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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전시행사소개

[국제갤러리] '아룬나논차이', 혼돈의 '지구촌' 태워, 새 '지구본'을

국제갤러리, 12월 15일 코라크릿 아룬나논차이 개인전 《이미지, 상징, 기도》 개최
- [불타는 회화] 혼란과 암흑과 무질서의 지구촌을 붉게 불태워 새 지구본을 만들자 한용운은 타다 남은 재가 다시 불길이 되고 <알 수 없어요> 시 세계와 거의 일치한다 - 청바지(Denim: 데님(DENIM): 진의 한종류로 청바지등의 소재가 되는것을 의미합니다. 즉 굵은 무명실로 짠 튼튼한 능직의 면직물에 인디고 염색을 한 원단을 이야기한다)로 작업 하는 코라크릿 아룬나논차이 태국 작가, 그는 말한다. 청바지가 미국에서 나왔지만 지금 모든 사람이 입듯이 미술관은 서양에서 나왔지만 이제는 아시아 작가들이 세계 중심에서 활동하고 있다  <오마이뉴스 관련기사> 

 

청바지를 캔버스로... 젊은 태국 작가의 특출남

29일까지 국제갤러리에서 현대미술가 '코라크릿 아룬나논차이' 개인전

www.ohmynews.com

불길에 휩싸인 세상

"지리한 장마 끝에 서풍에 몰려가는 검은 구름의 터진 틈으로 / 언뜻언뜻 보이는 푸른 하늘은 누구의

얼굴입니까?" 한용운. 이번 국제갤러리 태국 코라크릿 아룬나논차 작가의 페인팅의 색채(재로 만든 검은 바닥) 뉘앙스를 닮았다. 이 작가에게 푸른 하늘은 유토피아를 상징한다. 바닥을 관객이 밟음으로써 관객은 작가의 작품 속으로 들어간다

하여간 2022년 아트 파워에서는 한국의 양혜규보다 더 높이 평가 받았다 그러나 미술계에서 순위를 정한다는 것은 올림픽도 아니고 논센스다. 영미사람들 좋아하는 유치한 놀이일 뿐이다 전시장 바닥을 불로 태운 검은 재가 깔려 있다 그리고 작가의 꿈(유토피아)이 담긴 시가 새겨져 있다

지구촌을 불타고 있는가? 지구를 태워 다시 정화시키고 다시 새로운 지구본을 만들어보려고 하는 것 같다. 거기에는 동서도 없고 물질과 정신도 없도 모든 것인 하나가 되는 정결한 인류의 정화된 평화와 포용과 개방이 가능한 공존의 세상만 있을 뿐. 그의 작품은 정말 우리의 머리를 아프게 할 정도로 검 붉은 색채로 혼란과 암흑과 무질서의 세계를 그려내고 있다

태국작가 아룬나논차이 개인전, '불타는 그림' 거기에서 삶과 죽음 동양과 서양도 다 녹여버린다. 애도의 땅에서 악몽의 무정부주의 같은 혼란의 세상에서 벗어나 인류가 새롭게 태어나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를 한다 그에게는 동양의 영성과 서양의 물성을 다 같이 태워 녹인다 결국은 모두가 하나 되는 대동세상 일원론적인 세계 공존의 슈퍼 정화 사회를 꿈꾼다. 불태움이란 결국 정화를 상징한다. / / 그가 좋아하는 시와 기도는 이렇다 / "태초에 발견이 있었다 / 잠을 방해하는 새로운 악몽 / 혼란에 질서를 부여할 필요 / 우리는 외면당한 기도를 통해 이 세상을 만들어 나간다. / 격변 너머에 광휘 있고 / 통합에 대한 향수 / 애도의 땅에서 / 공기에, 잡을 수 없는 것에, 당신을 맡긴다 / 유령은 갖지 못한다, 아무것도"

그림은 화염처럼 불타고 있는가? 회화에서 이런 것이 가능한가? 이번 국제갤러리 태국작가 Korakrit Arunanondchai 에서 그 가능성이 보인다. 유동성 시대에 그림으로만 보면 격렬한 모션과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처럼 보여 관객의 넋을 나가게 해 그들의 혼을 홀리게 한다. 조형적인 면에서 누구와도 구별되는 독특함이라는 미덕을 가지고 있다. 물의 상상력보다는 불의 상상력에서 더 많은 영감을 얻는 것 같다.

국제갤러리 코라크릿 아룬나논차이(Korakrit Arunanondchai) 전시를 보면 한용운의 시 '알 수 없어요' 연상된다

바람도 없는 공중에 수직(垂直)의 파문을 내이며
고요히 떨어지는 오동잎은 누구의 발자취입니까.
지리한 장마 끝에 서풍에 몰려가는 검은 구름의 터진 틈으로
언뜻언뜻 보이는 푸른 하늘은 누구의 얼굴입니까.
꽃도 없는 깊은 나무에 푸른 이끼를 거쳐서 옛 탑() 위의
고요한 하늘을 스치는 알 수 없는 향기는 누구의 입김입니까.
근원은 알지도 못할 곳에서 나서 돌뿌리를 울리고
가늘게 흐르는 작은 시내는 구비구비 누구의 노래입니까.
연꽃 같은 발꿈치로 가이 없는 바다를 밟고 옥 같은 손으로
끝없는 하늘을 만지면서 떨어지는 해를 곱게 단장하는 저녁놀은 누구의 시()입니까.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
그칠 줄을 모르고 타는 나의 가슴은 누구의 밤을 지키는 약한 등불입니까.

광주비엔날레
광주비엔날레

<광주비엔날레 때 그의 작품을 임펙트하게 본 기억이 난다. 화면에서 재가 불이 되고 다시 불이 재가 되고 창조와 파멸이라는 무정부상태에서 작가(코라크릿 아룬나논차이 Korakrit Arunanondchai 태국작가, 1986년생)의 시공간은 생사를 넘어 환원 불가능한 우주적 순환구조를 이야기하다. 5차원 방정식 풀기보다 어렵다. 하여간 그의 유명세는 놀라울 정도다 영국 미술 전문지 아트 리뷰매년 미술계에서 영향력 있는 인물 〈파워 100〉 중 88에 이름을 올렸다.

<역사회화>라는 불리는 검은색 바닥을 밟는다는 것은 관객의 몸이 작품의 안으로 들어가는 참여의 경험을 유인하는 것으로 본다. 전시 공간을 뒤덮은 검은 흙바닥에는 작가의 기도문이 부조로 새겨져 있는데, 그 기도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태초에 발견이 있었다 / 잠을 방해하는 새로운 악몽 / 혼란에 질서를 부여할 필요 / 우리는 외면당한 기도를 통해 이 세상을 만들어 나간다. / 격변 너머에 광휘 있고 / 통합에 대한 향수 / 애도의 땅에서 / 공기에, 잡을 수 없는 것에, 당신을 맡긴다 / 유령은 갖지 못한다, 아무것도" 

국제갤러리, 1215일 코라크릿 아룬나논차이 개인전 이미지, 상징, 기도개최 전시기간: 20221215() 2023129() 전시장소: 국제갤러리 K3 이미지, 상징, 기도ㅡ 코라크릿 아룬나논차이재는 비현실의 공간에서 우리의 기도가 가 닿는 곳이다. 불은 모든 것을 더이상 환원 불가능한 상태로 태워버린다. 세상이 불에 타던 시절을 누가 기억할 것인가? 재는 불길을 끌 수도 없지만, 다시 불타오를 준비도 되지 않은, 분류 불가능한 사회의 무정부 상태를 구현한다. 그 재라는 잔여물은 반대항으로, 단체로, 체제로 아직 재탄생하지 못했다.

우주의 진정한 중심에는 우주적 시간이 존재한다. 이는 우리가 둘러앉아 모든 것의 이전과 이후의 시간에 관한 이야기를 주고받을 때 접근할 수 있는 시간이다. 이 이야기는 창조와 파멸의 순환에 불을 붙인다. 신이 존재하는 곳이 바로 여기다. 우리의 기도가 닿는 공간이 여기다. 이것이 죽음이다. 죽음 너머에 존재하는 것은 결코 지켜지지도, 깨지지도 못할 약속이다. 이는 언제나 우리에게 갈망의 감각을 남긴다. 이 약속 아래 사람들이 모인다.

불에서 재에 이르기까지, 정치 시스템이란 소멸 직전에 이르러서야 자신을 온전히 의식할 수 있게 되는 것인가? 불길에 휩싸인 세상의 역사 속 희생자들을 통해서만 이해할 수 있는 것인가? 승자에 의해 구축된 기념비 밑에 흩어진 재는 우리의 패배를 가리킨다.

바슐라르는 불사조의 특권은 타인의 로부터 탄생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이 재탄생한다는 것에 있다했다. 불사조는 재로 이루어진, 재로 뒤덮인 공동체를 피한다. 죽음으로 귀결되는, 심지어 죽음 너머로 귀결되는 자신의 논리를 통해 터무니없는 자율성 원칙을 따르는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생 내지는 새로운 불에 대한 희망이 전혀 없는 공동체, 소각된 내가 타인의 재와 뒤섞이는 공동체야말로 중요한 것이다.

[1] 우리는 불을 지피고 불을 들여다보면서 이 세상과의, 그리고 서로와의 상징적 관계를 형성해왔다. 우리가 이미지와 상징을 찾기 위해 볼 주변으로 모여들 때 그 밑의 땅과 그 위의 하늘이 증인이 되어주었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의미가 탄생할 것이다, 꿈의 형태로. 꿈이 역사보다 훨씬 강력하므로. 꿈은 죽음을 피해 가기 때문에.

2021년 국제갤러리 전속 작가로 결정된 후 갤러리에서 선보이는 첫 전시다. 영상, 퍼포먼스에서 회화, 설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매체를 넘나들며 작업하는 아룬나논차이는 다양한 형식을 정교하게 엮어내며 개인과 사회, 삶과 죽음, 다양한 신념 체계를 아우르는 존재와 의미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제시해왔다. 본 개인전은 재와 흙으로 다져진 바닥의 전시장에서 작가의 대표 연작 역사회화를 선보인다. 전시장 바닥의 가장자리를 따라 흐르는 기도문 위에는 작가의 역사회화빈공간(하늘회화)작품이 걸려있다.

2012년에 시작된 역사 회화연작은 작가의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군으로, 청바지를 주요 재료로 삼는다. 서양 중심의 세계화와 노동의 역사에 대한 고찰의 일환으로 청바지를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작가는 재료를 표백한 후 그 위에 다층의 이미지를 쌓아 올린다. 자신의 신체를 각인하거나 땅의 텍스처를 고스란히 옮긴 이 이미지들은 이후 불이 활약할 수 있는 무대, 불이 연소할 수 있는 재료가 된다. 다시 말해 작가는 이 회화에 불을 붙이는데, 이때 불이란 작업의 과정이자 주제로 거듭난다. 형식과 내용이 뒤섞이는 것이다. 회화에 불을 붙인 후 작가는 문제의 타는 모습을 사진으로 남긴다. 불을 끈 후에는 불타고 남은 회화의 파편, 그 화재의 결과인 재, 그리고 불타는 과정을 기록한 사진이 한데 결합한다. 결국 최종 결과인 작품은 스스로의 생성 과정을 생생하게 품은 양상을 띠게 된다.

매체(medium)’라는 미술 용어와 영매라는 초자연적 대상의 관계성에 관심을 갖던 아룬나논차이는 영혼의 존재와 그들이 우리의 정치 시스템 및 현실에 미치는 영향력에 대해 오래 탐구해왔다. 이 맥락에서 불과 재라는 요소는 작가가 자신의 사적 경험, 주변의 사회적 사건들을 고찰하고 서술하는 방식에 주요한 재료가 되어왔다. 모든 것을 더 이상 환원 불가능한 상태로 태워버리는 불과 그 결과물인 재를 둘러싼 이 여정을 통해 작가는 보는 이로 하여금 창조와 파멸의 우주적 순환구조에 대해 조망할 기회를 제공하고자 한다.

[작가 소개] 1986년 태국 방콕에서 태어난 작가 코라크릿 아룬나논차이는 2009년 로드아일랜드 디자인스쿨에서 미술학사를 취득하고 2012년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미술학 석사를 받았다. 현재는 방콕과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하며 전 세계 곳곳에서 전시 및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주요 개인전으로는 스톡홀름 현대 미술관(2022), 서울 아트선재센터(2022), 싱가포르 아트 뮤지엄(2022), 쿤스트할 트론헤임(2021), 포르토 세랄베스 현대 미술관(2020), 밀라노 스파치오 마이오키(2019), 헬싱키 키아스마 현대미술관(2017), 볼차노 무세이온 미술관(2016), 파리 팔레 드 도쿄(2015), 뉴욕 모마 PS1(2014) 등이 있다.

이외에도 광주 비엔날레(2021), 이스탄불 비엔날레(2019), 휘트니 비엔날레(2019), 베니스 비엔날레(2019), 시드니 비엔날레(2016) 등 여러 비엔날레에 참여했다. 현재 그의 작품은 뉴욕 휘트니 미술관, 파리 퐁피두 센터, 파리 루이비통 재단 미술관, 런던 테이트 모던, 오슬로 아스트루프 펀리 현대 미술관, 런던 자블루도비치 컬렉션, 난징 스팡 현대미술관 등 세계 주요 기관에 소장되어 있다. 또한. 작가는 고스트(Ghost)’라는 이름의 방콕 기반 예술 및 퍼포먼스 축제의 공동 설립자로도 활동 중이다. 최근에는 영국 미술 전문지 아트 리뷰가 매년 미술계에서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을 선정하는 파워 10088위에 이름을 올렸다.

국제갤러리, 1215일 코라크릿 아룬나논차이 개인전 이미지, 상징, 기도개최 3 / 6 코라크릿 아룬나논차이(b. 1986) You who wish to find prayers, look for it in the ashes2022 Metallic paint and acrylic polymer on bleached denim on inkjet print on canva/1 마이클 마더, 불길에 휩싸인 세상의 불의 정치(로우맨&리틀필드, 2020)국제갤러리, 1215일 코라크릿 아룬나논차이 개인전 이미지, 상징, 기도개최2 / 6국제갤러리는 20221215일부터 2023129일까지 K3공간에서 태국 출신의 현대미술가 코라크릿 아룬나논차이(Korakrit Arunanondchai)의 개인전 이미지, 상징, 기도를 선보인다.

Korakrit Arunanondchai’s recent performance-based video , ‘Songs for dying / Song for living’ / 지금 국제갤러리에서 전시 중인 '코라크릿 아룬나논차이' 태국 작가는 이미 8월부터 아트선재센터에서 <죽음을 위한 노래(Songs for dying)>가 몸과 영혼, 대중의 공동체성과 국가주의 이데올로기의 분리에 대해 논의한다면, <삶을 위한 노래(Songs for Living)>는 어떻게 공동체성이 몸과 영혼의 재결합이라는 은유를 바탕으로 좀 더 높은 힘에 대한 믿음에 의해 새롭게 변화될 수 있는지 이야기한다. 시각적 레퍼런스로 등장하는 귀신, 샤먼, 바다거북이와 같은 애니미즘적 상징들은 근대 과학으로 설명되지 않는 영적인 세계를 물질적 세계와 연결하는 매개체로서 인간의 삶 너머 시간 개념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작가는 영적인 세계와 물질적 세계의 접속은 개인과 공동체 사이를 떠다니는 기억의 파편들이 특정한 움직임을 발생할 때 가시화된다고 주장한다. 작가의 공감각적 영상 및 설치 작업은 이러한 움직임이 생산하는 에너지와 이 에너지에 내재된 변혁의 가능성을 관람객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시도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