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에게 굿은 그의 예술적 원류이다
[백남준추모5주기] 피아노는 걷어차고 요강으로 연주하는 백남준
[최재영의 사진 첫개인전] <백남준 굿> 갤러리아트링크에서 2011.01.25-02.13
TV와 피아노가 있는 백남준 전자굿
갤러리 아트링크 서울시 종로구 안국동 17-6 전화: 02 -738-0738 홈페이지: www.artlink.co.kr
백남준에게 굿은 모든 예술의 원초적 근원이었다[巫舞]
(To Nam June Paik the shamanistic ritual of Good is the primitive source of art)
최재영이 다소 늦은 감 있게 첫 개인전으로 준비한 이번 전시는 2006년 1월29일 작고한 백남준의 5주기를 맞이하여 그를 추모하는 마음으로 최초로 공개하는 백남준의 퍼포먼스사진을 선보인다. 백남준 생일이었던 1990년 7월 20일 서울 현대화랑 마당에서 호형호제하던 요세프 보이스를 기리며 펼친 백남준의 주술적 행위예술을 촬영한 것이다.
[작가소개] 최재영(1952년 경북생) 중앙대 사진학과 졸업 동아일보 사진부기자(1976)로 입사했다 중앙일보(1978)로 옮김. '한국보도사진전'에서 금상, 은상, 동상 등 다수 상을 수상. 이탈리아 토리노시 테조리에라 전시관에서 초대사진전(KOREA 2002.12), 동강국제사진제(2010)에서 '그대 이름은 여자전' 등 기획전. 중앙대 사진학과 겸임교수(2003-2009) 현재 중앙일보 시사미디어 사진국장
천연덕스럽게 굿을 시행하는 백남준 그는 가장 한국적 멋과 정감이 넘치는 사나이가 되다
이번 사진전은 백남준이 추모했던 요셉 보이스에 대한 존경과 애정을 표시한 굿판을 최재영사진가가 찍은 것이다. 예술의 영속성과 인간의 유한성에 관한 존재적 애도라고 할 수 있다. 총 20여 점으로 구성된 이번 사진전은 '굿'이 백남준예술에 얼마나 막중한 영향력을 주었으며 신명의 의미가 현대미술 속에서 어떻게 융해되는지를 잘 보여준다. 신명 난 백남준의 익살스런 모습에서 우리는 예술화된 생명의 진수를 맛볼 수 있다
그는 굿을 통해 실제적(real) 순간과 연출된(performative) 순간을 잘 비벼 맛있게 해 먹는 그의 넉살과 재치 그리고 그의 예술가로서의 역량이 놀랍다. 이런 두 가지 요소의 결합과 분리를 통해 흡수되고 변화되고 동화하는 과정을 포착할 수 있고 바로 그런 점을 사진시각적 감성으로 잘 잡아낸 최재영사진의 핵심을 감상할 수 있다.
그의 굿 퍼포먼스는 지상의 인간이 천상과 연결해 펼친 놀라운 상상력이 이 세상 공간의 연출이다. 그는 넘나들었고 그는 죽고 살았다. 최재영 사진들은 삶과 죽음과 교류와 황홀한 접신을 예술로 형상화한 천재의 날카로운 편린을 붙잡다. 이것은 인간을 뛰어넘은 초인의 커뮤니케이션이다. 위대한 아트 엑소시스트 백남준이여 - 초인 백남준[미술관자료]
굿이란 위선적 허위세력이 만들어 놓은 질서를 깨고 그 판을 뒤엎거나 내동댕이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인류학적으로 백남준과 요셉 보이스는 같다. 귀신세력과 신명세력이 치열한 전투를 벌리다가 결국은 신명의 기운 귀신의 위세를 누린다는 것이 또한 굿의 정신이다. 다시 말해서 기의 주도권을 되찾는 것인데 그러나 굿의 본정신은 이미 많이 사라졌고 박제화되었다. 일본강점기와 일부 미국선교사들에 의해 그 본질이 축소왜곡되고 훼손되었다.
여기서 백남준은 기의 본질을 회복하고 전통의 굿의 고수들 앞에서 전혀 새롭게 피아노와 바이올린 등을 통해 기의 위력을 창조적으로 재해석하여 그들을 놀라게 했다. 게다가 굿(샤머니즘)과 피아노, 부처와 TV 등 도무지 같이 놓을 수 없는 두 요소를 같이 노을 수 있는 안목, 비빔밥 정신이 한국적 상상력의 극치다
한 삽의 흙 가슴에 받아라 흙이 죽임이고 흙이 생명이다. 흙이 불이고 흙이 물이다. 흑흑 우는 게 흙이고 흐흐 웃는 게 흙이다. 죽임이 웃고 삶이 운다. 소원을 묻고 꿈을 묻어라. 너도 흙이고 나도 흙이니 너를 가슴에 묻고 나를 네 속에 묻는다 - 한 삶의 흙[미술관자료]
[정재숙기자] "백남준을 찍는데 카메라가 신들린 듯 춤췄다"
http://news.joinsmsn.com/article/aid/2011/01/19/4610395.html?cloc=olink|article|default
죽은 소리야 허기를 채워라. 피아노 위에 고봉밥 놓았으니 저승 먼 길 돌아오느라 주린 배 채우거라. 평생 밥그릇에 묶은 삶 숟가락에 붙은 밥 뜯기 바빴으나 자 이제 숟가락을 꽂으니 허공을 퍼 먹어라. 밥에 케첩 발라 글로벌 음식을 다 맛보아라. 흠향 네 밥이 내 밥이다. 내가 먹고 네가 먹자. 내 살을 네가 먹고 네 넋을 내가 먹자. 삶과 죽음이 밥그릇에 비벼지니 배고프다. 친구야! - 피아노 위에 제삿밥 [미술관자료]
굿이란 무엇보다 식사와 제사가 하나 되는 곳에서 삶의 멋을 회복하는 것이다
굿이란 남이 주어진 판을 깨고 자신이 스스로 판을 이루는 과정인데 그 시대의 사람들을 괴롭히는 귀신들 예컨대 독재, 독점, 독선 의 논리를 휘두르는 세력을 작살내는 것이다. 그래서 거기서 해방감을 맛보고 맘판 놀이굿을 벌리는 것이다. 맘판 놀다보면 그 속에 화해와 대안이 형성되고 새로운 삶에 대한 의지와 에너지를 충전하여 삶의 힘겨움과 안타까움까지도 인정하며 보다 차원 높은 긍정으로 나아가 세상을 신명하게 살아가게 하는 힘을 얻은 것이다.
백남준의 굿에 피아노와 바이올린 TV를 도입하여 과거의 푸닥거리식의 굿을 추방하고 전혀 새로운 창조적인 굿을 연출하여 전통굿을 현대화하고 세계적인 퍼포먼스예술로 업그레이드시켰다고 할 수 있다. 굿이 가지고 있는 소통의 정신 즉 죽은 자와 산자가 대화하는 방식을 통해서 인류의 과거와 역사를 만나게 하는 것이다. 원시와 첨단문명이 또한 다시 만나게 된다. 구질서를 파괴하고 신질서를 창조하는 것이다.
요셉 보이스의 모자(중절모)가 그의 상징인데 여기서도 피아노 위에 그의 모자가 놓여있다. 왜곡 별진 굴절된 일그러진 것을 펴는 것이 또한 굿의 정신인데 백남준은 요셉 보이스의 죽은 영혼을 복원하고 다시 그의 생일날 그를 되살려내어 그에게 말을 걸며 새로운 창조의 기운을 얻으려고 한 것 같다.
백남준의 굿에서 특징은 놋그릇 요강 담뱃대 갓 한복 쌀(밥) 가위 등의 소도구가 중요한데 뒤샹의 변기처럼 다중적인 해석이 가능한데 삶과 죽음, 만남과 이별의 경계를 없애는 그래서 과거를 끊어내고 미래를 연결하는 매개체로서의 상징성과 은유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신명(神明) 유년의 기억 난타의 기질이 되살아나다- 제의음악을 장죽을 물고 대야, 요강, 주발, 머리를 치다.
굿이란 무엇보다 기운을 차리는 예식이자 통과의례다. 삶이 피폐하거나 마음이 괴로울 때 같이 모여 고민을 집단적으로 푸는 것이다. 그래서 굿의 원형은 당연히 개인굿이 아니라 대동굿이다. 대동이란 말 그대로 크게 하나가 되는 것인데 요즘은 그런 것이 이루어지기가 힘들다. 굿이란 미신이 아니며 일종의 사회적 공적 혹은 공공의 적을 추방시키기 위해서 힘을 모으는 것 아니면 그렇게 하기 위해서 몸을 푸는 것 요즘말로 열 올리기(warming-up)라 할 수 있다.
굿에서는 무엇보다 살기를 추방하는 것이 주목적이다. 요셉 보이스를 죽인 기세를 꺾고 새로운 삶의 기운을 다시 불어넣는다고 할까. 살기라는 것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 바뀌지만 독재시대에는 억압과 착취와 지배 등이 이에 해당한다. 지금은 자본독식과 무한경쟁이라는 귀신이 너무나 사람들의 괴롭히고 지배하고 있으니 바로 우리시대의 우상이자 귀신이라고 할 수 있다.
"운명이다. 태어난 목숨은 실낱같이 이어져 제 멋대로 펄럭이는 듯하지만 때가 되면 가위가 나타나 다 자르다. 가위를 피해간 목숨이 있는가. 가위를 비켜간 운명이 있는가 삶은 잘린 죽음이고 죽음은 잘린 삶이다. 오호 친구가 오는구나 죽음을 잘라야지 길게 뒤틀려있는 시간을 잘라야지 죽음 자르면 그게 삶이다. 그게 부활이다" - 하늘의 가위[미술관자료]
굿이란 정말 소중한 것에 대해 푸대접 받는 것을 참대접 받게 만드는 것이다. 그런 것을 자기기 위해서 결단하는 의식이다. 쉽게 말하면 죽어가는 일상에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어 새로 살려내기 위해서 집단적으로 다짐을 강화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거기에는 대단한 축제성과 단결성을 발휘하고 더 나아가 공동체의 적을 막아내기 위해서 전투신명까지 필요하게 된다.
삶은 한 줄기 불이다. 꽃도 별도 다 불꽃이다. 불은 존재를 태우고 모양을 없애고 허공으로 흩어진다. 불이 타오르지만 모든 존재는 내려앉는다. 연기 속에 추억이 깃들고 연기 속에 공포가 깃들고 연기 속에 슬픔이 들어와 앉는다. 한 줄기 연기가 여러 줄기로 흩어지니 네가 내 몸을 내가 네 전생이다. 연기는 연기(緣紀)다. - 불과 연기 [미술관]
삶과 예술 죽음도 예술인데 굿판에서 소통이 가장 잘 된다. 죽은 자는 말하고 산 자는 춤을 춘다. 온몸이 굿판이다. 기억이 몸을 움직이고 우정이 가슴을 뛰게 한다. 이것은 예술이고 융합이다. - 시인 이빈섬
굿은 또한 자신의 자리에서 밀려남(소외 왕따)에서 벗어나 다시 각자가 제 자리를 찾는 것이다. 세상이 모두 제대로 돌아가게 하기 위해서 당찬 다짐을 하고 삶의 지혜를 모아 집단지성으로 삶을 살려내고 삶의 리듬과 축제를 되찾는 의례다. 각자의 주체성을 훈련시켜 진정한 공동체적 신명과 신바람을 일으키는 것이다.
굿을 영어로 '중간적 행위(Mediumistic Practice)'로 번역되기도 하는데 결국 산자와 죽은자를 연결시켜 대화하도록 하고 서로 오해를 풀고 소통의 장을 펼쳐 화해하고 원한을 푸는 중매자를 뜻한다. 이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영매자만 할 수 있는 것인데 이런 정신은 바로 현대미술의 퍼포먼스와도 그 정신이 통한다. 굿쟁이는 영매를 통해서 이 지상을 구원하듯 행위예술가는 예술적 영감을 통해서 새로운 작품을 구현한다.
굿이란 모순된 사회구조 속에서 똑같은 아픔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건강한 철학과 구체적 방안으로 새로운 대안을 만들어내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결심하고 각오를 다지는 자리다. 그런데 여기서는 남녀노소의 차별이 없이 절대평등의 경지가 되고 같은 노는 것이고 굿을 끝내고 나서 음식은 다 골고루 나누어 먹는다. 그런 분위기 속에 신명을 체험하고 다시 삶의 기운을 회복하는 것이다.
죽은 자와 산 자가 서로 일체(一體)로 통하니 시원하구나
각자마다의 한맺힘이 풀리면서 신명이 나고 탄성과 환호를 지르고 난장을 통해 자신의 본연의 모습을 되찾아 생산성을 높이고 새로운 상상력을 무한정으로 확대하는 일이다. 그래서 일상에서 얻은 병이나 한, 살기나 액을 말끔히 씻어내는 정화의 제례라고 할 수 있다. 요즘 말로 집단적으로 스트레스를 치유하는 과정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래서 삶의 질곡과 과로를 풀고 삶을 재충전하여 새로운 이상사회를 건설할 수 있는 에너지를 얻는 것이다.
요셉 보이스의 모자가 보인다. 죽은 자를 만나 산 자들이 새롭게 신명과 해방의 삶을 살아가도록 재촉하는 행위이다. 산자인 백남준은 죽은 요셉보이스를 굿으로 다시 만나 그와 소통과 교류를 통해 새로운 기운과 용기를 얻고 삶을 보다 활기차고 창조적으로 살아가는 축제의 한마당을 펼치는 것이다.
일체(一體) 남준과 보이스가 일체가 되다. 내 갓에 네가 앉았으니 두 사람이 한 사람이 되다. 네 육신에 내 영혼을 만나 접신하니 마음이 떠는구나. 배고프구나. 네 배고픔을 내가 채워주고 싶구나. 인간은 일체다. 만물은 화해다. 굿은 이어주는 것이고 굿은 good이다. 굿은 궂은 것이니 웃다가 울다가 다시 웃는다.
백남준은 한국의 굿과 서양의 아방가르드의 유사성을 깨닫고 플럭서스와 해프닝미술의 근간으로 삼는다. 1960년대 독일이라는 나라는 두번의 세계대전을 치르면서 전혀 놀지를 못했다. 그래서 전위예술가들이 맘판놀이굿을 벌렸는데 거기서도 백남주는 노는데 1등이었다. 서양의 놀이예술가들이 모두 그에게 항복했다. 그렇게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백남준의 굿의 정신의 계승자이자 신명의 에너지를 예술로 승화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퍼포먼스와 해프닝으로 시작하여 비디오아트를 창시한 백남준은 혼란이나 무질서 파괴를 상징하는 굿을 통해 현대미술의 코드를 발견한다. 그것을 바로 대중과의 상호 접근성, 참여성, 행위의 비결정성, 우연히 일어나는 동시성. 삶의 수행성 한마디로 랜덤 액세스라는 미학을 도입하여 서양미술의 막다른 골목에 비상구를 열어주었다. 그의 미학은 이렇게 액션 아트이고 이런 것은 폴록의 액션 페인팅과 액션 누드화와 맥을 같이 한다.
1990년 백남준, 죽은 친구 요셉 보이스를 살려내다[生死]
(In 1990, Nam June Paik brings his friend Joseph Beuys back from the grave)
백남준은 그와 예술적 쌍동이이자 라이벌인 요셉 보이스를 만나 서로 예술의 상생과 상승효과를 준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 1990년 백남준 생일날 보리스 추모굿판을 벌리게 된 것이다. 보이스는 백남준이 무명일 때 같은 플럭서스회원으로 그의 예술을 진정으로 이해해주고 그를 전폭적으로 지지해준 최대의 지원자였다. 그 낯선 독일 땅에서 그의 진정한 형님이었던 것이다.
1984년 일본 소케츠미술관 공동공연에 둘의 정말 완벽한 하모니로 관객들에게 큰 감동을 선사하였다.
이렇게 서로 호형호제하던 백남준은 1986년 한국에서 열리는 아시안게임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굿을 제안하였고 몽고지방의 무속신앙에 관심을 보인 보이스는 이에 흔케 응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해 1986년 갑자기 사망하고 만다. 그 둘의 꿈은 이루지 못하게 되었고 백남준의 고 보이스 4주기인 1990년 백남준 생일날 그를 위한 위령제 성격의 굿을 벌린 것이다
보이스의 2대 퍼포먼스는 늑대를 주제로 한 것이다. 그는 알래스카공항에서 늑대박제에만 매혹되었다. 미국의 뉴멕시코 주 미국인디언중심지에는 코요테(Coyote)늑대를 토산물로 한 것이 부지기수다. 티셔츠, 목걸이, 자기, 토기에 이곳은 코요테를 벗으로 해서 자라고 백님 미국인은 코요테를 마구잡이로 죽인다. 그래도 코요테는 늘어난다. 그 질긴 생명력은 만주벌판에 기인된 한국인의 2백만 명으로 번창하여 연길대학을 경형하는 성공에 통한다. 늑대가 우는 차량함은 차이코프스키의 5번 교향곡 1악장에 비등하다. 청선 보이스는 타르타르인촌에서 배운 것은 몽고굿과 더불어 늑대의 처량한 울음이었으리라. - 백남준의 <얼(정신), 얼음, 어른(장자), 얼은 미디어 즉 굿> 중에서
최재영의 백남준사진은 독일에서 그의 행위예술을 찍은 피터 무어(Peter Moore) 나 만프레드 레베(Manfred Lebe 2007년에 한국방문)와 80년대 미국에서 공부할 때 백남준을 찍은 임영균작가와 도 다른 차별된 한국적 사진예술의 미학, 소박하면서도 정감어린 사진으로 잘 보여준다. 보도사진에서 채득한 모든 기술만이 아니라 그의 삶에서 경험한 영혼의 기운까지 다 기울여 찍은 사진이다.
최재영 작가의 사진미학은 매우 한국의 원초적 색채와 냄새가 물씬 나고 극적이면서 자연스럽고 백남준의 익살과 해학과 함께 그가 가지고 있는 인간적 매력과 예술가로서의 카리스마를 한국적 정감에 맞게 잘 연출하고 다큐사진이면서 그 이상을 뛰어넘는 예술사진으로 승화시켰다. 시각만 아니라 촉각까지 자극하는 사진이다. 사진을 진실을 찍어내야 하지만 그 이상이다.
백남준의 굿판에서는 사진에서 보듯 그릇과 요강이 나오는데 그것을 바로 악기의 역할을 한다. 정작 악기인 피아노는 관이 되어 있고 이것은 서양의 근대의 상징으로 이를 장례치는 것 제례라고 볼 수 있다. 이런 행위예술은 백남준의 모든 굿판에서 일관되게 행해진다. 즉 서양 중심의 예술판을 뒤집어놓는 것이다.
일종의 파란이나 파토하고 할 수 있는데 이렇게 하지 않고는 백남준은 한국이 세계미술판에서 제 목소리와 제 역할을 할 수 없다고 본 것이다. 일종의 세계미술헤게모니를 되찾기 위한 혁명이었던 것이다. 백남준은 동서를 넘어 미술과 음악 예술과 과학도 뛰어넘는 시공을 초월하는 스케일이 웅장한 예술을 창안하여 세계적 작가로 부가되어 우뚝 솟아오르다
갤러리아트링크(www.artlink.co.kr) 안국동 17-6 02) 738-0738
총괄기획: 문인희(Inhee Iris Moon) 오프닝 리센션및 추모제 2011.01.25 오후 3시33분
진혼무:임이조 굿:이수연, 황진경 이별가: 정경숙 국악: 곽효상, 이주성, 감치이 서예: 문동원 기획: 강현중
어려서 기억인데 우리집에서는 1년에 한 번씩 무당을 데려다 굿을 했다. 아마 집의 일이 잘 풀리라고 하는 재수굿이었을 것이다. 구태여 내가 한국춤에 대한 체험이 언제냐고 물으면 이때부터를 꼽을 수 있겠다. 그때 단골로 오는 무당이 애꾸여서 우리는 그를 애꾸무당이라고 불렸다. 음식을 차려놓고 징 치고 북치고 하는 것 좋아서 본 것이 아니라 밤새도록 춤을 추니까 볼 수밖에 없었는데 어떻든 인상에 남는 일이다. 나는 나의 비디오프로그램에 오락적인 요소로서 우리춤을 가미한다. 우선 재미있으니까. 이 그림은 유럽에서 한 번 그렸고 이번이 두 번째다. - 백남준 1985년 8월 <월간 춤>의 글 중에서
백남준의 소꿉친구 이경희여사께서 고백남준추모 5주기를 맞아 1월29일 제례를 올렸다(사진 백남준아트센터)
신묘년 양력 1월 29일 갑신일에 경기문화재단 대표이사 권영빈은 백남준선생님께 밝혀 고합니다.
올해로 서세하신지 어언 5년이 되고 돌아가신 날이 돌아왔습니다. 송구하게도 유지와 친우들이 모여서 간단하게 추모하는 고유를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이 영원이 사시는 집이 완공되고 개관한지 불과 수년 밖에 않았지만 한국문화를 부식시키고 찬연하게 하는 본연지처가 되고 있습니다. 선생님이 돌아가신 것을 추모하는 마음 저 하늘 같이 아득하기만 합니다. 맑은 술과 작은 정성을 올리오니 흠향하소서!
이날 KBS MBC SBS 등 한국방송언론매체가 나 왔다. 최재영의 작품을 보는 순간 마치 백남준의 굿을 직접 보는 것 같은 착가에 빠졌다. 최재영작가는 나에게 직접 그 당시의 상황을 일어준다. 일단 그 날도 수많은 사진작가들이 왔는데 일체 움직이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운 좋게 최작가는 가장 좋은 자리에 안잤고 늘 필름을 최대로 많이 가지고 다니는 덕분에 그리고 망원렌즈 사진기 등 모든 장비를 다 구비한 준비된 촬영이었기 때문에 좋은 장면들이 많이 찍혔단다.
진혼무(Dance for the repose of the deceased)를 추는 임이조 서울시무용단장
갤러리 아트링크 가운데 마당에 벌어진 백남준 추모굿이 열리는 곳 음악연주자들과 제례음식
관객과 직접 소통하는 만신 이수연
한국의 무속신앙은 불교(4세기)와 성리학(neo-confucianism, 신유교 14세기)이 도입된 이후에 국가적 종교전통의 총집합소가 되었다. 무속신앙은 20세기 초부터 민속학자의 주요 연구대상이 되어 왔다. 무속인 중에 2/3가량은 여성무당이다. 그들은 초자연적 세계와 특별한 방식으로 관계를 맺고 있을 뿐만 아니라 반도의 여러 지역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 구전전통이나 특별한 무용, 음악 등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무속인은 5천만 정도로 추정되는 남한인은 현재적 발전상황에 대단히 잘 적응하고 있다. - <인류학사전>(집필자 기예르모 A. Guillermoz) 중 한국편
굿소리 음악연주자들. 장구: 이주성 징: 김차이 만수받이 소리: 원미희, 박지연, 정유나
외국인도 제의에 음복을 하고 절을 하며 영신하다
만신 이수연의 굿, 현재 경기도 양주에서 무업의 일가를 이루다 경기이북 굿 계승자
백남준 넉받이 대감거리를 시연 중이다. 깃발을 관객에게 고루게 하여 점을 치는 것이다. 일종의 덕담이다.
이수연 경기이북 굿 계승자의 작두타기
이수연이 굿이 절정에 올라 작두타기를 시작하다. 가운데 카메라 두 대를 매고 웃으시는 분이 바로 최재영 선생이다. 정말 사진을 열심히 찍는 것을 보고 감동받았다.
아무튼 이제 결론을 말해야 할 것 같다. 문화전쟁시대 특히 한중일의 세계주도권을 다투는 시점에서 우리가 살아남으려면 굿이 가지고 있는 살림과 생명의 철학을 예술적 상상력을 통해 21세기 시대정신에 맞게 바꾸는 재창조하는 것이 급선무일 것이다.
굿에서 가장 중요한 건 뒷풀이다. 그리고 참여와 나눔이다. 굿이 끝나면 음식은 나눠 먹는다. 사진 양시영작가
[백남준의 예술적 동지이자 경쟁자이기도 했던 요셉 보이스 다시보기]
Anzai Shigeo I '백남준, 요셉 보이스, Sogetsu Kaikan' 1984년 6월 2일 도쿄 1984 jpartmuseum/g_gen
Warteschlangen am letzten Tag der Ausstellung Joseph Beuys. Parallelprozesse in der Kunstsammlung am Grabbeplatz 그라베광장 앞에 요셉 보이스 추모전을 감상하기 위해서 길게 줄을 늘어선 관객들
[작가소개] Joseph Beuys (May 12 1921 Krefeld–January 23 1986 Düsseldorf) was a German performance artist, sculptor, installation artist, graphic artist, art theorist and pedagogue of art. His extensive work is grounded in concepts of humanism, social philosophy and anthroposophy; it culminates in his "extended definition of art" and the idea of social sculpture as a gesamtkunstwerk, for which he claimed a creative, participatory role in shaping society and politics. His career was characterized by passionate, even acrimonious public debate, but he is now regarded as one of the most influential artists of the 20th century http://en.wikipedia.org/wiki/Joseph_Beuys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대규모 전시를 열기도 한 독일 작가 요셉 보이스는 1963년 독일의 화랑에서 백남준의 ‘음악전람회-전자 텔레비전’ 장에 모자를 쓰고 나타나 전시장에 놓여 있던 피아노를 도끼로 부수기 시작했다. 그가 아시아의 한 무명작가의 전시장에 등장한 것은 화단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그는 1960년대에 "모든 사람들이 다 예술가다!"라는 주장으로 파문을 일으켰다. 당시 뒤셀도르프 미대교수였던 그가 예술교육의 필요성을 부인하고 있었으니, 이런 주장은 용납할 수 없고 무책임한 선동자의 표본으로 여겨졌었다. 그는 나중에 대학강단에서 쫓겨난다. 그는 스스로 국제자유미술대학을 설립하기도 했다.
요셉 보이스처럼 현대미술 전반에 깊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 작가도 드물다. 그가 생전에 남긴 많은 행위와 진지한 연설들은 그의 광적인 기질과 함께 현대미술의 지워지지 않는 신화가 되었다. 1986년 그가 사망한 이후로 미술사가와 그의 예술세계에 깊이 매료되어 있던 '보이스추종자'들은 보이스의 재발견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요셉 보이스가 출연한 영화〈딜링어〉포스터. 실크스크린 1974. 저작권자 김순주
그는 깽판 중에 깽판이다. 그는 진정한 신이다. 니체의 후손이다. 깽판의 깽판은 바로 창조이기 때문이다.
백남준 I 요셉 보이스
[게르하르트 리히터(Gerhard Richter)특별전] - '세기의 거장전(Bilder einer Epoche)'
- 부체리우스 아트포럼미술관(Bucerius Art Forum 함부르크시)에서 2011.02.05-2011.05.15
Gerhard Richter 'Motorboot' 1965 Privatsammlung(개인소장) © Gerhard Richter, Köln 2011
그의 작품은 비빔밥이다. 사진, 회화, 추상, 구상 다 뒤죽박죽이다. 통섭, 융합, 하이브리드의 미술이다. 현존하는 최고의 작가다. 동독출신으로 사실주의와 팝아트 그리고 시대정신의 정수가 잡식과 혼탕의 방식으로 표출된다. 일관된 작업 방식을 갖고 있지 않으며 끝없는 불확실성을 추구하는 작가다.
"나는 어떤 목표도, 체계도, 경향도, 강령도, 양식도, 방향도 갖고 있지 않다" - 작가의 말
미술전시와 시민교육의 장인 함부르크 시 중심가에 있는 부체리우스아트포럼미술관 전시장 입구
Bucerius Kunst Forum Im Herzen Hamburgs, unmittelbar neben dem Rathaus gelegen, zeigt das Bucerius Kunst Forum jährlich vier Ausstellungen von der Antike bis zur Gegenwart. Es ist ein Ort des Austauschs und der Begegnung in allen Bereichen der Bildenden Kunst.
Gerhard Richter besichtigt gemeinsam mit Ortrud Westheider und Uwe Schneede die Ausstellung "Bilder einer Epoche" '세기의 거장전' 전시장을 둘러보는 게르하르트 리히터(가운데)
<사진과 내용출처> http://www.buceriuskunstforum.de/h/ausstellungen_3_de.php
[황진 展-Rainbow, 북촌(사람들)] 갤러리담에서 2011년1월20일(목)-2011년2월5일(토)까지 설날휴무
서울특별시 종로구 안국동 7-1 02)738-2745 www.gallerydam.com
황진사진, 반복하므로 존재한다는 믿음으로 작업한다. 웃으면 빛이 된다. 파도처럼 반복하고 싶다. 사진이 내 종교라 믿는다. 이른 아침, 우연히 무지개를 보았다. 북악산 위에서... - 작가의 말 중에서
조각가나 사진가보다는 컬렉터라고도 알려져 있는 황진작가는 늘 북촌을 어슬렁거리며 다닌다. 사진이 종교라고 믿는 그는 날마다 이곳저곳을 두리번거리면서 사람을 위주로 작업을 하고 있다. 어찌 보면 북촌사람들보다도 더 북촌의 삶을 살고 있는 이가 바로 황진이다.
이번 <레이보우, 북촌>에서는 사실 부암동에 사는 그가 낙원동에 작업실을 둔 까닭도 바로 북촌언저리에서 방황하는 적당한 명분을 주기도 한다. 북촌에는 여러 사람들이 있다. 어디 가나 있는 밥집인데도 유독 '계동마나님'의 주인을 본 사람들은 그 집을 아주 좋아해서 중독처럼 다니거나, 아님 아주 손을 내절 정도로 독특한 곳이기도 하다.
이번 전시는 북촌 하늘을 우연히 바라보다가 찍은 무지개를 보면서 이곳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삶과 소망을 찍기로 한 사진들이다. 그래서인가, 사람만이 아니라 사람의 형상을 한 조형물에 이르기까지 황진 사진가의 손을 거쳐 간 피사체들은 그들의 삶과 생각을 고스란히 잘 녹여내고 있다. 이번 전시회에는 북촌 사람들 20여명과 골목길들이 보여줄 예정이다 [미술관자료]
[작가소개] 황진(黃辰 Whang Jin 1963~) 1987년 강릉대 조소과 졸업 1994년 Art Student League of NY 1996년 Kapa사진전문학원 졸업
[개인전] 2010 황진사진전(공간바오밥나무, 갤러리소머리국밥, 목인갤러리, 공간 살롱 드 플라워) 2008 '황진사진전-해태가사는집'(목인갤러리) '황진해피투게더'(갤러리라메르) 2007 '황진사진전'(갤러리담) 2006 '산, 오름, 보름찾기'(목인갤러리) 2005 '황진사진전'(황진사진관. 진돗개해피칼라) 2004 '황진사진전'(해피칼라) 2003 '황진-나의 사진은 점점 재미있어진다'(갤러리카페 작은숲) 2002 '황진-꽃'(갤러리사계) 1995 '황진조각전-Body Study'(예맥화랑) 1987 '황진사진전'(예맥화랑)
[키스헤링의 멘토-릴랑가전] 갤러리통큰갤러리에서 2011.02.02-03.01까지 www.africarho.co.kr
732-3848, 070-4001-2430 서울시 종로구 관훈동 74번지 2층
시대의 반역자, 이단아 혹은 창조자
1958년생인 키스해링(Keith Haring), 그는 세간에 알려진 것처럼 미국의 팝 아티스트이다. 1934년생인 릴랑가(George Lilanga), 그는 세간에 알려지지 않은 아프리카 탄자니아의 팝 아티스트이다. 당뇨 합병증으로 두 다리를 잘라내면서도 그림그리기를 멈추지 않은 릴랑가, 에이즈로 죽어가면서도 그림 그리기를 포기하지 않은 키스해링, 그 둘은 시대의 흐름에는 매서운 마음을 지닌 진보주의자였지만, 예술이 인간과 세계를 선(善)의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데 생각 멈추기를 포기하지 않았던 멋진 창조자였다.
릴랑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조롱을 받았다. 신성한 나무인 흑단(ebony)에 색을 칠하고, 사람들의 모습을 우스꽝스럽게 표현했기 때문이다.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릴랑가는 반역(?)에의 길을 걸었다. 다양한 색채의 사용을 통해 전통적인 금기를 깼고, 형태의 유연함에서 인간의 자유로움을 다시 생각하게 했다. 이는 예술과 낙서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예술의 중심에 인간을 세운 키스해링과 닮은꼴이다. 예술을 대중 가까이로 끌어들인 릴랑가와 키스해링, 그들은 서로 다르지 않은 길을 걸었던 시대의 이단아였다.
릴랑가 I '치과에서' 145cm*179cm
인간을 향한 행렬 - 휴머니스트 혹은 소피스트
릴랑가의 그림에 등장하는 신의 모습은 인간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큰 귀를 가진 이 신은 쉐타니(shetani)라고 불리는데 근엄하기보다는 어린 아이처럼 익살스럽고 귀엽게 생겼다. 릴랑가의 쉐타니는 사람들을 하나의 세계로 묶어내면서 인간의 삶과 의식을 평화의 세계로 인도한다. 이것은 마치 키스해링이 ‘아기’라는 주제를 통해 평화를 이야기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아기를 자신의 로고로 사용한 키스헤링, 쉐타니를 인간의 존재의미와 관련시킨 릴랑가, 그 둘은 인간을 이해하는데 앞장을 선 진정한 휴머니스트였다.
릴랑가와 키스해링, 그들의 생각은 그림만큼이나 닮았다. 예술은 소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것, 인간과 세상을 하나로 묶어준다는 마법에 걸려 릴랑가는 아프리카뿐만이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40회의 전시회를 가졌다. 예술은 특정한 몇몇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대중과의 소통을 위한 것이라며 키스해링은 세계 곳곳의 학교나 공장, 병원의 벽에 그림을 그렸다. 솔직하고 스스럼없이 그림을 그리고, 대중과의 소통에 생각의 끝을 멈추지 않은 그들은 분명 같은 궤도에 서 있었던 현대의 소피스트였는지도 모른다.
하모니를 위하여 - 낙관주의자 혹은 혁명가
공동체를 향한 릴랑가의 이데아는 생명의 나무라고 불리는 우자마(Ujama)에서 비롯됐다. 인간과 동식물이 하나의 뿌리에서 시작했음을 알려주는 즉 ‘우리’와도 같은 말이 우자마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릴랑가는 인간과 신,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를 둘이 아닌 하나로 받아들이는데서 삶에의 원동력이 생긴다고 하였다. 이는 키스해링이 의식과 무의식, 삶과 죽음의 관계에서 오는 긴장감을 생명의 에너지로 받아들인다는 것과 상통하는 말이다. 그런 힘의 사용을 주저하지 않은 두 사람, 그들은 서로 다른 세계의 집합을 굳게 믿었던 지독한 낙관주의자였다.
서로 다름에도 불구하고 함께 하나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은 아무나 갖는 것이 아니다. 선(善)에의 지향을 예술가의 속성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길 때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예술은 인간과 세계를 하나로 묶어준다는 것, 예술은 소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대중과의 소통을 위한 것, 이는 어떤 차이나 차별도 없이 모두가 함께 하나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인간과 세계의 다양함을 팝아트적인 형식으로 표현하면서 회화의 영역을 넓혀나간 릴랑가와 키스해링, 그들은 행동주의적 예술가의 길을 걸은 혁명가나 다름없었다. [미술관자료]
[개인전] 2011 "Mentor of Keith Haring, Lilanga" Gallery Tongkeun, Seoul, Korea
2008 "Live a life like a child" Africa Museum of Art. Seoul, Korea
2006 "George Lilanga" Mori Art Museum. Tokyo, Japan
2005 "George Lilanga" Hayward Gallery. London, UK
2004 "Tingatinga and Lilanga" Kouchi Prefecture Art Museum. Kouchi, Japan
2003 "Lilanga d’ici et d’ailleurs" Centre Culturel François Mitterrand Périgueux, France
2003 "George Lilanga" Christa’s Fine Tribal Art Gallery. Copenhague, Denmark
2002 "Georges Linlanga" MAMCO. Geneva Swiss
1999 "Storie Africane" Franco Cancelliere Arte Contemporanea. Messina, Italy
1995 "Lilanga's Artist in Residence and Workshop" Hiroshima City Moderne Art Museum. Japan
[해외전시] 美 뉴욕 휘트니미술관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 1882-1867) 특별전
짙은 고독의 그림자… 20세기 미국의 뒷모습 (뉴욕=손정미 기자)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1/01/31/2011013102386.html
Edward Hopper(1882-1867)
Edward Hopper(July 22, 1882–May 15, 1967) was a prominent American realist painter and printmaker. While most popularly known for his oil paintings, he was equally proficient as a watercolorist and printmaker in etching. In both his urban and rural scenes, his spare and finely calculated renderings reflected his personal vision of modern American life. With his paintings, Hopper paid particular attention to geometrical design and the careful placement of human figures in proper balance with their environment. He was a slow and methodical artist; as he wrote, "It takes a long time for an idea to strike. Then I have to think about it for a long time. I don’t start painting until I have it all worked out in my mind. I’m all right when I get to the easel" http//en.wikipedia.org/wiki/Edward_Hopper
Edward Hopper Shop Suey 1929 <사진출처> 아래 사이트
http://masmoulin.blog.lemonde.fr/2010/08/10/edward-hopper-peintre-americain-elements-de-biographie-dessins-huiles-et-aquarelles-american-painter-biography/
에드워드 호퍼는 가리고 싶은 인간 내면의 고독과 소외 그리고 허무함과 쓸쓸함을 가감없이 드러내고 이를 예술적 경지까지 끌어올려 미국인들의 사랑을 받는 작가가 되었다. 그의 작품을 보면 "그래 저게 바로 우리가 사는 모습이야"라는 말이 절로 터져 나오면서 순간적으로 그림 속 일상과 소통하게 하여 사람들에게 하찮은 일상의 소중함과 산다는 것의 숨은 아름다움을 새롭게 발견하게 한다.
<쉬어가는 코너> [프랑스영화감상] 상영날짜 2011년 2월 15일 화요일 저녁 8시20분
매주 화요일 저녁 8시20분에 동숭아트센터에서 한국어 자막지원의 프랑스 영화를 보실수 있다. 선정된 한 주제에 관련된 영화들을 두달간 상영한다. 요금: 7000원 감독: Djinn CARRÉNARD 배우: Emilia Derou-Bernal, Vincent Perez, Salomé Blechmans
인간관계의 복잡한 실타래를 실험적인 형식으로 연출한 수작. 인물들은 서로 다른 상황 하에 처해있지만 타인과의 관계를 맺어나가면서 부딪치는 장벽이라는 공동의 문제를 안고 있다. 그들이 시도하는 소통의 과정 속에는 권력, 유혹, 침묵, 희생이라는 요소를 내재한다. 아직 어려서 인생의 경험이 부족할 것 같은 인물들을 매개로 인생의 본질적인 부분을 제대로 건드리는 솜씨가 주목할 만하다. 아이티 출신의 젊은 감독이 내놓은 장편 데뷔작이다(PIFF 이수원) 상영날짜: 2011년 2월 15일 화요일 저녁 8시20분 동숭아트센터
'세시봉' 친구들 다 모였죠. 60년 후반, 70년 초 통기타세대 주역들, 일본 풍 대중가요를 전복시킨 반항아들
도(Tao) 철학 20가지 개념
1 Tout change tout le temps : je ne peux donc rien tenir pour acquis
모든 것을 변한다 집착하지 마라
2 Chaque chose implique son contraire : c'est pourquoi je renonce à porter des jugements
행복 속에 불행있고 불행 속에 행복 있다. 판단을 하지 마라
3 L'énergie qui me traverse me vient de l'univers Mais c'est à moi de la cultiver
에너지(기)는 우주에서 나오는 것으로 나를 키운다.
4 Je m'habitue à penser en termes de yin et de yang
나는 음양의 조화를 통해 사고한다
5 Avant de combattre les événements j'essaie d'abord de m'y adapter
어떤 사건과 갈등을 일으키기 전에 거기에 적응하라
6 J'apprends à "non agir" : je fais ce qui doit être fait, sans m'inquiéter des résultats
불안감 없이 평정을 가지고 노는 무위(no action)를 배워라.
7 J'évite les excès et vise en toute chose le "milieu juste"
지나침을 피해라 중용을 지켜라
8 Je n'oublie pas que le but de ma vie est de me perfectionner
인생의 목표가 수신임을 기억하라
9 Avant de me lancer dans l'action, je m'interroge sur les énergies en présence
행동을 하기 전에 현존하는 에너지에 대해서 물어라
10 Je me conforme à la "volonté du ciel" et j'accepte ce que je ne peux changer
하늘의 뜻을 따르라 내가 변할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여라.
11 Je cultive la "chan attitude" : je reste calme et centré en toutes circonstances
태도의 도를 쌓아라 중심을 잡고 평상을 잃지 마라
12 Chaque chose arrive en son temps : je cultive la patience, l'art de savoir attendre
때를 기다려라 참을성을 키워라. 기다리는 기술을 배워라
13 Je reste à ma place et cultive la modestie en toute occasion
분수를 알고 사리를 분별하라.
14 Je fais très attention à tout ce qui sort de ma bouche
내 입에서 나오는 언어 등 모든 것을 조심하라.
15 Je change de regard sur les personnes âgées
나이 든 어른들의 말을 경청하라
16 Je choisis mes amis avec le plus grand discernement
친구를 분별력 있게 사궈라
17 Je limite mes exigences et sais me contenter de ce que j'ai
자족하며 자신을 알라
18 Je simplifie ma vie et sélectionne attentivement mes loisirs
삶을 단순화하고 마음의 여유를 가져라
19 J'exerce constamment mes facultés d'observation
사물을 관찰하는 능력을 기워라
20 Je respecte mon corps et l'entretiens avec soin
자신의 몸을 사랑하고 잘 관리하라 - 글쓴이 Brigitte Durand
<출처> http://www.ffeminin.com/?_p=frameView&flux=52721 프랑스여성잡지 글 중에서
[북아프리카 민주화열기 화끈 달아오르다 - 이집트, 튀니지, 알제리 등] 정부를 규탄하는 시위에 참여한 각계각층의 튀니지시민들, 그들은 영광스럽게 벨벳혁명을 성공시키다.
1981년 이래 무바라크대통령 이집트 통치 30년 이제 끝내라 충분하다. AFP
탱크 위에 환호하는 카이로 시민들 Photo : AP Ben Curtis
이집트는 군대마저 시민편이다. 30년독재 무바라크대통령이 최대위기를 맞고 있다. 미국은 고민이 크다.
Triny Prada face book 사진 중에서
[신간소개] 제3세계 전문가 월러스틴(Immanuel Maurice Wallerstein 1930~)의 <세계체제론>
월러스틴이 쓴 근대 세계-체제 제2권(1980)
세계체제론(世界體制論, World System Theory) 또는 세계체제이론은 세계 하나의 사회체제로 파악하여 중심부와 주변부의 비대칭적 관계를 설명하는 이론이다. 1970년대 중반 뉴욕주립대교수인 임매뉴얼 M. 월러스틴(I. M. Wallerstein)이 주창했다 - 위키페디아
월러스틴이 유명해진 것은 1974년에 제1권이 나왔고 그 후 80년대까지 모두 3권이 출간된 <근대세계-체제>라는 책 때문이다. 이 책은 16-18세기 사이 세계경제의 발전을 다루고 있는데 나오자마자 근대자본주의를 이해하는 새로운 틀을 제공했다는 높은 평가와 함께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그는 원래 아프리카를 연구한 사회학자로 종속이론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종속이론이란 50-60년대에 맑시즘영향을 받아 라틴아메리카에서 발전한 이론으로 선진국-후진국 사이의 구조적인 지배-예속 관계를 밝히고 거기에서 벗어나는 길을 모색하려 한 이론이다.
그러므로 그가 아프리카를 연구한 것도 아프리카를 통해 20세기 후반에 있어 선진국과 제3세계 사이의 불평등하고 부정의한 관계를 폭로하려는 목적에서였다.
그런데 그는 여기에 머물지 않고 연구를 16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세계의 역사로 확대했다. 오늘날 제3세계의 종속이 16세기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1450-1640년('긴 16세기')에 서유럽은 자본주의의 기초를 처음 확립했고 그러면서 짧은 기간 내에 전 세계의 많은 지역들을 예속시켰다는 것이다.
이렇게 세계가 하나의 경제의 틀로 묶인 것을 그는 세계-체제라고 부른다. 물론 그 중심부에 있는 것은 당연히 서유럽이다. 그 주위에 반주변부-주변부가 둘러싸고 있으며 중심부와 반주변부 주변부 사이에는 착취와 예속관계가 만들어진다. 오늘날 제 3세계의 빈곤은 수백 년 동안 중심부의 착취를 받아온 주변부이기 때문이다.
이런 주장에 따르면 서유럽은 500년 전부터 지구상의 다른 어느 곳보다 경제적으로 우월한 상태에 있었고 지금도 그런 상태에 있다. 따라서 제3세계가 이런 강고한 예속관계에서 벗어날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월러스틴의 세계체제론을 접하는 제3세계 사람들이 신선한 느낌을 받으면서도 뭔가 답답한 심정을 가지지 않을 수 없는 이유이다. 이는 그의 이론이 해방적인 성격을 갖고 있으면서도 한편에서 서양의 우월을 역사적인 면에서 고정된 구조로 만들기 때문이다. - 이화여대 강철구 교수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40071217190434&Section=04
[참고blog] http://haanel01.tistory.com/4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