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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유튜브

[백남준&노마드] <03강> 닫힌 '코로나와 열린 '노마디즘'

백해영 갤러리에서 지난여름에 열린 백남준 전시(나의 예술적 고향 파르나스)를 계기로 만들어진 백남준 아카이브 연구회인 <백남준과 친구들>이 제공하는 3번째 백남준 이야기 그 제목은 닫힌 '코로나' 시대와 열린 '노마디즘(노마드정신)'이다. 유라시아 견문의 자료가 일부 참고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anJ-KYBU7Yc&t=531s 

왜 노마드 정신(노마디즘)이 필요한가? 1) 견문 넓히기 / 2) 소통 원활하게 / 3) 동서의 상호 이해 및 교류 그래서 공존 공생 공유의 인류공동체 만들고 싶다는 염원에서 나왔다.

백남준 에세이 모음집 We are in open circuits

오늘 백해영 갤러리 백남준 연구회 <백남준과 친구들>에서 제공하는 3번째 백남준 이야기 요약
제목은 [백남준과 노마드] 부제는 <"닫힌 코로나 시대, 열린 노마디즘(노마드)"> 

1 <Intro> 하나 :백남준 신간 <우리는 열린 회로(세상) 속에 있다(We are in open circuits)> 작년 11월에 출간 왜 코로나 시대에 대한 대안을 이야기하다. 즉 <백남준, 오래전에 코로나 같은 닫힌 시대를 예언하고 오래전에 이미 열린 회로(인터넷, 유튜브, SNS, 페북과 트윗 그리고 줌)를 만들어 놓았다>
 
2 <Intro> 둘 : 대량실업시대 예술가의 사회적 역할을 무엇일까? 직업이 없어도 모든 사람이 재미있게 놀 수 있는 방법을 창조하는 것이 작품 창작과 함께 필수적 역할이다. <백남준이 한국이 1998년 IMF로 625 한국전쟁 이상의 참혹한 고통당할 때 한 위로의 말> "예술이 상대하는 건 영원이야"
 
3 <Intro> <사실 고인돌, 소통과 참여와 공동체의 회복, 쌍방 민주주의를 상징할 수도 있다> 백남준이 평생 고민한 것 중 하나가 시간이란 뭔가? 우리가 어떻게 시간 주인이 될 수 있는가? 백남준 답 황홀한 몰입이다. 그것은 언제 오나? 남을 위해 헌신할 때 어려움을 살필 때 온다고... 백남준은 시간 중 태초 시대 '선사시대'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작품 중 고인돌 있다. 인류가 만든 최고의 설치미술, 보이스도 고인돌 작품이 있다. 두 작가 비교해 보면 보이스는 '탈혼'이고 백남준은 '접신'이다. 백남준 스승인 '샤를 보들레르'는 시간 주인으로 사는 법은 <취하라> "TV는 우리가 시간을 변형시키고 되돌릴 수 있는 유일한 매체다"
 
4 <Intro> 넷 : 백남준의 거지패션과 왕방울 눈곱: "남이 나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하는 것을 포기한 순간부터 굉장히 자유로웠다"
 
5 <Intro> 다섯: 소통의 천재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나?/ <1> 박만우 2대 백남준아트센터 관장의 증언, 백남준은 전 세계의 석학과 과학자와 예술가와 끊임없이 소통하고 네트 워킹하는 아티스트> 백남준은 미국 나사의 우주 물리학자나 하버드대 미생물학 교수 같은 과학자뿐만 아니라 세계적 예술가 등 2500명(이 숫자는 박만우 관장의 말)의 전문가와 끊임없이 줄기차게 (전화 등으로) 소통을 했기에 세계적인 작가 세기적인 작가가 될 수 있었다고...

<2> 백남준 소통에 대한 준비 완료 10대에 이미 6개 국어 터득함. 백남준 처음 독일에 도착해 친구들에게 자신을 이렇게 소개하다 "나는 3개의 서양 언어와 3개의 동양 언어를 배우고 홍콩에서 카이로 그리고 그리스에 있는 레이카 비치를 방랑한 이 소수 대륙 소수 국가에서 온 한국인이다" 박만우 2대 백남준아트센터 관장의 증언, 백남준은 전 세계의 석학과 과학자와 예술가와 끊임없이 소통하고 네트 워킹 <백남준과 홍라희, 2007).>
 
<본론] 1 [노마드정신(노마디즘)란 뭔가?] -견문 소통 공존 <백남준과 코로나, 유행성 전염병(펜데믹 pendemic) 시대 노마디즘 그중 정주 유목민(Nomad) 시대><자크 아탈리> 21세기는 디지털 장비로 무장하고 지구를 떠도는 디지털 노마드(Digital nomad)
 
2. [백남준과 노마디즘] <왜 백남준은 그렇게 칭기즈칸과 마르코 폴로를 좋아했나? 왜 그들을 주목했나?> 왜냐하면 이들을 동서양 소통을 길을 연 선구자들이었기 때문이다. "선사시대, 우랄알타이족의 사냥꾼인 우리는 말을 타고 시베리아에서 페루(잉카), 한국, 네팔, 라플란드(핀란드)까지 세계를 누볐고, 그들은 농업 중심의 중국 사회처럼 중앙에 집착하지 않았고 몽골처럼 더 멀리 보기 위해 여행을 떠나 새 지평을 봤다." - 백남준
 
3. 1993년 베니스비엔날레에서 칭기즈칸을 소환하다. 또 단군왕검을 형상화한 작품 단군 스키타이 소환 그리고 왜 스키 타이가 들어갔나? 백남준은 우리 민족의 원류를 넓게 포함시킨다: 인디언, 핀란드, 훈족, 터키, 헝가리, 우랄 알타이, 말갈, 거란, 몽골, 동이족, 발해 다 우리 민족의 원류로 본다. 그런 소통의 신에는 마르코폴로 단군 칭기즈칸 외 훈족 알랙산더 러시아 여왕 등 포함 Alexander the Great, Attila the Hun, Catherine the Great, Genghis Khan.Marco Polo,
 
4 칭기즈칸과 그의 유사한 사람과 정신을 찬양한 인류학자 5명을 소개: 1) 웨더포드 2) 클로드 레비 스트로스 3) 브뤼노 라투르 4) Jack Goody 5) 박정진
<1> 웨더포드(Jack Weatherford), 미국 인류학자) 칭기즈칸 찬가 왜 그는 정복자이나 각 나라의 종교의 다양성을 최대로 존중하다. 그에 따르면 칭기즈칸은 평등, 신앙의 자유, 관용, 다문화주의 같은 보편가치를 가장 먼저 실천한 역사적 인물이다" - <참고> news.joins.com/article/21921472 그는 도 이런 말도 한다 몽골제국 원나라 한국만은 왕조를 유지하고 고려 여성 여왕처럼 대접 왜 미모와 지혜가 뛰어남 그는 칭기즈칸이 주는 교훈 크게 평가
 
<2> 여기서 <빛은 동양(orient)에서> 이게 괜한 소리 아냐. 20-21세기 유럽의 양심적 지식이 3명이 있다. 하나는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이고, 백남준 상을 받은 '브뤼노 라투르', 그리고 J영국 인류학자 Jack Goody (1919년-2015년) 95세에 사망. 특히 구디는 서양이 동양의 역사를 훔쳤다고 함
 
<3> 한국의 인류학자 백남준 연구자 박정진(한양대 의대 수료, 국문학과 문화인류학 전공 시인) 그의 저서 <백남준 굿으로 보는 비디오 아트 읽기> 출간 10년 되었다. 좀 어렵다. 박 교수는 세계적 천재 백남준과 들뢰즈 칸 비교. 백남준 들뢰즈 비교 2명의 동양과 서양 천재의 비교
<결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백남준과 코로나>, 닫힌 세상 열린 회로
 
백남준 신간 <우리는 열린 회로(세상) 속에 있다(We are in open circuits)> 작년 11월에 출간 왜 코로나 시대에 대한 대안을 미리 이야기함 셈이다 즉 <백남준, 오래전에 코로나 같은 닫힌 시대를 예언하고 오래전에 이미 열린 회로(인터넷, 유튜브, SNS, 페북과 트윗 그리고 줌)를 만들었다 유행성 전염병 시대 백남준의 만든 말 <정주 유목민 시대>이 생각난다. 움직이지 않으면서 움직이는 노마드 시대, 유행병, 유행성 전염병 시대에 백남준을 소환할 수밖에 없다. 인류의 위기 때마다 인류는 백남준은 찾는다. 백남준, 오래전에 코로나 같은 닫힌 시대를 예언하고 오래전에 이미 열린 회로를 만들어 놓았다.>

코로나 닫힌 시대를 대비해 오래전 이미 열린 회로를 만들다 노마드정신(노마디즘)란?

견문, 소통을 넓히다 그리고 멀리 보다(Tele 멀리 Vision 보다) 

Prelude 코로나 닫힌 시대를 대비해 오래전 이미 열린 회로를 만들다

<Intro> 하나 백남준 신간 <우리는 열린 회로(세상) 속에 있다(We are in open circuits)>백남준이 쓴 글을 모아 한 권으로 책으로 미국에서 2019년 10월에 나왔다. 왜(?) 왜 코로나 시대 뭐라고 평?

왜 노마드 정신(노마디즘)이 필요한가? 1) 견문 넓히기 / 2) 소통 원활하게 / 3) 동서의 상호 이해 및 교류 그래서 공존 공생 공유의 인류 공동체 만들고 싶다는 염원에서 나왔다.

백남준 글 모음집 <우리는 열린 회로 속에 있다(We are in open circuits)> MIT 대학 프레스. 미국 국립현대미술관 수석 큐레이터 존 핸하르트 등 편집 Essays, project plans, and correspondence from across Nam Jun Paik's career, much of it previously out of print or unpublished. Nam June Paik (1932–2006) is a pivotal figure in the history of modern art 백남준 현대미술사에서 가장 중추적 인물이다.

<백남준, 오래전에 코로나 같은 닫힌 시대를 예언하고 오래전에 이미 열린 회로를 만들어 놓았다>

작년 11월 테이트 모던 전시 후 백남준 신간 <우리는 열린 회로(세상) 속에 있다(We are in open circuits)> MIT 프레스에서 발간되다. 백남준이 쓴 영문 글을 모아 한 권으로 모았다. 완전히 닫힌 코로나 시대에도 인류가 재미있게 놀 수 있는 <열린 회로>를 백남준은 이미 오래전에 만들어 놓았다.

그게 뭔가? 바로 인터넷, 유튜브, SNS, 페북과 트윗 그리고 줌 등등이다. 그가 인류에게 남긴 최고의 선물이다. 우리에게 코로나 시대 재미있게 보내라고 인터넷 유튜브 SNS 선물로 남기다 

<Intro> 둘 대량실업시대 예술가의 역할을 무엇일까?

그런데 백남준의 대안은 어처구니가 없다. 앞으로 시대는 대량실업시대가 올 것이고 이제 사람들이 웬만한 것 다 가지고 있으니 더 살 것도 없고 그래서 심심하게 될 때 예술가의 역할은 바로 그들이 삶에서 그 많은 시간을 즐기며 인생을 향유하는 방법을 창조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실업문제가 고민이 많았다. 그래서 그는 지구촌 실업자들에게 직업이 없어도 재미있게 시간을 보내라고 이런 쌍방형 발명품을 만든 것이다> 백남준은 평생 고용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예술가는 이 고용문제에 대해서 고민을 해야 한다고 봤다. 그런데 백남준의 대안은 어처구니가 없다.

앞으로 시대는 대량실업시대가 올 것이고 이제 사람들이 웬만한 것 다 가지고 있으니 더 살 것도 없고 그래서 심심하게 될 때 예술가의 역할은 바로 그들이 삶에서 그 많은 시간을 즐기며 인생을 향유하는 방법을 창조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백남준이 만든 최고의 장난감은 인터넷이 아닌가 싶다. 물론 백남준이 인터넷을 직접 만든 것은 아니고 아이디어를 제공한 것이다

<백남준이 한국이 1998년 IMF로 625 한국전쟁 이상의 참혹한 고통당할 때 한 위로의 말>

“IMF 빚 갚는 것은 5년, 길어도 10년이면 끝날 거야. 예술은 그런 걸 상대하는 게 아니니까 아무래도 상관없어. 예술이 상대하는 건 영원이야.” “예술세계 되짚어 보자” 3주기 맞아 회고 세미나 외환위기로 온 나라가 움츠러들어 있던 당시 66세였던 1998년 1월, 미국의 백남준(사진)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조국을 위로했다.  

<Intro> 셋 백남준이 평생 고민한 것 중 하나가 시간이란 무엇인가?
우리가 어떻게 시간의 주인이 될 수 있는가?

1 1988년 폐쇄회로 카메라가 벽걸이 괘종시계 추의 움직임을 모니터를 통해 실시간으로 보여준다. 각각 다른 방향으로 놓인 텔레비전 화면에서는 동일한 시계추의 움직임이 다른 각도로 비치게 된다. 폐쇄회로와 텔레비전이라는 장치 안에서 이미지와 실체의 순환 관계를 보여주는 것이다. 또한 시계의 동작을 이와 같은 방식으로 보여줌으로써 시간의 흐름이라는 추상적인 대상의 의미를 시각적으로 구체화하는 것이기도 하다.

‘비선형적인 시간’이라는 개념에 대한 백남준의 관심이 표현된 작품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폐쇄회로 카메라가 벽걸이 괘종시계 추의 움직임을 모니터를 통해 실시간으로 보여준다. 각각 다른 방향으로 놓인 텔레비전 화면에서는 동일한 시계추의 움직임이 다른 각도로 비치게 된다. 폐쇄회로와 텔레비전이라는 장치 안에서 이미지와 실체의 순환 관계를 보여주는 것이다. 또한 시계의 동작을 이와 같은 방식으로 보여줌으로써 시간의 흐름이라는 추상적인 대상의 의미를 시각적으로 구체화하는 것이기도 하다. ‘비선형적인 시간’이라는 개념에 대한 백남준의 관심이 표현된 작품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비디오는 시간의 경계선을 탐구하는 예술? 시공간의 심포니 시간 예술과 공간 예술의 융합

시간을 소유하려고 하면 시간의 주인으로 살 수 없다. 시간 그 자체를 즐겨야 한다 도취해야 한다. 이를 시로 노래한 사람이 바로 '보들레르'다. 그의 시 "취하라! 취하라! 취하라!" 바로 그것이 시공간을 초월해 자신이 하는 일에 완전히 몰입하는 절대 고독과 절대 침묵의 순간을 말하는 것이리라 양혜규의 시간 사용법이다. --> seulsong.tistory.com/480

2. 백남준의 답 황홀한 몰입 그것은 언제 오는가> 남을 위해서 헌신할 때 어려움을 살필 때

시간이란 무엇인가? 고민하다 보면 선사시대란 뭔가?라는 질문이 저절로 오겠죠 보이스와 백남준 선사시대 주제로 한 작품에서 당연히 차이가 나죠. 보이스는 오브제 고인돌 백남준 전자 고인돌

3. 선사시대 고인돌이야 말로  인류가 만든 최고의 최초의 설치미술 -백남준과 요셉 보이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세계에서 고인돌이 가장 많은 나라가 한국이라고 하네요 전라남도 나주에 가면 고인돌을 많이 볼 수 있다. 그곳에서 받는 영감은 정말 크다. 이곳이 바로 우리 민족의 시발점이 되는 곳이구나 하는 생각의 든다. 천지인 기운이 웅장하게 느껴진다

4-1 <보이스와 백남준의 비교> 탈혼과 접신의 차이

보이스의 샤머니즘이 동물의 정령과 통하는 '탈혼'의 방식이라면, 백남준의 샤머니즘은 춤과 음악을 통한 '빙의(접신)'의 방식이다. 탈혼이 무당의 혼이 능동적으로 신에게 나아가 신과 하나가 되는 것이라면, 빙의는 무당의 혼을 비워 신의 혼으로 사로잡히는 방식이다. 한국의 강신무는 빙의에 의한 것이며, 이는 자신의 에고를 비운 상태에서 내재적 신명을 일으키는 방식이다.-최광진

4-2 <보이스와 백남준의 비교> 하늘로 올라가는 양의 문화(+) 땅으로 파고드는 음의 문화(-)

서양의 문화 +(서 있는) 하늘로 올라가는 문화 답이 안 보인다(보이스 스타일) 동양의 문화 -(누워 있는) 땅으로 파고드는 문화 답이 보인다(백남준 스타일) 궁극적으로 동양의 문화가 서양의 문화를 포용(융합)하는 시대가 오고 있다. 결론 여성(동양)이 남성(서양)을 품을 수밖에 없다. 요염한 예술가가 나와야 한다.

시간의 주인으로 사는 법 샤를 보들레르 <취하시오> : 시간의 주인으로 살아라 혹은 시간의 학대받는 노예가 되지 마라. 그의 시 중 가장 쉬운 편에 속한다/ 백남준과 보들레르의 공통점


**돈보다 축제를 추구하는 사람이 시간의 주인으로 사는 법이죠.

5 "취하여라" 언제나 취해 있어야 한다. 모든 것은 거기에 있다. 그것이 유일한 문제이다. 그대의 어깨를 짓부수고 땅으로 그대 몸을 기울게 하는 저 [시간]의 무서운 짐을 느끼지 않기 위하여, 쉴 새 없이 취해야 한다. 그러나 무엇에? 술이건 시건 또는 미덕이건, 무엇에고 그대가 원하는 대로. 그러나 다만 취하여라. 그리고 때때로, 궁전의 섬돌 위에서, 도랑 가는 푸른 풀 위에서, 그대의 밤의 침울한 고독 속에서, 그대가 잠을 깨고, 취기가 벌써 줄어지고 사라져 가거들랑, 물어보라, 바람에, 물결에, 별에, 새에, 시계에, 사라져 가는 모든 것에, 울부짖는 모든 것에, 흘러가는 모든 것에, 노래하는 모든 것에, 말하는 모든 것에, 물어보라, 지금은 몇 시인가를. 그러면 바람도, 물결도, 별도, 새도, 시계도, 그대에게 대답하리, 지금은 취할 시간! 시간의 학대받는 노예가 되지 않기 위하여, 끊임없이 취하여라! 술이건, 시건, 또는 덕이건, 무엇에고 그대 좋아하는 대로.

5. 보들레르, 공감각과 오감의 미학을 창조하다. 그는 특히 음악과 같은 소리와 같은 향기 혹은 냄새에 예민했다.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에 영감을 주다. 백남준이 전자 빛, 이미지, 사운드의 비빔밥이라면, 보들레르는 상징적 시어로 빛깔, 소리, 향기(lumiere, son, parfum)의 비빔밥(correspondance)이다. 두 사람은 또한 원효가 말하는 원융 합일 즉 융복합적인 종합적 정신 체계와 더 나아가 총체적(integral) 미의 세계와도 통한다.

6. 마네와 보들레르의 비교: 나는 인류 전체와 맞서고 싶다

19세기 마네 왈 "나는 인류 전체와 맞서고 싶다" // 20세기 남준 왈 "나는 인류 전체와 맞서고 싶다(내가 문화 칭기즈칸이 되어 전 세계 미술을 쓸어버리겠다)" [평] 여기서 마네와 남준의 차이가 있다. 마네는 기존의 유럽 미술(아카데미즘)과 맞서고 싶다. 남준은 세계 모든 미술과 맞서고 싶다. 차원이 다르다. 1863년 '풀밭 위에서 점심식사' 1963년 백남준의 첫 전시 '음악의 전시' 100년 차이가 난다. 두 사람의 차이는 그 범위와 스케일에서 엄청나게 차이가 난다. 그리고 마네는 유화 페인팅이고 남준은 전자 페인팅이다.

<Intro> 넷 백남준의 거지패션과 왕방울 눈곱

"남이 나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하는 것을 포기한 순간부터 굉장히 자유로웠다" - 백남준

[평] 백남준 자신의 전시장 오프닝에 세수도 안 하고 간다. 워싱턴 국립미술관 미국 상원의원 등 소위 정치권 vip가 오는 자신의 전시회에서도 역시 마찬가지다.

"넥타이는 맬 뿐만 아니라 자를 수도 있으며, 피아노는 연주뿐만 아니라 두들겨 부술 수도 있다" -백남준

<Intro> 다섯 소통의 천재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나? <1>박만우 2대 백남준아트센터 관장의 증언, 백남준은 전 세계의 석학과 과학자와 예술가와 끊임없이 소통하고 네트 워킹하는 아티스트> 백남준은 미국 나사의 우주 물리학자나 하버드대 미생물학 교수 같은 과학자뿐만 아니라 세계적 예술가 등 2500명(이 숫자는 박만우 관장의 말)의 전문가와 끊임없이 줄기차게 (전화 등으로) 소통을 했기에 세계적인 작가 세기적인 작가가 될 수 있었다고...

<2> 백남준 처음 독일에 도착해 친구들에게 자신을 이렇게 소개하다 "나는 3개의 서양 언어와 3개의 동양 언어를 배우고 홍콩에서 카이로 그리고 그리스에 있는 레이카 비치를 방랑한 이 소수 대륙 소수 국가에서 온 한국인이다" -

<3><백남준은 홍라희와도 교류>

백남준 선생과 삼성과의 인연은 1984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백남준 선생이 35년 만에 처음 한국을 방문하였을 때 당시 국제적 성장의 기틀을 마련한 삼성전자의 TV 모니터를 자신의 작업에 사용하면서부터였습니다. 이건희 회장과 함께한 어느 날 백 선생이 격식에 얽매이지 않고 세계인으로서 조국에 대한 애정과 삼성에 대한 기대를 재치와 유머를 섞어가며 표현하였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다음 해 백 선생은 삼성전자와 정식으로 계약을 맺어 자신의 작업에 삼성 TV 모니터를 지원받아 적극 활용하기 시작했습니다. 1988년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 기념비적인 작품 <다다익선>의 전자장비 제작지원을 시작으로, 1992년의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의 회고전과 1997년 독일의 뮌스터 조각프로젝트, 그리고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의 <백남준의 세계 전>과 호암갤러리와 로댕갤러리의 <백남준의 세계 전>에 이르기까지 선생의 핵심적 프로젝트에 삼성문화재단이 직-간접적으로 지원할 수 있었던 것도 참 크나큰 보람이었습니다. 백남준 선생이 비디오 아트의 거장으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동안 삼성의 첨단기술과 기업 이미지도 한층 발전되어 갔습니다. 예술과 기업의 멋진 만남, 결국 우리의 협력작업은 한국의 기술과 문화를 세계 곳곳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홍라희,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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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부터 [본론] <동영상 추가>
<백남준과 코로나, 유행성 전염병(펜데믹 pendemic) 시대 노마디즘
그중 정주 유목민(Nomad) 시대>

--> <자크 아탈리> 직장은 있고 출퇴근은 없다 디지털 노마드'라는 아탈리가

하나 1. 디지털 노마드 용어 해서 아탈리는 인류를 세 부류로 나눈다.

첫 번째는 어쩔 수 없이 떠돌아다니는 사람들이다. 이주 노동자나 정치 망명객 등이 해당한다.
두 번째는 정착민으로 농민, 장인, 공무원, 기술자, 의사, 교사 등 한 곳에 소속된 사람들이다. 
세 번째는 자발적 노마드로 창의적인 직업을 가진 사람들, 즉 음악가·통역사·연극배우·영화감독 등 유희적 노마드다.

21세기는 디지털 장비로 무장하고 지구를 떠도는 디지털 노마드(Digital nomad) 시대다. 특히 한국은 휴대전화, 노트북, PDA 등 첨단 디지털 장비의 진화 속도가 어느 나라보다 빠르다. 디지털 장비 덕분에 언제 어디서든 인터넷에 접속해 외부와 소통할 수 있다. 한국에 대해 저자는 미래 “노마드의 실험실 중 하나”라고 말하고 있다. 디지털 노마드가 인류의 삶을 어떤 방향으로 끌어갈지 궁금하다.

둘 2. [백남준과 노마디즘] <왜 백남준은 그렇게 칭기즈칸과 마르코 폴로를 좋아했나?>

 "선사시대, 우랄알타이족의 사냥꾼인 우리는 말을 타고 시베리아에서 페루(잉카), 한국, 네팔, 라플란드(핀란드)까지 세계를 누볐고, 그들은 농업 중심의 중국 사회처럼 중앙에 집착하지 않았고 몽골처럼 더 멀리 보기 위해 여행을 떠나 새 지평을 봤다." - 백남준

마르코폴로

1 그들은 다 정치적, 문화적 노마드였다. 왜냐하면 백남준은 가장 주목한 인물 칭기즈칸과 마르코 폴로, 이들을 동서양의 소통을 길을 연 선구자들이었기 때문이다. 1993년 베니스비엔날레에서 칭기즈칸을 소환하다. 왜냐하면 인터넷 시대에는 이런 면에서 선구자인 그의 정신이 필요했기에.

백남준, '칭기즈칸의 귀환' 1993. 베니스 비엔날레 출품작 중 하나로 고비 사막과 같은 드넓은 대지를 거침없이 전진하는 유목민을 연상시킨다

2 1993년 베니스비엔날레에서 단군왕검을 형상화한 작품 '(전자) 단군 스키타이' 어떤 작품인가?

그러니까 우리가 문화적으로 중국 영향을 받았지만 혈통적으로 몽골 후손으로 보는 거죠. 그 증거로 자신의 몸에 있는 몽골 반점을 서구인들에게 내세운 것이죠. 이걸 경천애인(경천사상) 몽골어로 텡크리 칸(Tengri Khan)이라고 하죠. 텡그리(몽골어 이전에 천 사상 lived in harmony with the nature God/Gut/Good)는 바로 경천사상이다.

조선이나 동이족의 특징은 1) 신선한 광명의 나라 2) 예절이 밝은 나라 3) 무예(play)가 뛰어난 나라 4) 가무(歌舞)에 능통한 나라로 알려져 있다.

1993년 베니스비엔날레에서 단군왕검을 형상화한 작품 단군 스키타이'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운 건 바로 스키타이 단군도 이런 동서양 네트워킹 주인공으로 백남준은 봤다는 점이다. 서양의 예술가 중에서 요셉 보이스가 바로 이런 점을 가장 먼저 이해했다. 그가 2차대전에 출전하여 전투기 추락 사고로 지금의 러시아 지역인 타타르에서 죽을 뻔 했다가 살아났는데 타타르 샤먼들의 치료를 받고 구사일생으로 살아나 동양 샤머니즘의 위대함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seulsong.tistory.com/857

백남준은 단군을 유라시아를 연결시켜주는 미디어(match maker)로 봤다. 백남준은 고조선 단군시대로 돌아가는 그 순수한 원래의 기상으로 돌아가자는 주장. 다산의 시에도 보면 고조선 단군의 시대로 돌아가자는 메시지가 보인다. 그 시대만 해도 한국인의 기상과 패기가 넘쳤는데 처음 시작한 우랄 알타이 국가에서 밀리고 밀리고 밀리고 해서 결국 한반도에 갇혀버린 것이다. 결국 그것 마저 반쪽이 나고 말았다. 

3 <왜 스키타이라는 말이 들어갔나?> 백남준은 칭기스 칸이라고 하지 않고 스키타이 칸(단군)이라는 이름을 붙여 백남준은 우리 민족의 원류를 많은 지역 사람을 포함시킨다: 인디언, 핀란드, 훈족, 터키, 헝가리, 우랄 알타이, 말갈, 거란, 몽골, 동이족, 발해 모두가 우리의 원류에 포함시킨다.

오늘날에 우크라이나 러시아의 동유럽 남부 영토, 크림반도를 기반으로 한, 서부 스키타이인들은 왕족 스키타이라고 알려진 권력 계층들의 지배를 받았다. 서부 스키타이인들은 그리스 페르시아 인도 중국을 연결하는 거대한 무역로인 비단길을 만들고 통제했으며, 이 문명들의 번영에 기여했을 것이다 //여기에는 백남준이 말하는 싸우지 않고 세계를 지배하는 <탈영토제국주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 우리가 인터넷 강국으로 높은 교육열과 고급 정보와 지식을 통해 전 세계에서 지적 제국으로 전 세계 평화와 공존에 기여할 수 있다는 강력한 주장과 제안을 엿볼 수 있다

1993년 베니스비엔날레 소통과 유통의 신으로 출품했다. 일본의 단군을 없애려고 한 일본 사관을 정말 부정한 것이다. 백남준은 이 칸을 역사적 인물로 본다. 아니 백남준의 자화상이다. 그는 결국 전 세계를 호령하는 전자 단군, 디지털 문화 칭기스-칸이 되려고 한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Paik’s robotic-looking army of electronic scraps was reminiscent of the many military figures that have shaped the complicated relationship between East and West: Marco PoloAlexander the GreatAttila the HunCatherine the GreatGenghis Khan.

Alexander the Great

They could also have been seen as a memorial for the Crimean Tatars who saved the life of Joseph Beuys by rescuing him when the plane he was flying during World War II was shot down—one of many links in the installation to Paik’s friend, the German über-artist, who had exhibited in the same building in 1976. This caravan of nomads was out there, roaming the Giardini, thrown into the world from the very same city where Marco Polo had started his historic voyage to the East 700 years earlier. These nomads each stood for drastically different kinds of travel and communications. www.theartro.kr:440/eng/features/features_view.asp?idx=2346&b_code=32&fbclid=IwAR2qitb5IOZHqEafLFMP7LPf4t8zfAVvabye-Cg37XL2av6mEbDZmDJxQA0

위 작품은 전자 초고속도로 중 하나로 제목은 '칭기즈칸의 귀환'이다. 전자 아트와 위성 아트를 상징하는 TV 모니터를 자전거에 싣고 백남준이 칭기즈칸이 되어 귀환하는 모습이기도 하다. 그러니 이 제목을 '백남준의 귀환'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백남준은 인류의 삶에서 정보는 매우 중요하기에, 동양과 서양의 계속 만나 접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시아 중 유럽을 벌벌 떨게 한 나라는 중국의 황제가 아니라 몽골의 칭기즈칸이었다. 그런데 칭기즈칸의 후손을 자칭하는 백남준은, 그냥 정복자 칭기즈칸 아닌 하이테크의 황제인 문화 칭기즈칸이 되고 싶어 했다. 정치나 경제보다는 문화와 예술이 진정 인류를 평화롭게 하나로 엮는 최선책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1993년 베니스 비엔날레 출품작인 '전자 초고속도로(일렉트로닉' 수퍼하이웨이 Electronic Superhighway)'의 부제는 '베니스에서 울란바토르'이다. 서울이 아니라 울란바토르를 붙인 건 백남준이 자신의 뿌리를 한반도로 국한시키지 않고 멀리 몽골로까지 확대해서 봤기 때문이다. 왜 그럴까? 다음 글을 보면 알 수 있다.

**역사학자와 인류학자의 차이, 인류학자가 더 역사를 더 심도 있게 보다
1)  웨더포드 2) 클로드 레비 스트로스 3) 브뤼노 라투르 4) Jack Goody 5) 박정진

1)  웨더포드 13세기 초 칭기즈칸 각 나라의 종교의 다양성을 최대로 존중하다. 반면 15-17세기 유럽은 오랫동안 신교와 구교가 종교전쟁을 하다. "문화인류학자인 잭 웨더퍼드 매켈리스터 대 명예교수에 따르면 칭기즈칸은 평등, 신앙의 자유, 관용, 다문화주의 같은 보편가치를 가장 먼저 실천한 역사적 인물이다" 

웨더포드

<참고> news.joins.com/article/21921472

질문: 몽골제국과 고려의 관계에서 어떤 특이점이 발견되는가?
대답: “고려를 침공한 몽골군은 힘든 싸움을 벌였지만, 이내 몽골과 고려 사이에 특별한 커넥션이 있다는 것을 인지했다. 몽골인들은 중국인 등 다른 종족과 결혼하는 것을 금지했지만, 고려 왕실과 결혼하는 것은 오히려 장려했다. 몽골 사람들은 제지술, 조선술, 항해술, 도자기 제조법과 같은 고려인들의 능력에 크게 감탄했다. 몽골인들은 자신들이 복속시킨 그 어느 나라보다 더 고려를 존경했다.”//<몽골 혹은 원나라는 고려여성을 아내로 맞이하는 것을 최고의 영예로 삼았다. 고려 여성은 미모만 아니라 살림 잘하고 똑똑하고 지혜가 높고 요리도 잘하고 원나라는 고려의 왕조를 유지하게 할 정도로 나름 관용적 정책을 썼다. 왜냐하면 몽골은 한반도 한국인과 같은 형통으로 봤기 때문이다>

 

아시아가 서구 지성 발전에 큰 역할, ‘종교의 자유’ 가치 칭기즈칸서 유래

몽골 정부는 2012년 칭기즈칸 탄생 850주년을 맞아 전국적으로 행사를 거행했는데 전국의 신성한 장소에서 웨더퍼드 교수가 지은 책을 녹음한 것을 틀었다. "많은 학자조차 아시아가 서구의 경제�

news.joins.com

질문: 21세기에 칭기즈칸이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대답: ““대부분의 제국이나 위대한 나라는 비전을 가지고 건국된다. 시간이 흐르면 비전이 뿌옇게 되었다가 결국에는 사라진다. 칭기즈칸의 후예들 또한 비전을 상실했다. 그저 바라는 게 재물과 권력을 누리는 것이었다. 칭기즈칸의 제국은 결국 붕괴했다. 칭기즈칸은 정치적인 이념이나 종교에 휘둘리지 않는 실용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문제들을 해결했을 뿐만 아니라 평화로운 통합된 세계라는 비전을 제시했다. 오늘날 정치지도자·종교지도자들은 이념으로 넘친다.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드는 비전을 제시하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우리는 150여 년간 민족들과 종교들이 평화를 유지한 팍스 몽골리카(Pax Mongolica) 시대를 다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왜 오늘날에는 그런 평화를 달성할 수 없는지 묻기 위해서다.”

저자 잭 웨더포드(Jack Weatherford)는 미국 미네소타 주 매칼래스터 대학교 인류학과 교수이자 부족 연구 전문가. 세계사 속 부족민의 역할에 대해 관심을 갖고 연구하던 중 칭기스 칸과 몽골 제국이 동서 문명 교류에 끼친 영향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1998년에 서구 학자로는 최초로 칭기스 칸의 고향 부르칸 칼둔 산을 방문한 이래 20년 동안 몽골 제국 연구에 전념했고, 매해 몽골에서 몽골 학자들과 위대한 정복자의 발자취를 찾아다녔다. 그 첫 성과물로 2004년에 펴낸 《칭기스 칸, 잠든 유럽을 깨우다》는 전 세계에서 20여 개 언어로 번역되어 30만 부 이상 팔렸고, 국내에서도 칭기스 칸 관련 책 중에서 가장 많은 독자가 찾았다. 이어 2010년에는 《칭기스 칸의 딸들, 제국을 경영하다》를 펴냈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웨더포드는 2006년에 몽골 최고의 훈장인 북극성 훈장을, 2010년에 몽골 대통령 훈장을 받았다.

<추가> 백남준의 작품에는 없지만 성직자 마태오 리치도 마르코 폴로보다 300년 후 사람이지만 그럼에도 당시의 선구자로 대단한 인물이다.

<지도> <천주실의> 내용은 '천지만물을 지으시고, 이를 유지하시는 하느님'을 소개하는 것으로서, 주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유교의 상제(上帝)는 기독교의 하느님(天主)이라고 주장했다. [1] 유교의 기초적 교리를 인정. [2] 하늘나라의 존재를 언급하고, 인간의 영혼 불멸성을 강조. [3] 인간의 영혼이 신령스러움을 중국 고전들을 통해 입증. [4] 하느님이 동물을 창조한 것은 인간이 이용하도록 하기 위해서. [5] 죽은 후에 천국과 지옥이 있음. [6] 성선설을 지지, 모든 행위는 인간의 자유 의지에 달림. [7] 천주교 사제가 결혼하지 않는 이유, 《천주교해략》을 읽을 것을 권함.

<빛은 동양(orient)에서> 이게 괜한 소리 아냐> 20-21세기 유럽의 양심적 지식이 2명이 있다. 하나는 2) '클로드 레비 -스트로스'이고, 또 한 사람은 3) '브뤼노 라투르' 백남준 상을 받다. 이들은 서구의 위선과 어리석음을 잘 알았고 그것을 고백한 사람들이다. 둘 다 인류학자다.

레비스트로스는 <야생의 사고>라는 책에서 문화상대주의를 언급했고 야만과 문명의 구분을 부정하다. 라투르도 <서구는 한반도 근대인 적이 없었다>라는 책을 냈고 이것을 화두로 서양 문명사를 진단하고 있다. 백남준 과에 속하는 사람들이다. "가장 야만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가장 문명적이고 가장 문명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가장 야만적인 것이다" -클로드 레비 스트로스

<야생의 사고> 책 표지

20-21세기 유럽의 양심적 지식이 2명이 있다. 하나는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이고, 또 한 사람은 백남준 상을 받은 '브뤼노 라투르'이다. 이들은 서구의 위선과 어리석음을 잘 알았고 그것을 고백한 사람들이다. 둘 다 인류학자다. 레비스트로스는 <야생의 사고>라는 책에서 문화상대주의를 언급했고 야만과 문명의 구분을 부정하다. 라투르도 <서구는 한반도 근대인 적이 없었다>라는 책을 냈고 이것을 화두로 서양 문명사를 진단하고 있다. 백남준 과에 속하는 사람들이다.

Jack Goody

<4> 잭 구디(Jack Goody) 영국 인류학자(1919년 7월 27일 -2015년 7월 16일) 95세에 사망. 처음에는 아프리카의 전문가였던 Jack Goody는 유럽 중세 시대에 가족 역사에 깊은 관심을 가졌고, 학교에서 영국에서 유럽 가족에 대한 역사 연구의 부흥을 주도하는 인물이 되었다. 케임브리지의 역사 인구학뿐만 아니라 그가 역사적 인류학에 큰 영향을 미친 프랑스에서도 마찬가지다. 유라시아와 아프리카 사이의 비교 연구와 기독교 교회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는 로마 제국의 유럽에서 혈연관계의 변화에 ​​관한 그의 연구는 그의 학문에 지속적인 흔적을 남겼다. 그의 저서는 많다. 유라시아의 기적에서 모든 것은 동양에서 왔고 서양이 그것을 활용한 나름 완성을 했다는 소리인가

<서양은 동양의 역사와 문화를 도둑질하다(?)> 이 책을 읽어보면 아직 잃어보지 않았고 번역이 나오지 않고 있다. 유라시아 박사의 말에 의하면 서양의 문명은 동양의 문명을 훔쳐간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책의 제목을 보면 르네상스가 복수로 되어 있다. 서양에 르네상스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이전에 이미 동양에도 르네상스가 있었다는 소리다. 볼테르 등 서양의 계몽주의 철학자들은 중국의 공자와 맹자의 사상에서 배운 것이다. 이걸 너무나 잘 알았던 백남준은 인터넷을 통해 이런 사실을 잘 모르는 서양에게 동양의 높은 문화를 알려주고 싶어 했다

백남준은 이런 주젤 만든 작품이 1970년 <비디오 코뮌>과 1973년 <글로벌 그루브>

<5> 인류학자 박정진(한양대 의대 수료, 국문학과 문화인류학 전공 시인) 백남준과 들뢰즈 그리고 백남준과 칭기즈칸 비교 그의 저서 <백남준 굿으로 보는 비디오 아트 읽기> 출간 10년 좀 어렵다

백남준 들뢰즈 비교 2명의 천재의 비교 동양과 서양 

백남준 / 마이너스 / 음의 양 / 태음 태음적 노마드 / 비디오 / 달의 나라 탈영토
들뢰즈 /  플러스  / 음의 양 / 태양 태양적 노마드 / 여성 되기 / 해의 나라 탈영토

움직이지 않으면서도 노마드로 사는 방법은 없을까 그런 개념을 생각해 보다 -백남준
이제 변방은 없다 -들뢰즈 움직이지 않고 정주하면서 움직이고 활동하는 새로운 유목민 찾아내야 한다.

<제국 칭기즈칸 문화 칭기즈칸의 비교>

칭기즈 칸 / 샤머니즘 / 하늘과 통합 / 동서양 팍스 아트 / 절대 부계, 배 다른 형제 포용
백남준 칸 / 샤머니즘 / 소리와 통합 / 지구촌 위성 아트 / 부계 혐오, 모계 지향

인류학자 박정진(한양대 의대 수료, 국문학과 문화인류학 전공 시인)이 쓴 <백남준, 굿으로 보는 비디오 아트 읽기> 출간 10년 좋은 책인데 그가 만든 백남준과 칭기즈칸의 차이점. 큰 차이점은 영토화와 탈영토화. 두 사람은 동서문화의 원활한 소통의 선구자들이다.

<백남준과 코로나, 유행성 전염병 시대 정주 유목민 시대>

<결론> 정주 유목민과 코로나 시대, 움직이지 않으면서 움직이는 노마드 시대, 유행병, 유행성 전염병 시대에 백남준을 소환할 수밖에 없다. 인류의 위기 때마다 인류는 백남준은 찾는다.
<백남준, 오래전에 코로나 같은 닫힌 시대를 예언하고 오래전에 이미 열린 회로를 만들어 놓았다.>

<추신> 우리는 세계에서 유수한 언어와 문화를 가진 민족이라는 것을 서구로부터 도둑질당하지 않기 위해서 한글의 기원인 산스크리트어를 배워야 한다. 그런 점을 일깨워준 예술가가 바로 백남준이다. 주류 서구 문화는 동이족인 한국의 세계 문화의 원류라는 것을 자꾸 모르게 하려고 우리의 우수한 문화를 덮으려고 한 것이다. 그러나 백남준은 그런 그들의 계략과 음모를 다 들통 냈다. 백남준은 이런 사실을 다음과 같은 문장에서 기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