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갤러리, 5월 23일 칸디다 회퍼 개인전 《RENASCENCE》 개최
전시기간: 2024년 5월 23일(목)–7월 28일(일)
전시장소: 국제갤러리 K2
"인류의 오랜 지혜문서와 다양한 정보와 지식이 축적된 박물관 도서관 등에서 풍겨나오는 아우라를 사진의 힘으로 보여주다 칸디다 회퍼" - 현대적이지 않지만 영원성을 간직하고 있는 어떤 것을 보여주고 싶다" - '칸디다 회퍼'
“현대적이지 않지만 영원성을 간직하고 있는 어떤 것을 보여주고 싶다.” - 칸디다 회퍼¹
국제갤러리는 오는 5월 23일부터 7월 28일까지 서울점 K2(1, 2층)에서 칸디다 회퍼(Candida Höfer)의 개인전 《RENASCENCE》를 개최한다. 지난 2020년 부산점에서의 개인전 이후 4년 만에 열리는 이번 전시에서는 앞선 팬데믹 기간에 리노베이션 중이었던 건축물, 그리고 과거에 작업한 장소를 재방문하여 작업한 신작 16점을 선보인다. 회퍼는 지난 50여 년의 시간 동안 사진이라는 매체를 이용해 도서관, 박물관, 공연장 등 문화적 장소를 정밀한 구도와 디테일로 담아내는 데 주력해왔다. 인간의 부재를 부각함으로써 역설적으로 공적 공간이 상정하는 인간의 풍요로운 사회적 활동과 그 역사를 강조해온 작가는 이번 신작들을 통해 전인류적 역경을 회생과 쇄신의 관점에서 바라보고자 한다.
‘다시 태어나다’라는 의미로 직역되는 전시 제목 ‘Renascence’는 오랜 역사를 축적한 서구 문화기관의 물리적, 제도적 ‘재생’과 팬데믹 이후 공공영역의 ‘회복’이라는 주제의 교차점에 위치한다. 특히 전시작의 피사체로 등장하는 미술관 및 박물관들은 2010년대부터 기념비적 건축물의 복원 기준에 따라 과거의 흔적을 보존하는 동시에 오늘날의 현대적 속도에 맞추기 위한 기반시설의 재정비에 중점을 두고 리노베이션을 진행해왔다. 회퍼의 카메라 렌즈는 문화공간의 지지체를 복원하는 건축가들의 절제된 시각을 드러내는 동시에 작가 특유의 객관적, 중립적 시선의 미학을 담는다. 그의 작업은 곧 건축물의 역사, 건축가와 제도의 개입, 작가 본인의 미학적 관점 등 서로 다른 주체들이 조우하는 특정 공간의 초상이기도 하다. 이러한 주제는 인공적인 조명 연출을 배제하고 주관적인 개입을 최소화함으로써 인간 문화활동의 산물로서 존재하는 공적 공간의 면모를 투명하게 조명하는 그의 작업 방식과도 조화를 이룬다.
한편 이번 작품들은 건축물의 리노베이션이라는 물리적 재생이 은유하는 공공영역의 제도적, 사회적 재생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지며, 팬데믹과 기후 위기 등 도시 생태계의 변화에 유연하게 반응하기 위한 해당 공공기관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고민으로도 확장된다. 그 결과, 이번 전시는 작품이 제시하는 쇄신과 재생의 가치를 통해 ‘단절’이나 ‘멈춤’으로 표현되는 팬데믹의 시간을 리노베이션 전후에 놓인 건축물의 유기적 생애주기라는 관점에서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는 연속성의 시간으로 재고찰하도록 권유한다.
전시는 K2 1층, 프랑스 파리에 위치한 카르나발레 박물관(Musée Carnavalet Paris)의 리노베이션 이후 내부 공간의 변화에 주목한 작업에서 출발한다. 파리의 역사를 한눈에 담은 카르나발레 박물관은 1880년에 개관했으며, 16세기에 지어진 르네상스 양식의 카르나발레 저택(Hôtel Carnavalet)과 17세기 건축물인 르 펠레티에 드 생-파르고 저택(Hôtel Le Peletier de Saint-Fargeau), 두 개의 건물로 구성되어 있다. 유구한 전통을 자랑하는 박물관은 2016년부터 샤티용(Chatillon) 건축설계사가 중심이 된 협업으로 리노베이션을 진행했는데, 특히 장소 고유의 매력을 보존하면서도 국제적 범위로 확장된 규모의 방문객을 수용할 수 있는 유기적이고도 통일성을 갖춘 레이아웃의 수립을 최우선 목표로 삼았다. 박물관은 개관 이래 현재까지 파리 시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회퍼는 2021년 재개관을 앞둔 2020년에 이 곳을 방문했다. 리노베이션을 통해 추가된 철제와 나무 재질의 나선형 계단을 다각도로 주목한 작가는 이를 고대부터 현대를 관통하는 파리 시의 파편적인 역사와 박물관의 다층적 시간대를 연결하는 현대적인 시각적 모티프로 삼고 내부의 구조를 조명한다. 켜켜이 쌓인 무수한 시간들을 간결한 모더니즘적 제스처로 함축하는 현장을 카메라 앵글에 담아냄으로써 공간의 변천사를 시각적 명료함과 구상적 평면성에 기반해 감상하도록 유도하는 방식이다. 이는 박물관 1층 복도 끝 공간을 가득 메운 드라마틱하고도 장식적인 벽화를 촬영한 작품들과 나란히 설치되어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벤델 대저택(Hôtel de Wendel)의 무도회장을 위해 1925년 커미션으로 제작된 이 벽화 작업은, 1989년 박물관에 재설치된 이후 최근 복원 과정을 거쳐 새롭게 그 자태를 드러낸다. 특히 이 작품들은 창문과 거울 테두리의 금색 프레임, 공간을 압도하는 자연광으로 인한 투명성과 광도를 부각시키는 동시에 대칭 구도나 역동적 장식 등의 조형 요소로 공간에 새로운 질서를 부여한다.
카르나발레 박물관의 복원된 벽화에서 붉은 장막이라는 시각적 요소로 강조되는 장식적이고도 연극적인 분위기는 베를린의 코미셰 오페라(Komische Oper Berlin)의 텅 빈 무대와 관객석을 담은 또 다른 연작과 연결된다. 코미셰 오페라의 원형이 되는 19세기 후반의 건축물은 2차 세계대전 공습으로 심각한 손상을 입었고, 1947년 전후 동독 산하에서 현재의 이름으로 재개관했다. 이후 본 건물은 1960년대에 재건축되었고, 1980년대에 다시 복원 과정을 거친 바 있다. 2023년부터 현재까지는 리허설과 백스테이지 공간을 확장하는 등 리노베이션이 진행 중인데, 회퍼는 2022년도에 이 장소를 방문해 촬영했다. 비록 변화 이전의 모습을 피사체로 삼았지만, 그에게 공간이란 건축물이 처음 지어지던 순간부터 이후 수많은 변화의 흔적들이 가미된 여정을 실어 나르는 ‘시간의 매개체’ 역할을 하며 이 곳에서 앞으로 벌어질 일을 예견하도록 독려한다. 이때 관람객은 공간의 변화를 목도하는 목격자의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
K2 2층에는 베를린에 위치한 또 다른 모더니즘의 랜드마크인 베를린 신국립미술관(Neue Nationalgalerie Berlin)의 리노베이션 이후 모습을 선보인다. 1965년과 1968년 사이에 서베를린의 문화예술 지역인 쿨투어포룸(Kulturforum)에서 모더니즘 건축의 거장인 루트비히 미스 반 데어 로에(Ludwig Mies van der Rohe)의 설계로 지어진 베를린 신국립미술관은 ‘빛과 유리의 전당’으로 불리는 서구 모더니즘의 아이콘이다. 유리와 철재로만 제작된 미술관 건물은 미스 반 데어 로에가 미국 망명 30년 만에 모국에 남긴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그가 일생 동안 일관되게 추구해 온 ‘적을수록 많다(Less is more)’라는 건축 철학과 기술력의 총 집합체다.
베를린 신국립미술관은 2015년부터 6년에 걸쳐 건축가 데이비드 치퍼필드(David Chipperfield)의 지휘 하에 기존 인테리어 자재의 보존을 원칙으로 한 보수 작업을 진행했다. “최대한 기존 비전 그대로(As much Mies as possible)”를 모토로, 건축물의 개별 구성요소들을 해체한 후 청소 및 복원 과정을 거쳐 원래 위치에 복구하는 등 새로운 건축가의 개입은 최소화하고 기반시설의 보존 및 강화 등에 주력했다. 회퍼는 복원 직후인 2021년 이곳을 방문, 재정비를 거친 공간 곳곳을 카메라 렌즈로 포착하며 다시금 작품에 드러나지 않는 인간의 흔적들을 암시했다. 여기에는 복원 이전의 방문객들과 복원 과정에 직접 개입한 시공업자들의 활동 모두가 포함되고, 따라서 작품은 다양한 인간활동들이 조우하고 조율되는 장이 된다.
지난 2001년에 작품화 한 스위스의 장크트갈렌(St. Gallen) 수도원 부속 도서관을 회퍼가 팬데믹 기간 중 재방문해 작업한 동명의 〈Stiftsbibliothek St. Gallen 2021〉 연작도 자리한다. 작가는 파두츠의 리히텐슈타인 현대미술관에서 2022년에 열린 《Candida Höfer: Liechtenstein》전 준비를 계기로 장크트갈렌 수도원 도서관을 재방문했다. 장크트갈렌 시에 위치한 이 수도원은 719년부터 1805년까지 유럽에서 가장 중요했던 수도원 중 하나로 꼽혔다. 18세기에 대대적으로 바로크 양식으로 개축된 바 있으며, 1983년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장크트갈렌 수도원 도서관을 담은 2001년작에서, 회퍼는 내부 공간의 가장 눈에 띄는 정교한 프레스코화와 로코코식 몰딩으로 장식된 아치형 천장에 주목하며 지적 진보에 대한 낙관주의적 시선을 유지하도록 고안된 도서관 공간의 질서와 시스템에 시선을 집중시킨 바 있다. 당시 이 작품들에는 도서관을 이용하는 방문객들이 일부 포함되기도 했다. 하지만 새로 촬영한 2021년작에서는 인물의 요소를 배제했을 뿐만 아니라, 과거와 현재의 시간성이 교차하는 내부 공간을 조명함으로써 그의 과거 작품과 대화를 이루도록 한다. 사람의 존재를 없앤 후 공간에 남은 흔적과 빛, 미묘한 공기의 감각에 집중하고 이를 완벽한 대칭 구도로 카메라 렌즈에 담은 회퍼는 이로써 시간의 흐름이 포착된, 영원성을 담은 공간의 초상을 완성했다.
작가소개
칸디다 회퍼는 1944년 독일 에베르스발데에서 태어났다. 1973년부터 1982년까지 뒤셀도르프 아카데미에서 첫 3년 동안 올레(b. 1939)에게 영화를, 그 이후에는 현대 독일 사진을 이끈 베른트 베허(1931-2007)와 힐라 베허(1934-2015) 부부로부터 사진을 수학했다. 당시 수업을 함께 들었던 토마스 스트루스(b. 1954), 토마스 루프(b. 1958), 안드레아스 거스키(b. 1955) 등과 함께 ‘베허 학파’ 1세대로 일컬어지는 회퍼는 1975년 뒤셀도르프의 콘라드 피셔 갤러리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다. 이를 시작으로 작가는 지난 50여 년간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해오며 공적인 장소, 특히 인간이 부재한 건축의 내부를 특유의 정교한 구도와 빼어난 디테일로 구현해왔다.
전세계 유수의 미술관과 갤러리에서 수많은 개인전과 그룹전을 선보인 작가는 2002년에 제11회 카셀 도큐멘타에 참여했으며, 2003년 제50회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마틴 키펜베르거와 공동으로 독일관을 대표했다. 2018년 소니 월드 포토그래피 어워드의 사진공로상을 수상했으며, 다가오는 9월 베를린 예술 아카데미가 주최하는 ‘2024 케테 콜비츠 상’을 수상할 예정이다. 작품의 주요 소장처로는 뉴욕 현대미술관, 파리 퐁피두 센터, 프랑스 국립도서관, 쾰른 루트비히 미술관, 스톡홀름 근대미술관, 마드리드 레이나 소피아 국립미술관,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마이애미 루벨 패밀리 컬렉션, 취리히 프리드리히 크리스찬 플릭 재단 등이 있다. 작가는 현재 쾰른에 거주하며 활발히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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