 세기말(the end of the century)다 사실 이 작품의 주제가 백남준에게 가장 중요하다 무슨 소리인가 여기서 세기말이란 산업시대의 상징물인 레디메이드를 예술화하는 시대는 끝났다 뒤샹의 시대는 갔다 그래서 세기말이다 그리고 이제는 첨단과학을 예술화하는 시대 즉 디지털 인터넷 시대 첨단 전자 아트를 시작하는 새로운 정보시대라는 왔다는 의미다 백남준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이런 게 바로 시대성을 말한다. <세기말> 미국에서 올해 복원되었다 29년만이다. 수리하는 기간 7년이 걸렸다 이 작품도 다다익선에 비하면 10분의 1도 안 된다.

국립현대미술관 백남준 <다다익선> 북원(보존-재가동) 방향 및 계획 11시 발표 <작성중>기자회견 전 나의 생각 : <국립현대미술관 다다익선 복원에서 CRT(독어식 표기는 브라운관)를 주장하면 비효율의 극치, 2-3년 안에 또 고쳐야. 외국에서 왜 7년만 복구, 멀리 보는 것이다. 나도 CRT 찬성, 하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안 하겠다는 소리로 들린다. 왜 백남준 작가의 의도를 무시하나. 지금 25년간 지속 가능한 방식 요구된다.

0. 국립미술관에 현대(Modern)를 붙일 수 있는가? 지난번, 레디메이드(산업시대 상징물)를 예술화한 뒤샹 전이 열려 현대미술관이라는 체면은 살렸지만, 첨단과학을 예술화한 백남준 타계한 지 13년이 되도록 본전시가 없었기 때문에 현대미술관이라고 부르기 불가능하다. 2-3년 안에 회고전을 기대한다.

영국 테이트 모던 10월 17일부터 백남준 회고전이 열린다. 테이트 앞에 <모던>이 들어갔기에 백남준 전을 여는 것이다. 영국이 보수적이라 가장 늦다. * 타계 1주기 독일에서 백남준 예술의 신으로 대우받고, 한국에서는 그저 그런 작가로 대우받다(2007년 전 기사). 여기서 국립의 백남준 관심 의심(?)

1. 다다익선 재가동은 100% 기술적으로 가능한 것으로 안다. 다다익선은 25년간 무사고였다. 앞으로 25년간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재가동이 필요하다. 여기서 중요한 건 돈과 기술이 아니라 관장님의 결단과 실행이다. 그렇게 된다면 대환영이다. 논의는 이미 많이 되었다.

2. 단 여기서 CRT(진공관 브라운방식)으로 하자는 분이 계시는데 독일과 중국 등에 브라운관이 구입할 수 있지만 다양한 사이즈가 없다. 그렇게 되면 뺌 질식이라 2-3년 안에 또 고장이 난다. 사이즈 별 부품 맞추기가 너무 힘들다.

3. 그래서 앞으로 25년 지속 가능한 무사고 방식이 되려면, LCD를 교체해야 한다. 그리고 요즘 기술이 발달해 LCD도 브라운관처럼 round도 나온다. 옛 모양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전기세 3분의 1로 줄고, 무게도 가볍고, 수명도 훨씬 길다. 에어컨 작동 등 유지비가 안 든다. 머리 좋은 LCD를 두고 왜 머리 나쁜 브라운을 쓰는가? 삼성-LG 나라에서 모니터 핑계를 대는 것은 말이 안 된다.

4. 모든 전자제품은 20년-25년이 지나면 반드시 고장이 난다. "백남준은 모니터 수명이 8만 시간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백남준만 아니라 빌 비올라 다 고쳐야 한다. 이걸 잘 아는 백남준 이 작품의 설치한 이정성 대표에게 위임장을 써주면 무조건 신형으로 고치라고 하지 않았나. 여기서 작가의 의도를 존중이 중요하다. 서울 시립미술관 백남준 작품은 LCD로 만들었다.

5. 그리고 미술사적으로 봐도 전자 붓으로 그리는 전자페인팅은 결국 일반 붓으로 그리는 유화 페인팅에서 나온 것이다. 이 두 가지는 같은 것이다.

6. <다다익선>은 전자아트의 대표작으로 그 규모나 콘텐츠에서 전 세계 어디를 가도 이런 작품이 없다 <모나리자>와 동급이다. 좋은 작품은 당연히 유지비가 많이 든다. 다다익선은 국립미술관의 심장이다. 정신적 아버지와 같은 작품이다. 이것만으로도 백남준 상설전시는 저절로 된다.

7. 1988년 또한 중요한 해였다. 한국이 세계 무대 처음 데뷔 해이기에 백남준 이번에 조국에 <큰 놈> 선물하겠다고 하지 않았나. 그래서 무리하게 1003대 동시에 켜는 기염을 토했다. 운이 좋았다. 당시 기술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8. 다음 해 백남준 미국 가서 미국판 다다익선을 만들었다. 그게 '세기말(The end of the century)'이다. 여기서 세기말은 레디메이드 산업시대는 끝나고, 인터넷 정보시대가 왔다는 메시지다. 올해 7년 만에 복원되었다. 또 독일에서 프랑크푸르트 통신 박물관에 앞에 설치된 <말 탄 디지털-통신 맨(Prebell Man)> 7년 만에 복원. 여기에 독일의 백남준 전문가, 6명 박사가 붙었다.

9. 국립은 백남준에게 3억을 빚지다. 지금으로 하면 10억은 된다. 1993년 동네미술을 세계 미술로 끌어올리기 위해서 휘트니 비엔날레 직수입해서 순회전 열었다. 당시 주제 등 문제가 있었지만 잘 마쳤다. 국립현대 예산 부족일 때 백남준 휘트니에서 받는 상금 3억 기부했다. 그 빚을 국립이 갚아야 한다.

10. 다다익선 복구 준비위원회 백남준 전문가 기술자 미술사가 연구자 등 예산편성 해서 3년이 되든 5년이 되든 국립의 예산 매년 10분의 1을 사용해서라도 백남준의 한국 미술계 공로를 갚아야 한다.

11. CTR을 핑계로 반대를 위한 반대, 재가동 포기 유도, 비효율적인 임시방편(땜질식) 곤란하다. 2019.09.11

<12년 간 백남준 전시를 하지 않은 국립미술관 이 점에 대해서는 인정을 했다>

1. 오늘 국립현대미술관 기자간담회 해프닝 일어나 아트가 되다. 내가 발언하는 동안 끝자리에 잠시 차단되었다가 겨우 마무리 발언을 하다.

2. 오늘 박미화 학예 연구관이 발표를 했는데 실제로 담당자가 아니다. 류지연 학예연구관이 담당자다. 그런데 왜 담당자가 발표를 안하고 과거의 담당자가 발표했는가? 박 연구관 본인이 담당자 아니라고 했다.

3. 브라운관 CRT로 가야 한다는 국립의 주장에 대해서 나도 100% 동의하지만, 현실적으로 95% 불가능한 일이다. CRT는 현재 생산이 안 되고 다다익선은 워낙 크기가 다양하기에 (또한 맞는 부속품도 있어야 하기에) 한 종류라면 몰라도 크기 종류가 많아 불가능하다. 그리고 간담회에 출석한 처음 보는 기술 담당자의 설명에 의하면 10년 잘 가야 15년 사실 그것도 확실하지 않다. 그러면 5년에 고치면 겨우 5년밖에 못 쓴다.

4. 다시 5년 후에 다다익선이 고장이 나면 이게 없애자는 여론이 배로 늘 것이고 이걸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대충 수리해 놓고 그런 여론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사람도 있다. 없다. 이걸 막아야 한다.

5. 그래서 적어도 25년 지속가능성 보전을 위해서는 LCD로 갈 수밖에 없다. 가장 쉬운 빠른 효율적 원형 보전방식이다. LCD는 전기세 3분의 1로 줄고, 무게도 가볍고, 수명도 훨씬 길다. 에어컨 작동 등 유지비가 안 든다. 머리 좋은 LCD를 두고 왜 머리 나쁜 브라운을 쓰는가?

6. 그리고 요즘 기술이 발달해 LCD도 브라운관처럼 round도 나온다. 겉모양도 문제가 없다. 이 작품을 설치한 이정성 기술자가 생각하는 확실한 대안으로 LCD로 교체를 제시한다. 

7. 그리고 이 작품을 처음부터 지금까지 만들고 수리한 이정성 기술자를 국립과 의견이 다르다고 안 불렸다. 이건 말이 안 된다.

8. 미술사적으로 봐도 전자 붓으로 그리는 전자페인팅은 결국 일반 붓으로 그리는 유화 페인팅과 다를 것이 하나도 없다. 같은 페인팅이다. 매체만 다르다. 요즘은 유화도 수정을 하는데 전자매체는 당연히 수정해야 

9. 백남준 작품을 수정할 수 없다면 빌 비올라 등 전 세계 모든 비디오, 뉴미디어 작품은 고치면 안 된다. 

10. "작가란 미래의 사유자"라고 한 백남준은 미래를 내다보는 사람이기에 모니터 생명 8만시간이라는 걸 너무나 잘 알기에 이정성 기술자(현 아트마스터 대표)에게 새로운 기술이 나오면 무조건 고치라고 위임장을 써 준 것이다. 후기작인 서울시립미술관 전자 벽화는 그래서 LCD다.

11. CTR을 핑계로 비효율적인 임시방편(땜질식) 곤란하다. 반대를 위한 반대, 재가동 포기 유도한다면 국립미술관의 정체성을 상실하게 될 수도 있다. 그렇게 되지 않으리라 믿고, 일단 국립현대미술관 관장님의 복원 의지에 대해서는 대환영한다. 그리고 이미 나온 보도에 왜곡이 있다. 나는 녹음을 해 놓았기에 증거가 있다. 김달진 선생도 참가했다.

국립현대미술관 다다익선 복원방향 및 계획발표에 맞춰 이번에 다다익선에 관련된 모든 아카이브를 총집결한 도록이 나왔다 160쪽 그중에 백남준 선생이 이정성 기술자(현 아트마스터 대표)에게 모니터 고장이 나면 그 after service에 대해서 조치(가장 적합한 기종으로 교체)를 취할 수 있는 전권을 위임하는 아카이브를 남겼다(오른쪽) 그런데 국립현대미술관은 다다익선의 작가 백남준의 의도를 전혀 반영하지 않고 있다 이 아카이브에 의하면 법적으로 이 작품을 고칠 수 있는 사람은 이정성 기술자뿐이다. 물론 이 작품의 저작권자 켄 하쿠타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지금 잘 연락이 안 되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다다익선의 접근(복원방향)에서 너무 쉬운 문제를 너무 어렵게 푼다>
다다익선은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이 책임을 지고 백남준의 위임을 받은 이정성 아트 마스터 대표에게 다다익선을 살릴 수 있는 브라운관은 살리고, 살릴 수 없으면 나머지는 다 옛 모양을 살리는 round LCD로 교체해서 지금 당장 고치라고 하면 모든 것이 다 끝난다. 이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이다. 다만 아시바(공사를 위한 사다리) 작업 때문에 당분간 관객들이 불편할 수는 있다. 이렇게 단순한 작업을 안 할 이유가 없다. 물론 전기선 작업과 전기 분배기(분배기 개폐기) 등은 전문기술이 필요하겠죠. 그러나 이미 난해한 기초 공사 등은 다 끝났다. 예산이 30억(?) 이미 국립이 백남준에게 1993년 10억은 빚졌다.

추신 오래된 CRT(독일식 표현으로 브라운관) 교체의 문제점: 중소기업 제품이 신뢰도가 낮다. 남은 재고품도 A급이 아니고 B급 C급일 수 있다.(땜질식 임시방편이 될 수밖에 없다) -이정성 아트 마스터 대표

1998년 다다익선 관련 사진 백남준 1986년 10월 경 국립현대미술관을 방문하고 작품 설치를 제안하다 계획이 구체화되면서1987년 5월에 예산이 확정되어다 1988년은 무명의 한국이 세계무대에 데뷔한 해였다 그래서 중요한 해였다. 백남준 이번에 조국에 <큰 놈>을 선물하겠다고 선언하다. 그래서 무리하게 1003대 동시에 켜는 대형 전자 설치미술을 설치하다. TV 1003가구가 동시에 켠 작품이라니 믿을 수 없는 일이다 기염을 토했다. 그런데 운이 좋았다. 당시 기술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정성 기술자를 만나 성공하다


국립현대미술관(MMCA, 관장 윤범모)은 백남준의 <다다익선>(1988) 보존 및 복원을 위한 조사 경과와 운영 방향을 9월 11일 발표했다. --2022년 전시 재개 목표 및 3개년 복원 프로젝트 가동 복원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은 “국립현대미술관의 모든 역량을 동원해 <다다익선>의 복원에 주력할 것”이라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신중하게 접근하고자 하는 미술관의 의지를 지지해주시길 바라며, 작품의 전시가 재개될 때까지 많은 관심과 응원을 보내주시길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백남준의 <다다익선>은 1986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이 개관하면서 장소특정적 설치작업으로 구상돼 1988년 완성되었으며 이후 한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자리매김했다.

<다다익선>은 비디오아트의 창시자인 백남준의 유작 중에서도 최대 규모(모니터 1,003대)의 대표작이라는 점에서 이 작품의 보존 및 복원에 대한 세계 미술계의 관심이 지대하고, 향후 백남준 미디어아트 복원의 대표 사례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했다.

<브라운(CRT) 파: 원본성 유지하는데 노력> 그 방식은 브라운 파현재의 브라운관(CRT: Cathode-Ray Tube) 모니터가 탑재된 원형 유지를 기본 방향으로 보존하며, 2022년 전시 재개를 목표로 3개년 복원 프로젝트를 가동한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은 2018년 2월 안전성 문제로 <다다익선>의 상영을 중단한 직후부터 작품의 보존 및 복원과 관련해 국내․외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최선의 결론을 도출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특히, 독일 ZKM, 미국 MoMA, 휘트니미술관 등 국내․외 유수 미술기관 전문가 40여 명의 자문과 유사 사례를 조사하였고, 이 과정을 통해 미술관은 작고한 작가의 작품을 복원하는 데 있어 가장 기본적인 자세는 ‘원형 유지’이며 이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미술관의 임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작품은 어떠한 방식으로든 시대성을 반영하며 <다다익선>의 CRT 모니터는 20세기를 대표하는 미디어 매체로 미래에 20세기를 기억하는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백남준의 독일 테크니션으로 20여년간 그를 도왔던 요헨 자우어 라커(Jochen Saueracker)는 독일 뒤셀도르프 쿤스트 팔라스트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백남준의 작품 <Fish Flies on Sky>(1983-85/1995) 등이 최근 이 재생과정을 통하여 2년에 걸쳐 복원되었다고 설명하였다.

비디오 브라질(Videobrasil) 디렉터 솔랑주 파르카스(Solange Farkas)는 최근 영국 테이트 미술관에서 있었던 워크숍에 참석한 후, 방법이 있다면 CRT 모니터를 유지하는 것이 가장 최선이라는 의견을 전했다.


LCD파: CRT 모니터를 최대한 활용하되 부품 확보 어려움 등 한계로 인한 다른 모니터로의 전환이 불가피한 경우, LCD(LED), OLED, Micro LED 등 대체 가능한 최신 기술을 부분적으로 도입해 CRT 모니터와 혼용한다.


시험가동 전기투입하는 백남준 1988

<혼합파> 최근 미국의 휘트니미술관에서 7년에 걸쳐 복원하여 전시한 <Fin de Siècle II>(1989)의 경우, 일부 작은 크기의 모니터는 LCD로 교체하였지만 구할 수 있는 크기의 경우 여전히 원래의 CRT를 유지

2018년 2월 이후 전문가 자문 내용: 국립현대미술관은 2018년 2월 <다다익선> 상영을 중단한 이후, 국내·외 전문가 약 40여명의 의견을 조사했다. 방문, 이메일 등 개별 면담 방식으로 진행됐으며, 자문회의와 전문가 세미나 등도 개최했다.

이를 통해 관련 사례 수집과 기술검토 등 보존 방향을 결정하는데 중요한 정보를 제공받았다. 자문의견 정리에서 가장 중요하게 고려한 것은 백남준의 작품세계에 대한 이해도와 실제 작품의 보존처리 경험 여부였다. 아울러 <다다익선> 개별 작품에 대한 연구와 이해를 바탕으로 한 의견에 중점을 두었다.

<다다익선>의 모니터에 대한 문제와 더불어 영상 소프트웨어의 정비, 구조적인 개선 등이 함께 이루어져야 하고, 현재의 작품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기록, 여러 미술계 의견을 모아 미술사적 담론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의 중요성에 대한 언급도 있었다.


<해체파> 그리고 곡면구현이 가능한 OLED 또는 필름 디스플레이 기술을 적극 활용하는 방법 등이 제시되었으나 추가적인 기술검토가 필요한 사안이다. 소수 의견으로는 작품이 서서히 소멸해가도록 두자는 의견과 완전히 해체·보관하자는 의견 등이 있었다.

<결론:  국립현대미술관 측이 낸 보도자료의 비중을 보면, 브라운 방식(CRT 80%), LCD 방식(10%), 혼합방식(9%), 해체 방식(1%) 순이다. 균형감이 부족하다. 개인적으로 나는 브라운 방식을 100% 좋아하지만 실제로 구현한 가능성은 5%가 안 된다고 본다.

<관련기사> 
https://www.sedaily.com/NewsVIew/1VO7DHLVBG

 

백남준 '다다익선' 원형 그대로…2022년 다시 켠다

지난 2015년 총 1,003대의 모니터 중 고장난 320대를 수리·복원한 후 재가동된 ‘다다익선’ 모습. 하지만 지난해 2월 상단부 누전현상 발견으로 화재 위험이 우려되면서 다시 가동이 중단됐다./사진제공=국립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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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모 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실장은 “원본 유지가 이상적이기는 하나 현실적이지 못한 ‘탁상공론’”이라며 “복원 후 또 몇 년 지나지 않아 수리 공사를 거듭할 것을 뻔히 알면서 이 같은 결론을 도출한 것은 말이 안 된다”라고 평가했다

정준모 선생의 말이 나는 옳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땜질식으로 3년 후 수리하고 나서 다시 고장이 나면 그때 여론은 급속하게 악화될 것이고 다다익선을 이 참에 없애자는 강경파가 등장할 가능성도 매우 높다. 이번에 복원하면서 적어도 25년간 버틸 수 있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준비기간이 3년은 너무 짧고 5년은 가야 한다 독일 사례를 보면 작은 작품(Prebell man) 하나 고치는데 7년 걸렸다 독일의 백남준 전공 박사 6명이 붙었다 다다익선은 그런 작품에 1000배의 규모다

김남수 전 백남준아트센터 연구원은 “백남준은 네오아방가르드 진영을 거치면서 현대미술의 원본성을 강조하는 입장 및 그러한 가치 관념에서 자유로웠다”면서 “진보된 광학적 물리학을 바탕으로 첨단 매체로 교체하는 것에 대한 가능성을 개방하고 확장하는 것이 백남준의 진취적인 정신에 걸맞다”는 의견을 전했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음모(?)] 한마디도 정직하지 못한 것이다. 뭔가 속임수가 있다는 말이다. 어제 다다익선 기자간담회에서 다디익선 테크니션으로 처음 보는 두 분이 참석했다 1988년부터 2016년까지 백남준 작품의 테크니션 이정선 대표를 초대를 하지 않고 게다가 이정성 대표는 다다익선을 직접 제작한 장본인이고 이 작품에 대해 세계에서도 가장 많이 아는 사람이다 다다익선만 30여 년 수리하고 복원하고 설치한 최고의 전문가다 게다가 이 분은 백남준의 작업 위임장까지 받은 자격자이다 그런데 왜 기자간담회에 듣도 보도 못한 낯선 분들을 초대하는 건 그 뒷면에 음모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기자간담회 발표를 담당자가 아닌 사람이 하는 것도 이상하다 물론 이 분은 오랫동안 이 문제에 대해서 실물을 담당해왔다 그러나 지금은 책임자가 아니다.

Fish flies on sky Fish Flies on Sky. 1975

요헨이 지금 한국에 와 있다 이분은 독일지역에서 백남준 작품을 복원 설치하는 1980년대부터 백남준 기술자다. 이분은 역시 독일인답게 브라운관(CRT) 방식을 선호하는 면이 있다 나도 그것을 매우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실제로 독일에서 브라운관(CRT) 구입할 수 있다 아래 작품은 뒤셀도르프 쿤스트 팔라스트 미술관 백남준 소장품(하늘을 나는 물고기 Fish flies on sky Fish Flies on Sky. 1975 (1982), 
two-channel video installation with variable number of monitors, color, silent, 
dimensions variable. 
Collection Museum Kunst Palast, Düsseldorf 
© Estate of Nam June Paik)이고 이 작품이 고장 났을 때 역시 요헨이 수리했다 그런데 이런 작품은 다다익선의 500분의 1 정도 브라운관 수리도 나쁘지 않다. 그리고 모니터 크기가 1-2가지라 작업도 쉽다 이번에 국립에서 브라운관 설치 성공사례를 들고 있는데 이걸 다다익선에 적용한다는 것은 전혀 현실에 맞지 않는 터무니없는 이야기다

백남준 훈손들 다다익선 처리하는 모습 보고 좀 섭섭해 할 것 같다. 그러나 그러지 않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이런 걸 미리 알고 있었고 그래서 그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인생은 길고 예술은 짧다" 내 작품이 없어지면 어떠냐? 다만 내가 산 인생에서 내가 생각한 아이디어는 오래갈 것이다. 백남준다운 천재적 발상이다.

백남준이 하는 전위예술은 80년대 후반 90년대 전반 그 당시 국내 현대미술계의 흐름과 맞지 않았다. 그러나 그때만 그런 것이 아니라 2006년 돌아가셨지만 30년-40년이 지난 지금도 마찬가지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백남준 큰 전시를 한번도 개최하지 않은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한국미술이 세계미술로 나가가려면 지금이라도 지역미술 촌티를 벗어야 한다.

<1분유머> 지난 9월 11일 국립현대미술관 기자간담회 내가 사전에 양해를 구하고 이런 기회가 많지 않아 좀 질문이 길어질 거라고 협조를 구했는데도 내 질문 거의 끝날 쯤 마이크를 끊어버리다. 국회도 아니고 좀 황당한 생각이 들었다. 다시 양해를 구하고 겨우 1분 더 마무리 질문을 하다. 질문 내용이 길어서 그런 것이 아니고 질문 내용이 국립 미술관과 입장이 달랐기 때문일 것이다.

1988 다다익선 제막식 당시 관객에게 준 백남준의 사인 국립은 백남준 타계 1주년(2007) 사진전(오른쪽 사진전 포스트)을 열고 그 이후 12년간 한번도 전시를 열지 않았다. 첨단과학을 예술화한 백남준 전시를 열지 않았다는 것은 현대미술관의 자격이 없다는 소리다. 내가 이번 국립의 조치에 대해서 의심하는 이유다. 백남준에 대해 애정과 관심이 없다는 전과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백남준에게 진 빚도 있다

2007년 백남준 부인 시케코 여사도 사진전에 참가했다 몸이 불편해 지팡이를 짚고 앉아있었다. 그녀는 국립현대미술관에 대해 불만이 많기로 소문이 나 있다 (한국 문체부 미술실무자로 김찬동 현 수원미술관장이 뉴욕 백남준 자택을 방문했을 때 시게코 여사가 한국정부가 백남준을 위해서 해준 것이 뭐가 있냐며 화를 내면서 따졌다고) 2007년 과천에서 그날도 그녀의 표정이 매우 어두웠다. 입을 꽉 다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