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바조] 르네상스II, 과감한 바로크 화풍, 극적이고 생생한 연출력
"그는 회화를 파괴하기 위해 세상에 태어났다" - 프랑스 고전주의 화가 니콜라 푸생(Nicholas Poussin)
카라바조는 이름은 미켈란젤로 메리시(Michelangelo Merisi)다. 그 유명한 조각가 미켈란젤로와 구별하기 위해서 작가의 이름을 쓰지 않고 작가의 출신을 그의 이름으로 대신한 것이다. 우리나라도 김 씨가 많은데 경주 김씨, 안동 김씨 같이 지역출신을 구분하기도 하나 한국에서는 이런 방삭으로 구별하지 않는 편이다 /
르네상스 미술을 대표하는 작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도 사실은 너무나 많은 이탈리아 남자 이름인 '레오나르도'와 구별하기 위해서 그의 이름 뒤에 작가의 고향인 '다 빈치(From Davinci)'를 붙이다
소년이 이렇게 예쁠 수가 없다. 광채로 빛나는 미소년이다. 불안전한 인간 내면의 광기를 여지 없이 그러내다. 그러나 광기 속 고뇌와 열정도 보인다 / 다빈치가 프랑스의 문호 빅토르 위고라면 카라바조는 프랑스의 시인 보들레르에 비유할 수 있을 것 같다 / 파스칼은 인간은 천사와 악마의 중간자라고 했는데 카라바조에서 그런 면이 보인다
[1] 한·이 수교 140주년 기념 아시아 최대 규모 카라바조 전시회, 11월 9일 예술의전당에서 개막 // 11월 9일부터 2025년 3월 27일까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2층에서 한이 수교 140주년을 기념하는 <빛의 거장 카라바조 & 바로크의 얼굴들>이 개막한다. 이번 전시는 바로크 미술의 창시자 카라바조와 동시대와 거장들의 작품 57점을 소개한다. 이탈리아에서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와 더불어 3대 천재 화가로 불리는 카라바조의 작품은 10점으로, 이는 아시아 최대규모다.
카라바조는 20세기 들어 가장 활발한 연구의 대상이 된 화가다. 빛과 그림자의 강한 명암 대조를 사용한 테네브리즘의 창시자이자 사실주의 기법을 최초로 사용한, 바로크 예술사의 시작이자 현대 예술의 시작을 알린 작가로 불린다. 17세기 당시 카라바조의 회화는 매우 혁신적이었다.
정적이고 이상직인 이름다움을 추구한 르네상스 화풍과는 달리 역동적인 구도와 극적으로 생생하게 표현된 주제는 마치 눈앞에 있는 현실처럼 보였고, 당시 가톨릭교회가 직면한 반종교개혁정신과 맞물려 교회와 대중 모두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그가 구축한 화풍은 바로크 예술의 거장인 루벤스, 렘브란트, 벨라스케스 등에게도 큰 영향을 끼쳤다
전시는 카라바조기 13세에 롬바르디아에서 수련을 시작해 20대에 로마와 나폴리에서 명성을 얻고, 살인으로 점철된 인생과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한 38세에 이르기까지의 여정을 따라 6개의 섹션으로 나누어 그의 주요 작품들을 선보인다. // 카라바조, 극적 무대 연출하는데 탁월한 오늘날의 영화감독 능력 // 회화에서 요즘 말하는 조명 개념(빛의 효과 명암 기막히게 잘 조절하는) 도입
[2] 이탈리아에서 최고 권위를 가진 우피치미술관 소장품 // <그리스도의 체포>, <성 토마스의 의심>, <이 뽑는 사람> 국내 첫 공개 대한민국-이탈리아 수교 140주년을 기념하여 기획된 이번 전시는 주한이탈리아대사관, 주한이탈리아문화원, 이탈리아관광칭, 주한이탈리아상공회의소의 적극적인 후원과 지원으로 해외 반출이 엄격하게 제한되는 카라바조의 작품 공수가 이루어졌다.
이탈리아에서 최고 권위를 가진 우피치미술관 소장품 중 카라바조의 대표작품인 <성 토마스의 의심>, <그리스도의 체포>, <이 뽑는 사람> 세 점을 포함하여 <묵상하는 성 프란체스코>, <골리앗의 머리를 든 다윗>, <도마뱀에게 물린 소년> 등 카라바조의 대표 작품들이 이번 전시를 위해 서울을 찾는다. 카라바조는 38세로 짧은 삶을 마감했고, 현재까지 알려진 작품은 1백여 점에 불과하다. 단 한 작품만 소장해도 많은 방문객이 몰리는 카라바조의 다양한 작품들을 국내 최초로 한 자리에서 만나는 유일무이한 기회다.
[3] 카라바조와 함께 동시대를 풍미한 거장들의 작품으로 만나는 17세기 바로크 예술 탄생의 순간 // 전시는 단순히 서양예술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바로크' 시대를 조명하는 것이 아닌, 오늘날 우리에게 귀감이 되는 카라바조의 정신과 그가 남긴 예술적 유산을 집중적으로 다룬다.
또한 카라바조의 자연주의적 회화 개혁을 함께한 동료 화가들과, 17세기의 예술문화를 풍부하고 다채롭게 만든 동시대 거장들을 소개한다. 카라바조의 라이벌이자 당대 최고의 화가인 안니발레 카라치를 비롯하여, 오라치오 로미 젠틸레스키, 구에르치노 등 바로크 회화를 대표하는 거장들의 작품을 통해 르네상스 시대가 막을 내리고 바로크 시대의 문을 연 17세기 바로크 회화의 발상지, 이탈리아를 펼친다.
미켈란제로가 로마의 밝은 면을 그렸다면 카라바조는 로마의 어두운 면을 그렸다. <카드놀이 사기꾼> 그림이 카라바조 당대 등장한다.
(위 작품) 2017년 독일에서 카라바조 전시도 마찬가지로 그의 후계자 그림이 훨씬 많았다. <아래 작품> 카라바조 추종자에는 국경이 없다. 카라바조의 추종자 <네덜란드> 출신의 (헤라드 반 혼토르스트 Gerard Van Honthorst) 작품이다. 역시 조명 효과가 극대화되다>
카라바조 당시 로마의 뒷골목은 현재 미국 뉴욕의 뒷골목처럼 범죄의 소굴, 사기꾼, 투기꾼, 소매치기, 매춘부 등이 득실거렸다. 그는 살인자 출신으로 최고의 예술가가 되는 천재성을 발휘하다. 그의 작품은 후대 화가들에게 강력한 영향을 주다. 이번 서울 전시도 카라바조는 10점뿐이다 나머지 60여 점을 그의 영향을 받아 그림을 그린 사람들이다.
작가 소개 Michelangelo Merisi(Caravaggio) (1571.9.29 밀라노- 1610.7.18 포르도 에르콜레) // "미켈란젤로 이후 이탈리아의 어떤 화가도 그만큼 영향을 미친 사람은 없었다”-미국의 미술사가 버나드 비렌슨 MICHELAGNOLD DACALAVAC 미켈란젤로 메리시(카라바조) Michelangelo Merisi(Caravaggio) (1571.9.29 밀라노- 1610.7.18 포르도 에르콜레)
이탈리아의 예술가이자 르네상스 이후 바로크 회화의 시대를 연 화가 카라바조는, 르네상스 회화의 관습에서 탈피해 빛과 그림자의 강렬한 대비를 통해 극적인 표현을 구현한 명암대비법인키아로스쿠로(chiaroscuro)기법을 독창적으로 발전시켰다. 그는 17세기를 대표하는 바로크 양식을 창시한 것은 물론, 근대 사실주의 회화의 탄생을 알린 작가로, 서양미술사에서 가장 혁신적인 예술가 중 한 명으로 평가된다.// 어두운 배경 속 인물에 강한 조명을 비추는 카라바조의 극적인 명암 대비는 연극 무대를 연상케 하는 효과를 자아냈으며, 익숙한 종교적 주제를 일상적인 모습으로 치환해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그의 화풍은 유럽 전역에 퍼지며 플랑드르의 렘브란트와 루벤스, 프랑스의 조르주 드 라 투르. 스페인의 벨라스케스 등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1571년 이탈리아 북서부 롬바르디아의 밀라노에서 태어난 카라바조는. 5 세 때 흑사병으로 할아버지와 아버지, 형제를 잃게 된다. 13세에 그는 티치아노의 제자이자 조르조네 화풍을 밀라노에 소개한 시모네 페테르차노와 도제 계약을 맺고 그의 작업실에서 4년간 수련한다. 1595 년, 20 대 초반의 나이에 로마로 진출한 카라바조는 본격적 화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으며, 프란체스코 마리아 델 몬테 추기경의 후인으로 그의 궁에서 지내며 <점쟁이>, <루드 연주자>, <막사들> <메두사>, <바쿠스> 등 수많은 걸작들을 탄생시켰다.
카라바조의 전성기를 알린 로마 산 루이지 데이 프란체시 성당의 <성 마태오의 소명>과 <성 마태오의 순교>를 시작으로, 그는 종교화와 정물화, 인물화에서 탁월한 천재성을 발휘하며 종교 지도자들과 컬렉터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그의 불안정한 삶은 끊임없이 범죄와 비행으로 얼룩졌으며, 결국 1606 년 실내 테니스 경기 도중 살인을 저지르며 사형선고를 받고 로마에서 도망자가 되었다. 이후 카라바조는 나폴리, 몰타, 포르토 에르콜레에서 사망했다.//
메시나, 시칠리아 등을 떠돌며 교황의 사면을 기다렸고, 도망자 신세로 4년을 보낸 후인 1610년, 서양미술사의 흐름을 바꾼 그의 업적은 범죄로 얼룩진 삶과 살인자라는 오명에 묻혀 가려졌지만, 사후 400년이 지나서야 그의 천재성이 재평가되기 시작하면서 그 진가가 세상에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