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짧고 인생은 길다", 백남준의 엉뚱한 예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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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백남준 다다익선 재가동 축하전 '다다익선:즐거운 협연' 과천관에서 내년 2월 26일까지
▲ 2022년 9월 15일 열린 "다다익선" 재가동 축하 기념행사
오마이뉴스 관련 기사 http://omn.kr/2114v
국립현대미술관(관장 윤범모)은 백남준 탄생 90주년을 맞아 <다다익선>의 보존·복원 3개년 만에 완료, 9월 15일 재가동 기념행사와 퍼포먼스를 '과천관'에서 진행됐다. 손상된 브라운관(CRT) 모니터 737대 수리했고, 6인치 및 10인치 266대 모니터 외형을 살리면서 평면 디스플레이(LCD) 교체했다. 총예산이 37억 들었단다.
동시에 백남준 아카이브전 '다다익선: 즐거운 협연'전도 내년 2월 26일까지 3층에서 연다. 전시는 그동안 축적된 자료 200여 점과 구술 인터뷰로 구성됐다.
벌써 36살 된 '다다익선', 재가동 보니 역시 첨단이다. 그 규모과 내용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당시 '88 세계올림픽'이 열리면서 온 국민의 염원과 에너지를 집결시킨 느낌이다. 당시 첨단의 기술자, 건축가, 엔지니어가 투입되었지만, 백남준 없었으면 불가능했다. '다다익선' 복원은 어찌 보면 백남준의 '예술적 고고학' 개념을 구현한 것인지 모른다.
국립현대미술관, 총동원
▲ 다다익선에 들어가는 영상 콘텐츠 "백남준(NJP I, II, III)"
이 작품의 외양이 '경천사지 10층 석탑'이나 '다보탑'을 닮아 한국적이다. 우리 문화유산을 전자화한 작품이라는 인상을 주니 더 친근감이 간다. '다다익선'은 비디오아트를 넘어 콘텐츠 풍부한 미디어아트가 되었고 세계를 연결시키는 인터넷의 단초가 되었다.
다다익선 영상은 남대문, 동대문, 고려청자, 한복과 파리 개선문, 파르테논 신전, 뉴욕빌딩 겹치는 장면 그리고 ‘86 아시안 게임과 자동차 경주, '무어만', '보이스', 무용가 '커닝햄'과 작곡가 '사카모토' 같은 예술가 공연 장면 등을 담고 있다.
다다익선은 주지하다시피 여러 번 고장 나, 백남준 애호가들 애태웠다. 복원방식에서 의견도 분분했다. 이번에 재가동되면서 축제로 되살아났다. 한예종 '최준호' 교수가 '다시 연결된 신호' 제목으로 이 연출을 맡았고, 창작그룹 '노니' 등 참가해 대성황을 이뤘다.
3층 기획전은 국립미술관 6명 과장 및 5명 학예연구사가 다 달라붙었다. '이지희' 연구사는 뉴욕 출장까지 다녀왔다. 4년간 축적된 자료와 7명 전문가 구술 인터뷰가 근간이 되었다.
안타까운 건 첫날 점등된 지 5분 만에 모니터 1대가 꺼졌다. 3년 전, 다다익선 복원 관련 기자회견에서 국립미술관은 원형보존을 위해 CRT를 살린다고 해 걱정했다(*) *http://omn.kr/1kxbd
이번에 수리를 맡은 '권인철' 연구사도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모든 전자제품은 20년 지나면 반드시 고장이 난다. 전자작품도 같다. 이걸 너무 잘 아는 백남준 고장 나면 바로 신형으로 바꾸길 권했다. 어쨌거나 CRT를 지금이라도 LCD로 교체하면 된다.
▲ 워싱턴 "스미스소니언" 미국 국립미술관 내부, 백남준 전용 아카이브실 ⓒ Smithsonian American Art Museum
'백남준아트센터'(용인)가 있지만, 그동안 국립미술관은 백남준 전시에 열정이 적었다. 미국 워싱턴에 있는 '스미스소니언' 국립미술관과도 비교된다. 2006년 백남준이 타계했을 때, 이 미술관은 백남준 상속자 '하쿠타'의 허락을 받아 백남준이 모아 놓은 기물을 7대 트럭에 실어 미술관 아카이브 실로 날랐다.
사실 이런 오브제는 쓰레기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미국미술관 학예사들, 10~20년 계획으로 지금도 이 작업을 진행 중이다. 이 미술관은 백남준 10주기인 2012년~13년 9개월간 '글로벌 비전'이라는 제목으로 그 중간과정을 전시했다. 우리도 이런 점은 배워야 한다.
그럼 왜 '다다익선' 만들었나?
80년대까지 국립미술관은 그 위상을 높이기 위해서 1986년 과천관으로 이전했다. 그 과정에서 "왜 다다익선을 만들게 되었나?" '김원' 건축가와 인터뷰를 통해 알아보자.
"당시 국립미술관이 과천으로 이전하면서 추진위원장은 '이경성', 국제 공모해 재미 건축가 '김태수'가 당선돼 그의 안대로 공사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고요. 완공 때쯤 당시 '이진희' 문화부 장관이 현장을 방문했는데 누가 "어? 뉴욕 구겐하임 닮았네?"라는 말에 장관이 신경이 날카로워지면서 비상이 걸렸어요"
▲ 1986년 백남준의 국립현대미술관 방문. 왼쪽부터 남중희, 백남준, 김원.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연구센터 소장
그래서 미술관은 그 대안으로 건물에 시선이 가지 않고 작품에만 시선이 가게 해야 한다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이때 백남준과 가까운 '천호선' 예술국장이 백남준을 추천했다. 백남준 이 소식을 듣고 "내 작품은 첫눈에 사람을 사로잡고. 다음에 뭐 나올까 계속 보게 되지! 모니터만 주면 한번 해보겠다"라고 해 성사되었다. 애초 예산도 없었다.
이제 모니터를 얻는 게 미술관의 문제였다. 그래서 처음엔 '대우'에 청했으나 난색을 보였고, '삼성'도 곤란하다고 하자, 김원 선생이 중재에 나섰다. "삼성 TV, 1대 50만, 1.000대면 5억 정도니, TV보다 광고효과 더 낮지 않으냐"라고 설득하자, 마침내 승락이 났다.
그리하여 백남준은 삼성으로부터 1300대 기증을 받았다. 삼성의 큰 기부다. 하지만 백남준 일찍이 전 세계 돌아다니며 한류를 일으켰고 덩달아 한국의 삼성 브랜드가치를 높이는 데 이바지했다. 이에 '홍라희' 여사도 백남준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이정성' 기술자는 누구?
이 작품의 아이디어를 제공한 사람은 백남준이나 그걸 가동한 사람은 '이정성' 전자 테크니션이다. 그는 다다익선을 계기로 백남준과 인연을 맺었고, 이후 평생 백남준과 생사고락을 같이했다. 1988년 이후 지금까지 30여 년 '백남준의 손'이 되었다.
▲ 1988년 다다익선 "이정성" 기술자와 "안종현" 운영 및 시설관리 책임자 그리고 "백남준"
어떤 사연이 있었는지 그의 인터뷰(2021년 12월) 영상을 보자. "그 시절 난 작은 전자회사에서 CATV나 삼성전자의 쇼룸 구성 그런 걸 하고 있었고, 삼성전자에서 부탁한 530대짜리 'TV Wall'을 만들었어요. 아마 그걸 참고했는지 나한테 오신 것 같아요."
그때 백 선생은 "나 1,003대짜리 TV 타워를 만들려고 하는데 할 수 있겠어?" 물으셨어요. 난 그거 반은 해 봤으니까 할 수 있어요" 했더니 선생님께서 묻지도 않고 "그럼 잘해줘!" 이렇게만 말하고 미국으로 가셨어요. 큰소리를 쳤는데 "아, 이거 큰일 났다 싶었죠"
그러니 "당시 제작할 때 전기드릴 등도 없어 직접 손으로 했어요. 비디오 4개 틀어서 1,003대가 작동하려면 분배기가 필요한데 우리나라엔 이걸 파는 가게도 없었고, 일본에서 수입해야 하는데 힘들었죠. 부품은 삼성전자에서 공급받았어요"라고 밝혔다.
또한 "다다익선 할 때 백남준은 자세하게 부탁하거나 설명도 없이 작가가 원하는 정도만 언급해 나머지는 나보고 다 알아서 하라는 식, 그래서 당황스러웠죠. 지금 생각해보면 겁이 없었어요. 백남준은 다다익선 3분의 2만 전원이 와도 성공이라고 봤는데 전원이 다 들어왔으니 얼마나 좋아했는지 몰라요!"
학예연구실장 '유준상' 헌신
▲ 1989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임히주, 백남준. 유준상 당시 국립현대 학예연구실장
이번 간담회에서는 34년 전 1988년 4월 11일 타자로 작성한 다다익선 보도자료가 제공되었다. 백남준 예술에 대한 글은 백남준과 동갑인 당시 학예연구실장 '유준상'이 썼다. 비디오아티스트 백남준과 다다익선 작품에 대한 그의 애착과 열정이 각별했음을 알 수 있다.
"예술과 과학이 협력해야 인류의 소통을 최대화하는 기능이 가능해진다. 비디오아트는 바로 그런 면에 최적이다. 예술이 사회적 기능을 실천하려면 새로운 복합예술방식이 필요하다. 현대는 예술이 기술과 미적 감각의 총집합체가 되고, 상호보완적 방식이 돼야 한다"
그러면서 "백남준은 '만년에 딱 한 번, 천년에 딱 한 차례('萬歲一期 千載一會)가 온다는 투철한 정신으로 비디오에 시대성을 담았고, 그 결정판으로 다다익선을 완성했다며 이 작품을 조국에 바치겠다는 일념으로 추진했다"라고 적고 있다.
"예술은 짧다", I HAVE?냐 I GIVE?냐
1부 다다익선 이야기를 끝내면서 백남준이 던진 괴짜 예술론, "인생은 길고, 예술은 짧다"가 뭘 의미하는지 논해보자. 이건 백남준이 당시 다다익선의 골조설계를 맡은 '김원' 선생에게 한 말이다.
▲ 2022년 7월 5일, 김원 선생님 광장건축환경연구소에서 인터뷰하는 영상
김원 선생은 이어 "난 건축가이니까, 직업상 건물이 50년, 100년 가는 걸 보통이라고 생각하죠. 그런데 백 선생은 내게 '예술은 짧고 인생은 길다'라는 명언 남겼어요. 이미 바이올린 끌고 가는 행위예술로 예술이 순간에 사라진다는 걸 보여줬죠"
또 전자제품은 보통 몇 년 지나면 문제가 생긴다는 걸 아는 두 사람은 다다익선 '8만 시간? 돌리면 고장 나는데 어떻게? 물으니 백남준이 난 몰라,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이런 대답도 나왔고 백남준은 이정성에게 고장 나면 최신형으로 교체하라고 위임장까지 써줬다.
2017년, 2019년 연속 '베니스비엔날레'에서 순간성과 우발성을 부각시킨 퍼포먼스 아트가 '황금사자상'을 받았다. 이것은 "예술은 짧다"는 백남준의 미학과 통한다. 또 독일에서 5년마다 열리는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미술축제 '카셀 도쿠멘타(예산 600억)'가 며칠 전, 막을 내렸다. 여기 주 전시장 기둥에 I have, I give(독점? 나눔?)라는 낙서가 보인다. 이것도 "예술은 짧다"는 뉘앙스를 풍긴다.
예술은 결국 모든 이에게 즐거움을 주는 거지(give), 손에 쥐고 오래 소유하는 게(have) 아니라 빨리빨리 나누라는 것이다. '보이스' 말처럼 "누구나 예술가", '백남준' 말처럼 "전시의 주인공은 관객", 철학자 '하버마스' 말처럼 "모든 곳이 공론장"이라는 철학이 깔려있다. 나치를 경험한 나라답게 독일은 이번 '카셀'을 통해 600억을 기부한 셈이다. -> 2부와 연결
[1] 게임형 온라인 프로그램 <다시, 다다익선> 이미지 www.themorethebetter.kr
[2] 2022년 11월 8일 9명 국내외 백남준 전문가가 참가하는 국제학술 심포지엄 <나의 백남준> 과천관 대강당에서 열린다. 그리고 11월 9일부터 <백남준 효과전> 30여 명 작가 참가해 120여 점 선보인다.
"내 어릴 때 별명 '헐렁이', 영어로 '소프트웨어'지"
[2부] 문서, 사진, 영상물의 기획전 '다다익선: 즐거운 협연' 과천관에서 내년 2월 26일까지
백남준, 유머의 귀재: '헐렁이'는 소프트웨어
▲ 1988년 백남준을 만났을 때 그를 회상하는 "남중희" 선생 인터뷰 영상
2부는 백남준 유머로 시작한다. 백남준이 1988년 9월 15일 과천관 다다익선 기념사에서 한 말 "내 어릴 때 별명은 '헐렁이', 헐렁이를 영어로 하면 '소프트웨어'다. 그 헐렁이를 삼성전자가 받아준 게 내 작품이다!"로 시작한다. 그는 예술만 아니라 유머에서도 천재였다.
그의 입담은 재치와 에스프리로 넘친다. "예술이란 고등사기이고 사람을 얼떨떨하게 하는 것"이라는 등 "내가 5천 시간을 들여 1분 비디오를 만들어 5백만 명이 봤다면 이게 시간을 잘 유용한 것이다" 또 "누가 당신이 대통령 되면 세계적 문제 어떻게 해결하겠냐고 묻는다면, 석유를 쓸모없게 만들겠다. 대신 정보를 에너지원으로 삼겠다." 등 부지기수다.
그럼 지금부터는 88년 당시 다다익선 기계 기사였던 '남중희' 선생은 인터뷰를 통해 당시 기자간담회 주변 이야기를 들어보자. 그해 6월 미술관 직원으로 김포공항으로 백남준을 마중 나갔고, 당시 테러 등 위험으로 회담은 못 했고, 과천으로 바로 모시고 왔단다. 관장실 옆 소회의실에서 기자간담회를 했는데 여러 매체 기자들이 많이 모였다고.
<추신> <"내 어릴 때 별명은 '헐렁이', 헐렁이를 영어로 하면 '소프트웨어'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패션. 도올 김용옥은 그만의 한복 패션이 있다. 백남준에게는 그의 멜빵 거지 패션이 있다. 모든 천재성은 바로 그의 패션에서 나온다. 헐렁이 백남준 그는 멜빵을 제대로 맨 모습 보기 힘들다. 왜 그랬을까? 세계에서 가장 앞선 첨단사고를 하려면 패션은 이 세상에서 가장 편하게 옷을 입어야 나오기 때문이다. 바로 그의 <헐렁이(21세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유쾌한 soft power)> 패션 철학이 여기서 나오는 것이다.
▲ 백남준 I "달은 가장 오래된 TV", 가변크기, CRT TV 모니터 13대, 12-채널 비디오, 컬러, 무성, LD, 1채널, 컬러, 유성, DVD 1976(2000). 백남준아트센터 소장품
기자들, 백남준에게 던질 질문 노리고 있었으나 그 앞에서 입도 벙끗 못했다고. 왜? 백남준은 물 마시고 좌중을 둘러보더니 "태고 때는 말이야, 우리 동북지방에 한 '3개월 동안' 한 번도 해가 뜨지 않고 늘 밤인 적이 있었어."라고 말을 꺼냈단다.
그러면서 "일본, 중국, 한국은 음력을 쓰잖아. 당시에는 해가 없었기 때문에 모두 달을 봤겠지. 달을 보고 가령 예를 들어 달무리가 서면 내일 비 오겠다, 달이 이제 그 어떤 크기에 따라 날짜가 얼마만큼 갔다고 알 수 있는 거고. 이 지구상 모든 사람 달을 쳐다보면서 정보를 공유했지" 그걸 주제로 한 내 작품이 '달은 가장 오래된 TV'라고 하셨단다.
백남준은 음력을 사용하는 아시아 문화를 양력을 사용하는 서양 문화보다 더 높이 쳤다. 사실 옛날 할머니들 음력으로 사셨는데 계절의 변화 예측은 정확했다.
▲ 백남준 I "선덕여왕" 1993 백남준아트센터 소장
백남준이 이렇게 말을 꺼내자, 기자들 순간적으로 숙연해지고 질문할 엄두도 못 냈단다. 기자들 선생님 입만 쳐다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선덕여왕은 첨성대를 지었어, 선덕여왕 개구리 소리 듣고 상대 군사정보를 파악했지" 그래서 "내가 선덕여왕 로봇을 만들었지"라고 백남준은 천문학 관심 많은 이 신라의 여왕을 높이 평가한다는 말을 했다는 것이다.
이어서 백남준은 "옛날에 '니체'가 신은 죽었다!'라고 했잖아! 마찬가지로 이제는 '종이는 죽었어!' 단 화장실 종이는 빼고" 뭐 이런 식 말로 좌중을 웃기고, 그날 난 선생님의 타고난 입담, 천재성을 느꼈단다. 또 백남준은 인쇄매체에서 영상매체로 소통방식을 바꾼 예술가답게 유머만 아니라 '소통의 귀재'로 기억된다고.
3층 기획전, '한국으로의 여행’에서 출발
▲ 시게코 I "한국으로의 여행(Trip to Korea)" 9분. 장면 중 한 컷. 백남준 한국방문에 대해 크게 만족하다. 1984년
그럼 앞에서 언급한 3층 기획전을 가보자. 여기서는 미공개 자료, 사진, 영상(인터뷰) 등이 소개된다. 현장에서 보지 못하고 손끝으로 만지지 못한 걸 생생하게 체험하게 하는 '아카이브'전이다. 먼저 1984년 작 '한국으로의 여행(Trip to Korea)'이 눈에 들어온다. 당시 전두환 시대라 사진 촬영이 금지돼 백남준 조수 '폴 개린'이 비밀로 찍었다고, 물론 편집은 나중에 '구보타 시게코' 여사가 했다.
이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 '이지희' 학예연구사가 백남준 살았던 뉴욕 백남준 아파트(머서 가[Mercer St] 110번지) 출장으로 시작한다. 거기서 우연히 '한국으로의 여행' 영상을 발굴하고 이번에 소개하게 된 것이다. 이지희 학예연구사는 이렇게 얘기를 꺼냈다.
"제가 뉴욕 소호 백남준 살던 곳 벨 누르니, 노신사 '노만 밸러드(N. Ballard, 백남준 조수, 레이저아트 거장)' 나왔고 실내에는 크고 작은 모니터는 반짝반짝 불이 나오고, 벽에는 한자, 영어, 드로잉이 빼곡히 걸려 있었고, 지금은 'G. 시게코 비디오아트 재단'이 됐어요"
이 출품작은 1984년 '굿모닝 미스터 오웰'로 세계적 선풍을 일으킨 백남준 그해 6월 김포국제공항에 도착해 34년 만에 '금의환향'해 고국 땅을 밟으면서 만난 가족과 취재진, 팬들 반갑게 인사하는 모습과 선친 산소를 성묘하는 모습 등이 기록한 영상물이다.
백남준 당시 입국 인터뷰 중 하나만 소개하면, 기자가 "왜 조국을 놔두고 외국에서만 활동합니까?"라고 묻자, 백남준은 "문화도 경제처럼 수입보다 수출이 필요합니다. 나는 한국문화를 수출하기 위해서 외국을 떠도는 문화상인입니다"라고 허를 찌르는 대답을 했다.
지구촌 평화기원 '세계와 손잡고'
이번에는 '세계와 손잡고(Wrap around the world)'를 보자. 이 작품은 1988년 9월 11일 KBS 1TV에서 '서울 올림픽'을 기념해 세계 11개국과 위성(47분)으로 연결한 작품이다. 여기서 백남준 한복과 갓을 쓰고 TV 앞에서 제사 지내는 퍼포먼스 익살스럽다. 그리고 '다다익선' 앞에서 '김덕수패'가 펼친 '사물놀이'가 생중계되기도 했다.
▲ 백남준 I "세계와 손잡고" 단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47분, 1988. EAI 소장
당시 이 작품의 연출자는 KBS PD인 '박윤행' 선생이었다. 인터뷰 영상도 소개된다. 그는 "당시로는 위성 방송이 첨단기술이라 난해해 가슴 조였다"고 털어놓았다. 중간에 방송이 끊어지면 큰일이기에. 그에게도 가까이 본 백남준은 어땠냐? 고 물었다.
그는 "아주 자신만만하면서도 대단히 자상한 분이었어요. 쉽게 범접하기 어려울 그런 인물일 것 같으면서도 일단 벽을 허물면 자상하기 짝이 없었죠. 세심하게 마음 써 주시고 그런 부분이 아주 따뜻한 대가였죠"라고 답했다.
이 영상은 세계 올림픽을 맞이해 전 세계 춤과 노래 대중문화의 향연을 소개한다. 그야말로 다다익선이다. 영상에서는 각국 문화, 예술, 스포츠와 관련된 내용이 많다. 브라질 '삼바' 축제 등도 나온다. 특히 훈련된 코끼리가 축구를 하는 인도 영상은 엽기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영국 천재 연예인 '보위'의 춤이 여기서 하이라이트인데 당시 BTS가 있었다면 그를 대신했을 것이다. 아직 '케이팝' 등 한류가 없는 시대 한국 문화가 아직 미국 공공방송에서는 존재감이 별로 없을 때 백남준은 한국 전통문화의 전파자로 큰 몫을 했다.
이 영상을 이번에 제대로 감상하게 되었다. 사실 이런 영상은 냉전의 벽을 허물고 사회주의권에도 변화를 주는 작은 단초가 되기도 했다. 백남준은 암울한 시대를 걷어내고 지구촌 공존 위한 축제를 유쾌하게 풀어내려 했다. 그의 목표는 언제나 전 세계를 하나로 연결하는 것이다.
'폴 개린'의 백남준 예술론
▲ 2016년 백남준 추모 10주년에 독일, 미국에 흩어진 백남준 기술자와 함께 한국 왔을 때 찍은 "폴 개린" 사진
이제 이지희 학예연구사가 뉴욕에 출장 가 2022년 6월 22일 백남준 아파트에서 만난 미국인 조수 '폴 개린(Paul Gerrin)' 이야기를 좀 하겠다. 그도 비디오작가다. 그는 보는 백남준 비디어아트는 이렇다.
"백남준 비디오는 자연처럼 강물이 흐르고, 새가 노래를 부르고 바람이 불어오는 걸 느끼게 되죠? 그러나 자연 속 콘텐츠를 보는 게 아니라 감각을 통해 느끼는 거죠. 그의 작품은 TV를 보는 것과 다큐 영화와는 전혀 달라요. 시청각적 센세이션이고 의식의 흐름이에요"
또 우리가 듣도 보도 못한 백남준 이야기가 있다. 1995년 제1회 '광주비엔날레' 때 일이다. 백남준은 이 행사 성공을 위해 다음 해 쓰러질 정도로 열정적이었다고. 그 당시 백남준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도발적 퍼포먼스를 감행했는데 뭘까? 바로 돈이 가득 든 초록 가방을 가지고 다니면서 외국 작가들에게 직접 현금을 나눠주는 것이다. 기막힌 코미디 같은 사건이다!
이건 광주비엔날레 성공적 개최를 위한 그만의 행동방식이었는데 관객이 80만 명이 몰렸으니 대성공이다. 그 목적은 한국을 문화 중심지로 세계지도에 올리는 것이었다. 한국에서 처음 열린 가장 중요한 세계적 미술축제였다. 당시 <르몽드>가 광주비엔날레 소식을 전했는데, 한국이 문화국으로 도약하는 걸 은근히 경계하는 눈초리였다.
다다익선 복원과 그 교훈
▲ 아카이브전 "고장 난 TV", 다다익선 10인치 모니터 점검 사진 2020
여기에는 '고장 난 TV' 코너도 있다. 여기서는 그동안 다다익선 복원 과정을 상세히 알려준다. 2003년 모니터를 전면 교체, 2018년 2월 전면적 복원을 위해 가동을 '중단'했고, 2019년 9월 '다다익선 복원 3년 계획'을 세웠고, 국내외 전문가 자문을 거쳐 이번에 '다다익선' 수리·보존·복원을 완료했다는 이야기다.
이제는 다다익선을 24시간 보는 것은 무리다. 작품을 보호하기 위해서 가동시간은 주 4일, 하루에 2시간 정도로 제한한다. 이런 20년간 과정을 통해 관객들은 다다익선은 더 소중한 작품임을 깨닫게 했다. 이번 보존복원 사례를 <백서>로 만들어 국내외에 소개할 예정이란다.
이은주 사진가, 말년 백남준 찍다
이은주 I "백남준 초상" 인화지에 크로모제닉 프린트 1992. 작가소장
그 밖에도 이번 기획전에는 '움직이는 아카이브' 등 코너도 있다. 다른 건 생략하고 백남준의 사진가 중 한 사람인 '이은주' 작품을 소개한다. 그녀는 1992년부터 백남준 허락을 받아 그를 찍기 시작했다. 백남준의 '해맑은 인간미'를 돋보이게 하는 사진이 많다. 그러나 1996년 백남준이 뇌졸중으로 쓰러진 이후 작업실에서 투병기 장례식 사진도 훌륭하다.
이은주 작가는 그의 사진 인생 40년에서 1992년이 가장 각별했단다. 왜냐하면 그해 '마더 테레사'와 '천경자'와 그리고 백남준과 인연을 맺었기 때문이다. 이은주 작가는 백남준 장례식 사진을 찍으면서 꽃밭에 누운 그를 보고 '꽃밭으로 돌아가셨어요'라는 제목의 사진을 남기기도 했다 --> 1부 연결
[추신] 2022년 11월 8일 국제학술 심포지엄 <나의 백남준> 과천관 대강당에서 열린다. 9명 국내외 백남준 전문가 참가한다. 그리고 11월 9일부터 <백남준 효과전> 30여 명 작가 참가해 120여 점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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