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유튜브
[백남준&독일책] <09강> 24시공연, 24시점 관계(?)
覽準(SEULSONG)
2020. 11. 17. 05:20
[백남준&독일책] [백남준&보이스]
백남준이 독일 등 9명 유명예술인과 인터뷰백남준에 관한 대담집(9명)
백해영갤러리에서 제공하는 백남준 강좌 9번째 '백남준&독일책'
https://www.youtube.com/watch?v=RiPd-b7FYI0&t=219s
아직 번역되지 않은 우리가 가능하다면 번역해 보려는 책이다. <백남준 독일어판 발행연도: 2009년 10월 30일 발간 Nam June Paik(German) 30 Oct. 2009. 저자 피크하우스(Peter Moritz Pickhaus) 편집자: 레지나 비볼(Regina Wyrwoll> 쪽수: 152. 가격: 16.80유로. 사진: Manfred Leve.출판사: 발터 쾨니히(쾰른)
ISBN: 978-3-86560-552-8.에너지 시너지 시리즈 7번(Energies-Synergies)
2. 저자 피크하우스(Peter Moritz Pickhaus)가 백남준에게 묻고 그의 부인 시게코에게도 묻는다. 그리고 백남준을 알거나 가까이 지닌 독일의 다른 작가들에게도 백남준과의 관한 일화나 경험 등을 묻는다. 또 따로 미술 집필가 '바바라 빈(B. Wien)'는 백남준에게만 질문은 던진다. 그런 형식의 인터뷰를 정리한 책. 저자 빼고 총 9명이 등장한다.
3. 저자 '피터 모리츠 피크하우스(Peter Moritz Pickshaus)'가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를 보면 <백남준은 실험적 예술가, 세계시민, 미디어 개척자, 사상적 곡예사, 발명가, 한국계 코뿔소(?) 이런 독특한 예술가를 한마디로 특징 짓는 건 불가능하다. 그래서 백남준과 그 전문가들 혹은 관련자들(동료예술가들)과 나눈 인터뷰 8편을 이 책에 실었다. 아직 본문 번역이 안 되어 아래 본론에서 저자들만 소개한다.
4. 백남준 연구자에게는 유용한 책이다. 사실 이 책 번역 쉽지 않을 것 같다. 독일어인데 중간에 영어, 프랑스어, 일본어, 한국어 등> 국가 번역 기금 받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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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Review)> 1 백남준식 중용: 덜도 말고 더도 말고 70% 만족 How to be satisfied with 70%? 그의 유토피아: -1000% 살기. 여기서 -빼기보다 나누기 혹은 공유하기 그래서 백남준은 마음이 가장 부자. 예수왈 -10% 백남준 왈 -30%
2 지난 시간 [백남준&도이치] 그는 왜 독일에서 예술신 혹은 신화가 됐나 -독일은 백남준의 영원한 예술적 고향이다. 백남준, 독일에서 최고의 미술인사로 대우받다. 라인 강이 내려다보이는 1773년에 개교한 독일의 가장 명성 높은 뒤셀도르프 쿤스트아카데미 교수로 47세 때 초빙을 받았다.(과일?)
부인 시케코 말의 의하면 독일에서 주변에서 사람들에게 '마에스트로' 떠 받들며 칭송을 받았고, "독일에서 공부해 비디오아트를 탄생시킨 자랑스러운 독일제 작가"라고 했단다.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를 창안한 독일의 유명한 미술기획자 '클라우스 부스만Klaus Bußmann(1941년생)'은 백남준을 베니스비엔날레에 독일대표로 출전시키다. 백남준은 명실공이 독일 '명예이주예술가'가 되었고, 독일에서 백남준은 거의 베토벤급이다.
뒤셀도르프 시(의회)는 2007년 1월 29일 백남준 추모 1주년에 그를 애도하면서 추모, 그를 시민들에게 어떻게 알릴까 고민하다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다. 바로 뒤셀도르프 시 전차에 대형 광고판처럼 그의 얼굴을 대문짝만하게 붙이고 다니게 했다. 이곳 시민들 그를 기억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아래 문구“WHEN TOO PERFECT LIEBER GOTT BÖSE! 너무 완벽하면 신도 화를 낸다) 그러나 신과 너무 맞서지 마라! 이 말은 사실 백남준 신격화. 신과 싸우는 예술가 은유하다.
3 <질문> 백남준은 왜 독일에서 인기가 있었나?
독일작가에게 물었더니 음악과 미술을 섞어 독일인에 독특한 인상을 남긴 비디오아트를 창시한 음악적 미술을 선물했다는 것이다. 2차 대전 이전까지 프랑스가 세계미술을 주도했지만 독일에서 나치가 등장하면서 유럽의 대부분 지식인이 미국으로 넘어갔고 그래서 미국미술이 급속하게 미국화되고 독일을 아직도 소외
게다가 2차 대전의 패전국으로 전쟁의 가해자라는 피해의식으로 굉장한 심적 압박과 정신적 충격을 받아 주체할 수 없는 공황상태에 빠져있을 때 1960년대 '보이스'와 동양에서 온 큰 응원군인 백남준이 혜성같이 나타나 경계를 벗어난 비디오아트를 독일에서 창안해 세계적 미술국가 되었다 독일에서 주는 모든 상을 다 받다.
4 백남준 교수취임 첫 공개수업 '파격적 수업 '비디오 비너스(1978)' 그의 제자와 지원해서 참가한 이보 데코빅(Ivo Dekovic) 쌍방적 소통과 참여의 미학을 들어간 공동작업, 진정한 소통은 머리가 아닌 몸으로 한다는 메시지. 여기에 합류한 이 제자는 나중에 독일 아헨 미술대학교 교수가 되다. 2017년 제 실수로 못 만나다.
한국에서 백남준의 에로티시즘과 맑시즘 금기시한다. 다음 강좌는 에로스에서 성철학으로 제목을 바꾸다. 교체 이런 철학에는 <말 이전의 몸>으로 하는 예술이 모든 게 문자화되면서 그 소통은 단절된다고 본다. 그리고 샤머니즘과 같은 원시적 생명이 넘치는 영매 즉 '미디어'의 본령인 연결자를 강조했다.
5 <백남준과 보이스, 지구상 가장 아름다운 우정을 꽃 피운 유라시아 작가 등장>
보이스는 샤머니즘 관심은 남다른 체험. . 2차 대전 중 독일공군으로 출전했다, 전투 중 타타르족이 사는 부락에 추락. 의식 불명 상태에서 그곳 샤먼의 민간요법(동물의 지방과 비계 그리고 펠트 천으로 감싸는 치료법)으로 기적적으로 살려났다.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류라시아 작가가 되다 셔먼은 죽은 자마저도 산 자와 소통하게 하는 신통력을 발휘한다고 믿었다
이후 보이스도 펠트나 기름덩어리 등을 활용하는 '온기조각'을 창출하게 된다. 냉전시대의 무기였죠. ‘사회 조각’ 확장된 예술개념 통해 사회의 치유와 변화 꿈꾸다
"난 몽골을 좋아해 몽골사람들하고 우리들하고 3천 년 전에 헤어졌는데 그 3천 년 전 우리 것을 몽골사람들이 보존하고 있어. 난 공자 노자 이런 사람들 이전의 사람들을 좋아하지. 신석기시대 같은 것에 관심이 많아. 그리고 후대로 내려올수록 역사가 엉터리야. 대부분 일고 생각할 가치가 없는 쓰레기뿐이지" -백남준 역사적 기록은 가진자의 기록이라보고 부정하다. 중국의 역사사 <사기>도 사기라고 보다
하여간 두 예술가 '선견자(voyant)'였다
6 유라사이 작가 탄생
[백남준과 요셉 보이스, 1961년 제로미술운동에서 처음 만나다] Meeting of Joseph Beuys and Nam June Paik in Düsseldorf in 1961 세계 미술사에 또 하나의 기록을 세웠다. 바로 유라시아 작가의 진면목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앞으로 예술만이 아니라 문명의 징표가 <유라시아 전성시대>를 미리 내다보고 그런 시대를 예언한 셈이다. 21세기 예술은 혼자 할 수 없는 시대 Life Long Collaboration이 필요하다. 그런 면에서 두 사람은 또한 창시자다. <강림>
내가 쓰고 싶은 것을 일본인 백남준 연구가 '와타나베'씨 (Searching for EURASIA Joseph Beuys and Nam June Paik' Life Long Collaboration-Shinya Watanabe, Juni 2, 2017) 베를린 대 박사논문 발표
1961 백남준과 요셉 보이스, '1984년 도쿄 소케츠미술관 공연(Meeting of Joseph Beuys and Nam June Paik in Toyko in 1984)'으로 두 작가의 절정의 꽃을 피우다. 1984년 일본 공동공연에서 둘은 정말 완벽한 하모니로 관객들에게 큰 감동을 선사하였다. 1986년 한국에서 열리는 아시안게임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굿을 제안하였고(요셉 보이스 유목민 샤먼식 타타르 민간 치료로 구사일생 살아난 후, 샤먼 신도가 되었고 ) 몽고지방의 무속신앙에 관심을 보인 보이스는 이에 흔케 응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해 1986년 갑자기 사망, 둘의 꿈은 이루지 못했고 백남준의 고 보이스 4주기인 1990년 백남준 생일날 그를 위한 위령제 성격의 굿을 벌린 것이다 그것이 바로 서울 현대갤러리 뒤뜰에서 '보이스를 위한 추모굿'을 벌렸다.1990년 백남준, 죽은 친구 요셉 보이스를 살려내다[生死] (In 1990, Nam June Paik brings his friend Joseph Beuys back from the grave) 이렇게 서로 호형호제하던 백남준이었다
유라시아 이야기 지난번에 말한 대로 나도 유라시아적. 가장 한국적인 것과 가장 유럽적(어려서 독일문화를 많이 접하다)인 것을 추구했다. 미국과는 거리가 두다. 그러나 두 가지를 클로스오버 개인적은 한국에서는 백남준, 서양에서는 보들레르에 가장 관심이 많다. 평생 공부거리가 되었다.
나무만 잘 심어도 예술가가 될 수 있다고 보이스가 말하다. 그리고 서양샤먼 아티스트로서의 요셉 보이스 늑대나 코요테 소리가 나는 것 같다.
7 두 작가의 60년 유라시아 협업 후 60년만에 지금 거의 유라시아 자유무역 경제 공동체(RCEP)가 뜨다. 아직 러시아, 인도는 빠지다. 전 세계 인구의 3분의 1 정치 한중일·아세안 등 15개국, ‘세계최대 FTA’ RCEP 협정 서명
[슈피겔] 중국 외, 아시아 태평양 지역 14 개국 등 세계 최대 자유무역 지대 구축하다. 중국과 다른 지역 나라들 "지역적이고 포괄적 인 파트너십"에 서명. 22억 명의 인구, 세계 경제 생산량 약 1/3을 차지한다. 중국의 유럽과 미국에 대한 도전이다.
https://www.spiegel.de/wirtschaft/soziales/china-schmiedet-weltgroesste-freihandelszone-a-4c58ac56-1342-4947-828b-8e74d7b51566
<요셉 보이스> 백남준처럼 독일의 예술신(문화대통령)으로 군림하다. 그는 20세기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ürer, 1471년 5월 21일-1528년 4월 6일)'였다. 두 사람은 외모도 많이 닮았다. 그러나 그는 목숨을 단축할 정도로 바닥의 삶으로 그의 신체적 헌신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독일에서 존경을 받는 것 같다.
8 보이스 상징은 2-3가지 토끼와 도끼, 모자, 지방덩어리 오브제 등 보이스는 인간이 동물보다 우월하다는 편견을 버리고 평화를 상징하는 온순한 토끼와 가까운 친구처럼 소통했다 유명한 말을 남기다. "완고한 이성주의로 무장한 인간보다 토끼가 현대미술을 더 잘 이해한다"라며 인간의 어리석음을 나무랐다. 그것을 <나는 아메리카를 좋아하고 아메리카는 나를 좋아한다> Performance로 1974. 뉴욕
그리고 백남준처럼 서구성상을 파괴하는 도끼가 또한 그의 상징이죠. 평론가로부터 '신야만인'이라고 불렸다. 보이스는 스스로를 '문화 갱단'이라고 했고, 백남준은 스스로 '문화 깡패'라고 했다. 두 예술가는 그런 면에서도 확실하게 통한다.
사실 요셉 보이스는 별로 작품을 남기지 않았다. 남아있는 작품은 거의 퍼포먼스의 부스러기 흔적뿐이다. 그는 야생 동물처럼 땅바닥을 기어다녔다. 그는 퍼포먼스 중 관중들로부터 야유를 받는 건 흔했고 독일의 기본 질서를 흔드는 행위예술을 많이 했기에 경찰에 신고되기도 했다. 사회적 파란을 일으키기도 했죠.
10 그러나 프랑스 백남준 전문가 '장 폴 파르지에' 는 백남준/보이스 비교론에서 백남준이 보이스보다 한급 더 높은 예술가로 평가하고 있다. 백남준은 마이너스 셔면 아티스트 보이스는 플러스 셔면 아티스트로 구분하다.
[백남준& 바보야] <장자, 노자, 공자, 예수, 부처, 백남준, 보이스 이들은 다 바보처럼 보인다 하늘의 진리 '천진(天眞)'의 세계를 사는 사람들>1. 천재는 원래 바보야! 참으로 강한 자만이 바보가 될 수 있다. 천재도 때론 우스꽝스러운 광대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아인스타인 메롱 사진도 있지요. 역시 천재만이 바보가 된다.
<백남준의 바보타령> 백남준은 누구인가요? "난 바보라고" - 왜요? "바보니까 바보지. 바보야 바보. 미친놈" - 젊어서 미친놈 소리 많이 들으셨죠? "그럼. 미국에선 아직도 미친놈이래" -2004년 조선일보인터뷰 중에서. 백남준은 삶과 예술을 창조하는 광대 바보짓 '난장굿' 병신춤 같은 '하늘의 진리' '천진(天眞)' 의 단계에 도달하다.
<천재급 예술가들이 이런 미친짓(광대짓)?, 결국 NO WAR>
[원할한 소통(참여)이야말로 전쟁예방의 지름길: 백남준의 평화철학]그러면서 그는 여기서 동서양의 소통이 현대문명의 핵심을 강조한다.
위에 보면 이런 말이 적혀 있다. "만약 동양이 서양을 알고 있는 지식의 10분의 1이라도 서양이 알고 있다면 전쟁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보면 소통은 바로 전쟁의 예방하는 지름길이라는 그의 평화철학이 엿보인다. <이제 중국시대>(뉴욕 2000년 이후) 이제는 상하이에서 전시 하고 싶다" 유언처럼 남겼다. 중국시대의 예언인가. 그래서 앞으로 미술시장 중심, '뉴욕'에서 '상하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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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반부> '안심낙관(1999)'이라는 비디오작품이 서울 강남구 학동로 445:<우리들병원(이상화 원장)>에 설치되어있다. 자신이 뇌졸중으로 쓰려져 오래 고생했지만 "병원의 역할을 환자를 안심시켜 낙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으로 보았다. 그는 이렇게 사회적 의사(무당) 몫도 한다.
<예술은 잘 노는 것 그래서 가장 창조력이 필요하다> "예술은 페스티벌이지요, 쉽게 말하면 잔치다. 왜 우리의 굿 있잖아요. 나는 굿쟁이예요. 여러 사람이 소리를 지르고 춤을 추도록 부추기는 광대나 다름없다. 나의 예술 철학은 관념을 무너뜨리자는 거지요. 수직이 아닌 귀납(수평)이다. 획일을 막기 위해 자유스런 작업을 한다. 민중이 춤을 추도록 대중 속으로 파고들어 가는 것이지요" -백남준 <결론>
<백남준, 인류구원: 바로 자연과 문명의 조화. 그래서 'TV정원'이 나온 것인가?>
백남준, 인류구원: 바로 자연과 문명의 조화. 그래서 'TV정원'이 나온 것인가?> 서양역사='이기'중심(투쟁적 인간)=개발=대표상징이 티뷰/전자(첨단테크사회) 동양역사='자연'중심(생태적 인간)=보전=대표상징이 낙원/정원(최고이상사회) 백남준, 이 작품에 대해서 직접 언급하다. 자연 50%, 문명 50%의 조화가 좋다/
<백남준, 인류구원: 바로 수학과 수신의 융합. 그래서 'TV부처'가 나온 것인가?>서양공부='수학'중심(과학적 인간)=기술=대표적 사물이 티뷰(첨단기술) 동양공부='수신'중심(도덕적 인간)=인품=대표적 사람이 부처(최고인격)
<백남준은 큐레이터를 독립된 작가, 비평가, 지휘자로 봤다>
[1] 질문: 'TV정원' 설치할 때 백남준 선생 어떤 지침이 있나요?
대답: (주로 독일과 유럽 등에서 백남준 작품을 수리하는 독일 출신 전자 테크니션, 요헨 자우어라커 씨, 한국 방문) 백남준 선생 이렇게 말했다. 큐레이터는 지휘자이자 비평가이기에 그 자신이 작가로 모든 것을 그(녀)에게 일임한다. 그러나 동시에 책임을 져야 한다. TV 정원을 그 지역과 그 나라에 따라 다른 재료가 쓰인다. 그 지역의 화초를 주로 사용하고 그 지역에서 생산되는 TV도 가능한다. 다만 작은 사이즈 TV와 큰 사이즈 TV의 적절한 배합은 필요하죠.[2] 질문: TV정원은 너무나 많이 고친다면 백남준 작품이라할 수 있나요?대답: 베토벤 누가 연주하든 그것은 어디까지나 베토벤 작품이다.
[3] 질문: 백남준 TV 고장날 것은 예상했나?
대답: 물론이다. 그것이 가능한 좋은 방향으로 개선되기를 바랬다. 내 개인의 이야기를 하면 다만 예술가적 측면에서 보면 작가는 더 좋아진 하이테크를 원하겠지만 미술관 측에서 볼 때 역사적인 것을 보여줘야 하는 사명이 있기에 가능하면 있는 그대로 잘 보전해서 보여주려고 할 것이다.
<인트로>1 빌 비올라가 본 그의 스승 백남준
[비올라(1951-) 2015년 봄에 국제갤러리에서 열린 그의 기자간담회에서 백남준에 대해 언급한 일부 내용을 소개합니다. 백남준은 영업비밀도 다 공개하다. 그만큼 자신이 있었다는 소리겠죠.
"제가 젊었을 때 그때 당시 막 비디오아트가 태동하던 시기인데 당시에는 저는 운이 좋았어요. 제가 백남준 조수를 했거든요. 제 평생 그런 분은 처음 봤어요. 너무 에너지 넘치고 정말 재미도 있고 지극히 아름다운 분이였어요. 나이 든 분이나 젊은이든 그 누구에게도 마음이 여시고 제가 만난 사람 중에 최고의 분이셨죠.
백남준 선생의 경우 비디오아트를 창시자이시지만 그것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누구나 쓰고자 하고 배우고자 하면 그 자료(소스)도 주저없이 열어주었어요. He was grateful!! 여러 번 반복하다. 그는 이렇게 누구에게나 열린 마음으로 그들을 보셨죠" 2015.03.06. 국제갤러리 비올라 인터뷰 중에서
백남준의 수제자 비올라는 성자처럼 영혼이 맑은 사람이었다. 비디오아트로 영상시를 쓰는 시인 같은 사람. 동업자인 아내를 보석처럼 여기는 그런 남성이었다.
비올라 왈 장자가 한 말 "탄생은 시작이 아니고 죽음은 끝이 아니다(Birth is not a beginning, and death is not an end)"를 인용하면서 우리가 사는 세상은 여전히 진리와 허위를 구별하지 못하는 카오스에 빠져있지만, 그런 장벽을 넘어 미래에 대한 두려움 없이 저 너머의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야 함을 언급하기도 했죠.
그 역시 동서문명의 결합을 강조하다.
동양이 놓친 철학과 가치관과 정신적 유산을 가져와 서구의 첨단 예술에 접목한다. 서양이 소홀히 하는 인간의 내면 깊은 곳에서 사람들에게 울림을 주고, 역경을 이겨내게 힘을 주는 영혼의 가치를 재발견해야 한다며 유한 속에 사는 우리가 어떻게 무한의 세계로 갈 수 있는지 묻는다. 2015년 3월 6일
3 <한국이 21세기에 세계 1등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 아래 우양미술관 소장품.
그 이유는 간단하다. 몽골제국, 한때 노마드 시대 말이 가장 빨랐다. 그래서 세계를 지배했다. 영국, 한때 해상권 시대 배가 가장 빨랐다.
한국은 정보화 시대 인터넷이 가장 빠르다. 아래 백남준 작품은 바로 그런 21세기 정보시대 한국의 모습을 잘 형상화하다. 추신: 정보가 가장 많은 사람이나 나라가 세계를 지배한다.
4 <우리는 단일민족 아니다> 한국은 다민족, 이성계도 여진족의 손자, 중국의 청나라는 여진족이 세운 나라. 말갈족도 한국 혈통. 몽골의 칭기즈칸도 우리 혈통, 우랄알타이, 훈족(흉노족),스키타이(단군), 시베리아, 핀란드, 헝가리 다 우리와 같은 혈통(지난번 한국에 유학하는 헝가리 여성 만남. 이름쓰는 우리와 순서가 같다).
백남준은 페루까지 우리 혈통으로 본다. 가야국은 인도와 관련이 있다. 가야 지역에 키가 크고 코가 높은 사람도 많다. 우리가 중국과 싸울 필요가 없다. 한국의 백씨는 중국에서 온 것으로 믿고 그러나 백남준은 우리가 몽골에서 왔다고 보죠. 백남준은 놀라운 말을 했다. "선사시대, 우랄 알타이족의 사냥꾼들은 말을 타고 시베리아에서 페루·한국·네팔·라플란드(핀란드 등 북유럽)까지 세계를 누볐고, 그들은 농업중심의 중국사회처럼 중앙에 집착하지 않았고 더 먼 곳을 보기 위해 멀리 여행을 떠나 새 지평선을 봤다"며 우리 혈통과 원류를 더 멀게 넓게 포괄적 보다.
5 <유럽과 아시아의 위상변화>
뒤샹과 백남준의 대결구조로 풍자한 중국작가 왕싱웨이(Wang Xingwei) I '늙고 불쌍한(가련한) 해밀턴(Poor Old Hamilton)' 220×280cm 1996/중국 신세대 작가 왕싱웨이의 이 작품은 아시아와 유럽과 위상변화를 풍자한 독창적 작품이다.
'늙고 불쌍한 해밀턴'은 '유럽'을 상징하고 마르셀 뒤샹의 대표작을 깨뜨리고 울고 있는 아이는 '아시아'를 상징한다. 유럽의 해밀턴은 사고뭉치인 아시아의 아이를 야단치지만 그 아이는 딴청을 부린다. 그 아이는 누구인가? 유럽의 최고 작가 마르셀 뒤샹과 아시아 최고 작가 백남준을 대결구조로 끌고 갔다는 점이 흥미롭다.
6 현존하는 최고철학자 'J. 하버마스(독일)'가 인류의 난제인 원활한 소통(과 시민참여)의 대안으로 제창한 '공론장이론(public sphere)'이 있다면, 백남준은 '비디오 공동시장(1970)' 즉 인터넷을 주창하다. 결국 두 사람의 아이디어는 같은 것.
7 하여간 결론적으로 말해 백남준 작품은 치열하고 신랄한 풍자와 야유가 있었기에 우리는 지상의 천국과 같은 편안함을 느낀다. 백남준의 예술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만병통치 만사형통이다. 인간의 얼굴을 한 '소통과 참여'를 매개로 생활 속에서 꽃피워 온 인류가 평화롭게 공존하는 세상이 아닌가싶다.
8 최순우 왈: 한미일 미술의 비교 "중국, 거만 하고 크고 과장하여 권위적이고 일본, 날씬하고 수다스럽다. 그러나 한국, 순리를 거스리지 않고 익살과 해학(한국미의 핵심, 백남준이 잘 보여주다)이 있는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이 돋보인다" 한국미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멋'의 정신이다. 멋이란 뭔가? 평생 화두. 한국인의 최상의 목적은 '멋지게' 사는 것이다. 삶의 여백화? 혹은 일상의 예술화? 그런데 요즘 이런 정신을 잃어버리고 잘 사는 것이 인생의 전부를 걸다.
9 <알고리즘과 인공지능시대 오다 -백남준 1982년(퐁피두전) 때 예언>
사이버네틱스(cybernetics)와 매스메틱스(mathematics)의 차이는? 사이버네틱스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면 이렇게 적혀 있다. "생물의 자기 제어(自己制御)의 원리를 기계 장치에 적용하여 통신·제어·정보 처리 등의 기술을 종합적으로 연구하는 학문 분야이다"
10 제2차 세계 대전 후 대두한 것으로 미국의 수학자 위너(N. Wiener)에 의하여 창시한 것으로 되어 있다. 인공두뇌의 실현과 오토메이션의 개량을 목적으로 하는 인공두뇌학이라고 요즘 그런 시대가 온 게 확실하다. 우리는 사이버네틱스라는 말보다는 사이버 세상이라는 말을 더 좋아한다. 백남준은 사이버아트를 맨처음 시도하다. 백남준은 위너를 좋아했고 그의 영향이다.
11 [백남준, 부르주아문화 우상파괴자 - 난장굿: 피아노 때려부수기, 바이올린을 질질 끌고 다니기 소대가리 전시장 앞에 걸기 백남준 독일시기(1959-1963) 소사
1) 초기 〈존 케이지에 대한 경의(1959)
2) 〈피아노 포르테를 위한 연구(1960) 삼퓨 포퍼먼스
3) 스톡하우젠 '오리기날레(Originale)' 〈심플(Simple)〉(1961)
4) 액션뮤직 작품은 유난히음악이 결합된 이른바 ‘액션뮤직’ (1962)
5) '음악의 전시-전자텔레비전'(1963)
6) 샬럿 무어먼은 '제2회 뉴욕 아방가르드페스티벌(1964)'
: 그 위상을 높이려 두루 인재를 찾고 있었는데 '존 케이지'와 '슈톡하우젠(독일 전자음악작곡가)'이 백남준을 중요인물로 천거하자 그를 초대키로 한 것이다. 무어먼은 백남준을 초대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를 맞이하기 위해 직접 케네디공항으로 나갔다. 그때가 백남준이 32살, 샬럿은 30살이었다. 그녀는 그를 크게 환영하며 극진하게 대우했다. 하긴 이런 미인의 간청을 어떤 남자가 거절하겠는가.
백남준은 생동감 넘치는 뉴욕에 매료되어 1달간만 머물려다 정착한다. 하긴 시대를 꿰뚫고 있었던 그가 뉴욕이 세계문화의 중심지라는 걸 모를 리 없다. 게다가 1963년엔 케이지로부터 미국 초청을 받았고, 독일에서 만난 플럭서스 동지인 마치우나스, 카프로, G. 브레히트, B. 패터슨, 라몽트 영, 엘리슨 놀즈 등도 지원했다.
<1965년>'24 Stunden(24 Hours)' *[백남준 퍼포먼스하다 좋은 아이디어 얻다]
https://www.youtube.com/watch?v=ialGfDNijqc&t=3122s
를 얻어다고 하는데 예컨대 인터넷 같은 정말 그런가. 정말이라면 장자의 <무용지용>이 맞다. 가장 무용한 것이 가장 유용한 것이다. <아래사진> 1962년 6월 16일
6) 24시간 공연사건 '24 Stunden'(1965년)> 24시간 <체인점 발명자> 바로 이들 1965년 24시간 공연사건 '24 Stunden(24 Hours)' 이것이 자본주의의 상징인 24시간 <체인점의 시작이 되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장자가 말하는 무용지용, 무용한(가장 비경제적) 것이 유용한(가장 경제적인) 것이 되었다
Nam June Paik in 24 Stunden 1965. Photo by Dorine van der Klei. 발명가 과학자로서의 백남준 이순신 장군의 거북선 발명의 정신을 이어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