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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전시행사소개

[학고재] 김현식 작가: '玄' 경지, 신기 단계로 치닫다

《김현식 전: 현玄》 2021년 9월 8일(수)~2021년 10월 17일(일) 학고재 본관 서울 종로구 삼청로 50 [온라인](OROOM, online.hakgojae.com) 회화 338점 회화 58점 02-720-1524~6 <아래> 현玄을 보다B〉 에폭시 레진에 아크릴릭, 나무 프레임 90x90x7cm 2021

玄란하고 우아한 색채와 손길의 디테일에서 신의 경지에 도달하다 

<노자, “현(玄)은 온갖 신묘함의 문이다”> 학고재는 2021년 9월 8일(수)부터 10월 17일(일)까지 김현식(1965, 경상남도 산청) 개인전 《현玄》을 연다. 지난 2018년 학고재 개인전 이후 3년 만의 개인전이다.

‘하늘 천(天), 따지(地), 검을 현(玄), 누를 황(黃)’. 누구에게나 익숙한 천자문의 첫 네 글자다. 으레 ‘검을 현’으로 알고 있는 현(玄)은 단순한 검은색을 뜻하지 않는다. 또 다른 ‘검다’는 의미를 지닌 글자, 검을 흑(黑)이 빛을 흡수하는 검은색이라면, 현(玄)은 모든 색이 섞여서 검어진 색을 뜻한다. 더 나아가 색뿐만이 아닌, 우주의 진리가 섞인 색이라고 한다. 김현식은 이러한 현(玄)을 작품에 담는다. 모든 것을 품은 공간을 드러낸다.

김현식은 평면 속에 색이나 형태를 이용하여 깊고 아득한 공간을 만들어 낸다. 그것이 노자의 “현은 온갖 신묘함의 문”이라는 생각을 미술로 풀어내는 방법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에 공개되는 340여 점의 작품은 그가 동아시아의 사상과 미감을 서구 모더니티에 불어넣어 얻은 결실이다. 그는 언제나 작가를 넘어서 관객과 함께하는 미술 여행의 길잡이이길 원한다. 이번에는 노자가 말한 “만물의 신묘함 을 간직하고 있는” 현(玄)의 세계로 우리를 안내한다. 표면 너머의 무한한 공간과 조우함으로써 외면 우월 중심의 현대 사회에서 지치고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함이다.

2018년 2월에 연 개인전 《빛이 메아리치다》에서 김현식은 평면으로부터 입체적인 공간을 경험할 수 있는 ‘불가능의 가능성’을 구현하고자 했다. 레진(resin)을 붓고 단단히 굳힌 후 긁어내는 행위를 여러 차례 반복하여 켜켜이 쌓인 시간의 흔적을 평면 속에 드러낸 작업을 선보였다. 이번 전시에서 그는 그동안 구축해왔던 평면 속 공간을 더 넓고 깊게 구현했다. 레진을 붓고 말리는 반복적인 행위를 통해 끝을 알 수 없는 심연에 다다르고자 했다. 동양에서 말하는 현(玄)으로서의 절대 공간을 표현함으로써, 숭고 주의 회화를 재해석한 것이다.

전시 주제 현玄: 색을 넘어선 본질로서의 공간

‘하늘 천(天), 따지(地), 검을 현(玄), 누를 황(黃)’. 누구에게나 익숙한 천자문의 첫 네 글자다. 으레 ‘검을 현’으로 알고 있는 현(玄)은 단순한 검은색을 뜻하지 않는다. 또 다른 ‘검다’는 의미를 지닌 글자, 검을 흑(黑)이 빛을 흡수하는 검은색이라면, 현(玄)은 모든 색이 섞여서 검어진 색을 뜻한다. 더 나아가 색뿐만이 아닌, 우주의 진리가 섞인 색이라고 한다. 김현식은 이러한 현(玄)을 작품에 담는다. 모든 것을 품은 공간을 드러낸다.

눈에 보이지 않고 두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을 시각 예술로서 구현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이를 위해 김현식은 거꾸로 접근하는 방법론을 택했다. “그 깊이가 아득하여 오묘한 색으로 보이는 현(玄)”이기에 역으로 ‘색채를 먼저 보임’으로써 아득한 깊이를 가늠하게 한 것이다. 따라서, 그의 작품에서 시각적으로 다가오는 표면의 색이나 형은 공간으로 넘어가기 위한 관문과도 같다. 그 문을 넘으면 본질과 현상 사이를 유유히 흐르는 운율을 품는 공간, 현(玄)의 세계를 직감할 수 있다.

동아시아의 철학을 통한 서구 미술의 재해석

김현식은 홍대 회화과를 졸업했다. 회화과를 서양화과라고 칭하는 대학들도 있듯이, 현재 한국의 고등 미술 교육은 서구의 모더니티(modernity)로서의 미술 학습에 주력하는 경향이 있다. 서구에서 발생한 ‘모더니티’라는 개념에 대해서 동아시아인은 후발 주자일 수밖에 없기에, 한국의 동시대 미술 작가가 이 개념에 대해 어떠한 입장을 취하는지에 따라 작가로서의 정체성이 정해지기도 한다. 이에 대해 김현식은 동양의 미감과 사상을 통해 서양에서 제창한 숭고주의 회화를 재해석하는 방식을 택함으로써 자신의 입장을 표명했다.

김현식의 공간은 원말 명초에 활동했던 예찬(倪瓚, 1301-1374)의 작품에서 일관되게 드러나는 절대 공간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그는 이 공간에 대해 ‘불변의 상(常)의 세계’라고 언급하며, 자신 또한 작품 안에 이러한 공간을 구현하기 위해 일관되게 노력해왔다. 또한, 그는 마크 로스코(Mark Rothko, 1903-1970)의 작품에서 드러나는 색이 가지는 힘과 압도적 깊이감에 주목했다. 다만, 숭고주의 회화가 작품의 규모로 관객을 압도하며 숭고미를 추구했다면, 김현식은 면적이 아닌 깊이로서 공간을 구축했다는 차이가 있다. 이러한 그의 행보는 모더니티와 한국의 전통을 함께 계승하고자 했던 한국 근대 미술 거장들을 떠올리게 한다. 이진명 미술비평가는 이번 전시 서문을 통해 김현식을 “김환기, 윤형근으로 이어지는 한국 대가들의 유산을 상속받을 추정상속인(推定相續人)이라고 확신한다.”고 밝혔다.

300개의 우주를 수놓은 은하수(星座 갤럭시) 중 나의 별은 어디에 있나?

<거울〉(2021) 연작(300점)의 고요한 화면은 관찰자의 시선이 점진적으로 심연에 다다르게 한다. 작품을 보다 보면, 표면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과 작품 속 공간 사이를 시선이 넘나들게 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김현식은 이 연작을 큰 규모로 설치함으로써 우주를 구현하고자 했다. 연못에 비친 자신이 모습을 보고 이전에는 몰랐던 감정을 깨닫게 되었던 신화 속 나르시스처럼, 모든 것을 품은 현(玄) 속에서 새로운 자신을 느낄 수 있기를 바라는 작가의 의도다.

[작가소개] 김현식은 1965년 경상남도 산청에서 태어나 1992년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를 졸업했다. 학고재, 모거모던아트(런던), 아트 로프트(브뤼셀), 노블레스 컬렉션 등 국내외 여러 기관에서 개인전을 선보였다. 국립현대미술관(과천), 부산시립미술관(부산), 시안미술관(경북 영천) 등 주요 기관에서 열린 단체전에 참여하기도 했다. 아트 바젤 홍콩(홍콩), 아트 브뤼셀(벨기에), 아트 파리스(프랑스) 등 해외 아트페어에서 컬렉터들의 관심을 이끌어내며 좋은 성적을 거둔 바 있다. 울산에서 거주하며 작업 중이다.

[작가노트] 玄을 보다: 내 작업의 색이나 형은 공간을 보이기 위한 작용으로서 존재한다. 나는 오랫동안 평면 속에 공간을 드러내기 위한 작업을 해왔다. 투명성이 좋은 레진의 선택이 그 가능성을 열었다. 레진의 투명성으로 자유로워진 시선은 화면의 표면뿐만 아니라 그 안의 깊은 곳까지 자유롭게 여행한다.화면의 맨 안쪽부터 겹겹이 쌓아 올린 선들 사이의 투명한 미지의 공간은 무엇일까?

나는 여기서 玄을 본다
玄은 색이 아니다. 玄은 본질과 그 드러나는 현상 사이를 유유히 흐르는 운율이고 빛을 담은 무색의 공간이다.
玄은 검은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품고 있는 완전한 무색이다. 그 깊이가 아득하여 오묘한 색으로 보일 뿐이다.
작업에서 무수히 그어진 선들은 모든 것을 품고 있는 玄의 공간을 시각화하고 싶은 나의 의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