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무어먼] <11강> 무어먼 공연 중 과노출로 검거
<주제: 정음 정양(음양조화) 여성과 남성 위상(?) 행복함(음양조화) 이루어지는 성해방?> 철학은 쉬운 것, 우주와 남녀의 음양 조화(원리)를 아는 게 철학이다. <유튜브 추가 예정>
철학을 어렵게 말하는 사람을 철학을 잘 모르는 사람. 음양 조화 백남준은 서양의 플러스와 동양의 마이너스가 잘 합쳐지면, 제로점 거기서 완벽한 세상 음양조화 그의 대표작 'TV정원' 자연(음) 반, 문명(양) 반 조화가 인류 문명이 나아갈 길로 봤다. 백남준 생태주의 철학 반영(?) 1부) 인트로, 2부) 색채란 무엇인가? 백남준과 칸딘스키, 3부) 남녀를 음양(+/-) 조화론으로 해석 [[작성 중]]
[백남준&성] 칸딘스키, 추상 색채론, 무어먼과 액션 음악
<예언자, 미리 보는 견자(Voyant) 백남준> 50년 전에 이미 내다보다. TV 부처: 동양 지혜와 철학&서양의 과학과 하이테크 만나야. 이우환, 돌과 철의 관계망 생성 즉 음양 조화로운 세상 중요하다. 동양과 서양의 조화와 만남도 중요하다. 유라시아의 시대.
[[리뷰]] <인류학 안에서 모든 지식과 정보가 통섭이 되는 시대> 작가는 우주 만물을 통찰하고, 세계 인류와 대화하는 자다 여기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시대정신을 읽어야 한다는 점이다. 지금은 유라시아 시대, 학문에서는 인류학 안에서 모든 지식-정보가 통섭
<인트로 1번> [백남준 상(Nam June Paik Award), 2년마다 상금 25,000 유로, 독일 뒤셀도르프 미술관(예술재단 North Rhine-Westphalia)이나 상을 받는 작가가 행복] 백남준의 5대 정신 1) 비주얼(visual)하게 생각 2) 사운드를 통해서 영감을 받는다 3) 하이테크를 최대로 활용 4)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융합 혹은 비빔밥 5) 유머감각으로 엉킨 수수께끼를 푸는 센스로 경계를 허무는 모험 정신 등등
Nam June Paik Award. International Media Award of the Arts Foundation North Rhine-Westphalia // Thinking visually, being inspired by sound, experimenting with technology, either analogue or digital, breaking boundaries all with an enigmatic sense of humour – this is what we expect of the projects under consideration for the international media art prize the Nam June Paik Award and the corresponding Newcomer Award, both provided by Kunststiftung NRW.
<인트로 2번> 백남준은 재즈 찬양했다. 재즈는 흑인과 백인을 이어주는 첫 번째 끈이다. 재즈는 미국에서 백인과 흑인을 화해시키고 연결시키는 미디어 즉 네트워킹. 사실 미국 대중음악에서 백인이 흑인을 따라가지 못했다. 그래서 백인들 엘리스 프레슬리를 좋아하는 것이다. 엘비스는 미국의 흑인 가수과 어깨를 나란히 했기에.
김기덕 감독은 1960년 12월 20일 경북 봉화에서 태어난 가난한 기독교 가정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한국 전쟁 참전 용사(1950-1953) 전쟁 중 부상을 당했고 성격이 난폭했다고. 어머니는 거의 장님. 김 감독은 초등학교 졸업 후 공장에 일 했다. 5년 동안 해병대에서 복무하고, 복음주의 신학교 시각 장애인을 위한 안내 센터에서 일하다 -르몽드 김기덕 감독, 학력이 초등학교 졸업이 다다. 백남준 작품을 보고 크게 영감을 받아 프랑스로 무조건 그림 공부를 하러 떠나다. 두 천재는 거의 동급이 되었다. 한 사람은 베니스비엔날레 황금사자상 또 한 사람은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 물론 그 급이 다르지만 상으로만 보면 비슷하다.
<인트로 3번> Il se lance en parallèle dans la peinture et, après la lecture d’un article sur le pionnier de l’art vidéo, le Sud-Coréen Nam June Paik, part en 1990 pour Paris où il étudie les beaux-arts. 한국의 백남준에 관한 기사를 읽은 후,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1990년 파리로 떠나 미술 공부.
어려서 불우한 가정에서 자란 김기덕 감독, 그러나 중간에 백남준으로부터 큰 영감을 받았군요> 아래 르몽드 기사. 김기덕 감독은 1960년 12월 20일 경북 봉화에서 태어난 가난한 기독교 가정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한국 전쟁 참전 용사(1950-1953) 부상을 입었고 성격은 난폭했다. 어머니는 거의 장님. 김 감독은 초등학교 졸업 후 공장에 일 했다. 5년 동안 해병대에서 복무하고, 복음주의 신학교 시각 장애인을 위한 안내 센터에서 참석[...]
<인트로 4번> [피카소와 백남준 차이] 피카소 페인팅은 정말 대단한 보물 같은 인류의 재산이다 그래서 소유적인 면이 강하다. 컬랙터 돈을 엄청나게 벌 수도 있다. 백남준은 개념미술가 비디오 철학자다. 그의 작품은 소유할 수 없다. 존재하는 작품이다. 세계문화유산 혹은 문화재이다. 가격이 비싸지 않다. 그러나 그의 아이디어는 영원하게 빛난다. 예컨대 인터넷 같은 예언 말이다.
<인트로 5번> <굿의 예술화 추구한 백남준 아트> 연구는 한국인이 해야 -나의 주장
<긋으로 보는 백남준의 전자 아트 읽기> - 박정진(인류학자). 미국과 유럽 미술사가들이 백남준 연구에 한계점은 그들이 동양의 사상을 이해하기 쉽지 않듯 백남준의 핵심 사상이 굿 미디어론을 이해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물론 서양의 인류학으로 접근하기 할 수 있 수 있지만 죽었다 깨어나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백남준 연구는 한국인이 해야 한다. 백남준의 전자 굿에 대한 이해 없이 백남준의 이해는 불가능하다. 그런 면에서 박정진의 백남준 연구는 돋보인다. <참고> 잭 구디(영국 인류학자)
"서구 중심주의 벗어나 전 세계 문명사를 치우침 없이 조명하다"라는 평가를 받다.
<인트로 5번> 40년 간 백남준 줄기차게 비판해온 전 MIT 교수였던 '홍가이' 선생과 백남준의 전자기술자이면서 백남준 팩토리를 주관했던 '마크 파스팔' 미국 신시내티대 교수
<인트로 6번> 한국이나 중국에도 '한 여름밤의 꿈'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매년 태음력으로 칠월 칠석에 두 개의 별 '견우와 직녀' 만났다는 이야기다. 두 별이 한여름밤에 만나면 훼방꾼들이 보지 못하게 <구름>이 그들을 가리고, 다음날 아침이면 떠나야만 하는 연인을 축복하기 위해 단물 같은 <비>가 내린다. 그래서 동양에서 칠월 칠석의 밤이 젊은 남녀에 의해 경축되는 시간이 되었다 백남준 유명한 작품 <1984년 (1월 1월) 굿모닝 미스터 오웰>의 아이디어 여기서 온 것이다. 백남준의 말
<백남준과 한국인과 천문학> <천문학과 음양오행론 태극 사상> 고조선 고구려 등 오랫동안 북두칠성을 믿었다. 한국인의 신앙관에서 이것을 빼놓고 상상할 수 없다 조선이라는 한자의 朝 자에서 보면 역시 북두칠성 한자가 들어가 있다. 흔히 우리의 어른들은 칠성님에게 빈다는 말을 한다. 대인은 천문을 통해 한 해를 통째로 보고 살았고, 현대인은 분주하게 하루하루 앞만 보고 산다. 한국은 천문학의 나라 모든 이야기는 별과 해와 달에서 기원한다 우리 민족의 원초적 하느님이다.
우리 문화는 모두가 이것과 즉 천문학과 관련이 되어 있다. 북두칠성에도 음양과 오행이 들어가 있다. 동의보감도 천문학을 의학으로 푼 책이다. 절에 가보면 대웅전 뒤편에도 칠성각(칠성신)이 있다. 그만큼 이 신앙은 한국인의 일상과 긴밀하게 연결. 우리에게 칠성신은 우리의 생사를 주관하는 신이기에 우리는 죽을 때 관 속에 칠성판을 둔다 http://blog.daum.net/skachstj/16457930
인류학에서는 원시종교와 고등 종교를 구분 않는다. High Art와 Low Art를 구분하기 힘든 시대. 무교는 모든 종교의 원형. 우리나라 역사에서 무교가 망한 적은 없다. 왜 여성성이 강하기 때문이다. 불교 유교 선교(도교)는 몇 번씩 망했다. 백남준은 무교(샤머니즘)를 그의 예술적 영감의 원형으로 보다.
[본문] 백남준의 색채론:
하나 <1> 색동의 현대화, 색채를 시간으로 보다
[백남준 색동] 생동하는 생명이 움직이는 샤먼 색 요즘 백남준의 색동이 대박을 치고 있다. 많은 작가들이 새로운 버전의 색동을 개발하고 있다. 윤미연 작가가 역시 그렇다 [암 투병 중 색동색 환영을 보다] 가장 한국적 색인 색동, 그 현묘한 색이 연출하는 현란한 조형세계를 오랫동안 뜸 들인 후 드디어 출동시키다. 오브제들 춤을 추니 더욱 기운생동. 2019년 베니스 비엔날레 때에도 스와치(Swatch) 재단의 스폰서를 받고 특별 초대전을 열 윤미연 작가, 그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그녀 속에 잠재한 무한대 상상계. 그 속에 숨겨진 전혀 새로운 색채 언어를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해 유감없이 표출. 2019 베니스 비엔날레 아르세날레에서 취재
둘 <2>, 백남준은 색채를 시간뿐만 아니라 성으로 보기도 하다. 이건 동양의 전통이다.
[예] 사람을 볼 때 선을 본다. 그 사람의 얼굴색을 본다. 거기서 에로스를 감지할 수 있다.
다음 백남준은 색깔을 색으로 보다 비디오에서 백남준 전문가 장 폴 파르지에 촬영한 영상이다 여기서 색이 왜 중요한지 설명하다 www.youtube.com/watch?v=2pYAUppfiXk
원문을 보면 (De la couleur dans la video vient de ce que la couleur est une fonction primaire du sexe 컬러는 성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함수(기능)이다 비디오 아트에도 해당된다) 또 백남준의 맥루한, 맑스, 존 케이지, 마치우나스, 앤디 워홀, 슈톡하우젠, 스탕달, 발레리, 론 자아(에고)론, 돈에 대한 철학 등이 언급 [결론] 백남준은 소유적 미술을 비소유적 미술로 바뀌려고 했다. 무소유적인 음악적 미술로 바뀌려고 했다. 실제로 불가능할 수 있지만 앞으로 가능할 수도 있다.
우선 백남준에게 색깔은 시간(역할)을 한다고 봤다. 모든 사물이 봄에는 그린과 푸른색이 되고, 여름에는 빨간색이 되고, 가을에는 그레이나 누런색이 되고 겨울은 흑백이 된다. 이렇듯 백남준은 색채와 시간(계절)은 긴밀한 관계가 있다고 보다. 그런 면에서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에서 색깔은 시간을 의미한다(color=time) 그리고 동양사상을 설명하면서 색을 성으로 보다. 사람을 볼 때 색채가 중요하다. 안색을 보면 성을 알 수 있다고 생각했다.
백남준 색채론 2 : 칸딘스키+백남준, 음악적 추상회화 창안
[칸딘스키] 안 보이는 시간-음악을 보이는 '색채와 미술(점·선·면)'로 표현
결론으로 음악적인 회화를 공감각 차원에서 새롭게 시도하다. 칸딘스키는 괴테의 색채론 창조적으로 활용해 전자 아트처럼 서양미술사에게 매우 파격적 추상화를 창시했다. 칸딘스키는 선과 색으로 진동과 울림 효과를 내면서 색채의 상징성과 정신성도 중시. 흔히 '회화적 작곡'이라고도 한다.
색채는 주관적인 ‘생리 색’으로부터 중간단계의 ‘물리 색’, 그리고 객관화된 ‘화학 색’의 3단계로 존재한다. 화학 색은 노랑·파랑·빨강·주황·녹색·보라의 6가지 색으로 구성된다. 이 6가지 색은 인간 내면과 각각의 방식으로 관련된다. 이를 괴테는 1809년 발표한 ‘정신과 영혼의 상징화를 위한 색상환’에서 지극히 심리적인 언어로 구분해 표현한다.
칸딘스키는 (음악을 색채로 표현한 추상화)> 괴테의 *색채론 영감을 받다 발명하다. 괴테는 색채에 상징성 부여하다/칸딘스키는 초록색(COLOR)=바이올린(SOUND) 이런 방식으로 색과 음을 연관 연상 관계를 맺다. 이것을 상징적 추상화로 재해석해 그리다. 괴테 색채론에서 근거한 것으로 빛과 색채, 빛과 소리를 연결해 보려고 하다.
괴테는 색의 특성을 구별하면서 빨강은 정열과 흥분, 파랑은 수축과 차분함 등 색들에 상징적이고 신비적 의미를 부여하다. 색이 감각적이고 도덕적이며 미학적인 목적에 사용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인간의 지각에 바탕을 둔 괴테의 색채론은 당시의 자연철학의 특징인 ‘우주에 대한 이중적 개념’과 일치한 면을 보였다.
이처럼 괴테는 ‘정신과 육체, 영혼과 육체, 신과 인간 사이의 분리를 내포한 자연의 기계론적 개념’을 거부하고, “색채는 밝음과 어둠의 양극적 대립 현상이고, 인간의 감각과 연관되었다”고 인정했던 반면, 뉴턴은 “색채는 관찰자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 객관적 대상으로 단색(單色) 광선들의 결합 유무와 그 정도에 따라 생성된다”고 여겼다.
[에피소드] 서구에서 열린 세계 아동 그림대회에서 비발디 4계절을 들려주고 그림을 그리는 것. 한국 어린이들 당황했고, 칸딘스키를 이해했다면 (공감각 미술을 알았다면) 아무 문제가 없었을 텐데...
칸딘스키는 음악을 미술로 그리는 거의 첫 화가였고 그래서 추상화가 잉태되었죠. 그래서 음악과 미술이 넘나드는(CROSS OVER) 공감각[시각과 청각 등을 같이 느끼다]이 중요. 그렇게 공감각 미술이 등장하죠. 칸디스키와 파울 클레가 이런 시도를 한 셈. www.youtube.com/watch?v=2xDnxkzQtdI
<칸딘스키&백남준> 칸딘스키 보이지 않는 음악을 가시적인 추상화 컬러로 재구성해 표현. 그래서 음악적 (추상) 회화를 창시. 백남준 전자 빛(전자 붓) 통해 보이는 이미지를 보이지 않는 사운드로 비디오 아트 창시
백남준의 계보학 1) 라우센버그 White Painting, 존 케이지 4분 33초 무음과 잡음을 현대음악으로 확장, 백남준 노이즈 전자 페인팅, 2) 보들레르 공감각 상징 시학(괴테의 영감을 받은) 점·선·면 칸딘스키 음악적 추상화-백남준 전자 추상 아트
[결론] 백남준은 남성적 미술을 여성적 미술로 바뀌다 그래서 혁명이다. 즉 이미지(눈 남자들 시각에 엄청 예민하다)를 소리(귀 여자들 청각에 엄청 예민하다)로 바꾼 것이다. 그것이 바로 비디오 아트이다. 폴 베를렌은 "무엇보다 음악(De la musique)" 이 말이 좀 이해가 된다. 음악은 여성이다.
진정한 전시란 뭔가?: 전시에 미술보다 음악이다 코로나 시대에 좋은 전시가 오히려 필요하다? 이런 시대의 모습을 압축해서 인류학적인 풍경. 이런 관찰을 계속하다 보면 뭔가 보일 수 있다. 그것이 새로운 인류문명의 단초가 될 수 있다.예술은 필수불가결(Bon travail. L'art c'est necessaaire)"
백남준의 첫 전시 모습은 <소대가리-음악의 전시>까지. 여기서 하나의 혁명이 일어났다.
뉴턴에서 시작한 괴테 *색채론을 발전하고 그걸 응용한 칸딘스키(음악적 요소를 색채로 표현한 추상화) 그리고 백남준 이것을 (전자 추상)으로 바꾸다. 이들의 공통점은 공감각 미술 계열이라는 점. 괴테 왈 “시인으로서 내가 이룩한 모든 것에 대해 나는 조금도 자만하고 있지 않아 […] 그러나 금세기 중에 난해한 학문인 ‘색채론’ 나는 스스로 적잖이 자랑스러워.” 『괴테고백』
보이지 않는 것을 상징적 추상을 통해 보이게 하는 그림의 전통을 칸딘스키가 새롭게 시도하다. 칸딘스키 바우하우스 교수를 하면서 이런 시도를 더욱 확장하다. 그리고 이것이 또한 백남준 전자 추상에도 영향을 주다.
양혜규 작품을 보면 칸딘스키 추상화를 100년이 지난 지금, 최고 정점으로 끌어올린 인상을 줍니다. 그의 음악적 회화를 백 배 천 배 그 이상 업그레이드시켜 21세기형 설치미술 풍경화로 탈바꿈
이런 작품들은 악보(음계)를 그린 것 같다. 회화로 음악을 듣는 것 같다. 미로를 헤매는 불쌍하고 처참한 인생 여정을 조금 압축해서 상징적으로 그린 것인가. 파울 클레는 7살부터 바이올린 연주할 정도로 음악적 재능도 뛰어났다. 어딘지 작품 속에서 연주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그는 바우하우스 뒤셀도르프 교수 초빙 그러나 나치 시절 퇴폐 미술가로 분류가 되어 102점 작품이 몰수. "나는 이 세상의 언어로만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죽은 자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사람들과 행복하게 살기 때문이다. 일반인보다 창조의 핵심이 더 가까워지긴 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파울 클레
보이지 않는 걸 노래하는 시로 쓰려면 (빛깔-소리-향기로 묘사하는) '상징시'가 필요하듯,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는 그림으로 그리려면 (점-선-면으로 그리는)'추상화'가 필요하다. 보이지 않는 음악을 보이는 미술로 변형시키다. 둘의 공통점은 공감각. 전자 추상 아트로 시간 예술로 탈바꿈시킨 것이 바로 백남준이다.
[백남준 혁명] IMAGE(이미지=SIGHT) -> SOUND(사운드)
백남준 첫 전시가 음악의 전시(EXPOSITIO OF MUSIC)다. 이미지를 추방하고 사운드를 영접하는 전시 "나의 TV는 물리학적 음악 -백남준" 게다가 TV=악기로 보다.
백남준은 '이미지(Image)'를 '사운드(Sound)'로 코드 변경하다] 우리는 이미지를 중시하는가 사운드를 중시하는가 나는 후자라고 생각한다. 서양은 언어가 존재의 집이 이라고 하지만 우리는 존재 속에 언어가 있다. 서양은 세계 속에 존재하고 우리는 존재 속에 세계가 있다고 본다. 자연은 진화하고 언어는 문화 한다. 신바람은 오르고 내리고 혹은 신바람이 난다(수평). 신바람은 우주가 하나로 공명하는 것을 말하다. 우리는 신바람과 풍류도 그리고 기운생동을 중시한다.
철학은 쉬운 것, 우주와 남녀의 음양 원리를 아는 게 철학이다. 철학을 어렵게 이야기하는 사람을 철학을 잘 모르는 사람. 음양 조화가 중요한 게 여기서 나온다. 플러스와 마이너스가 잘 합쳐지면, 제로점(완벽한 세상)이 나온다.
백남준은 남성적 미술을 여성적 미술로 바뀌려 했다 그래서 혁명이다. 즉 이미지(눈, 남자들 시각에 엄청 예민하다)를 사운드(귀, 여자들 청각에 엄청 예민하다)로 바꾼 것이다. 그것이 바로 비디오 아트이다. 폴 베를렌은 "무엇보다 음악(De la musique avant toute chose)" 이 말이 좀 이해가 된다. 음악은 여성이다. 무엇보다 예술은 여성, 그런 면에서 상징주의 시인들 Baudelaire, Mallarme, Rimbaud, Verlaine 등과 상통
<음양의 조화는 남녀의 사랑 원리가 같다> 동서고금[동양(東)과 서양(西), 선사시대(古)와 21세기-30세기(今]을 통시적으로 봐야(수평 수직으로 봐야) 세상이 제대로 보인다. 밭 전(田 경작 Culture) 문화의 원형에는 수평과 수직이 있다. 모든 철자는 수평과 수직으로 구성되어 있다. 과학은 수평과 수직을 잘 잡는 것이다. 수평과 수직은 원래 추상이다. 인간만이 추상을 통해 진화된 사고를 할 수 있다.
인간은 수평과 수직 모양을 한 밭을 잘 갈아야 곡식을 얻듯 인간은 여자가 애를 안 낳으면 생존할 수 없다. 멸종한다. 그래서 여성이 인류의 MATRIX(근본)이다. 그런 면에서 인간은 원시 모계사회로 가야. 노자의 위대함은 이런 여성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점. 나는 남성 위주의 공자보다 여성 위주의 노자를 한 수 위로 본다.
남성들은 대부분 먹통인데 여성은 귀가 발달했다. 왜 남성이 "사랑한다" "예쁘다"라는 말을 듣기 위해서다. 그리고 육아를 할 때 아이의 우는 소리를 바로 알아듣고 그 아이가 원하는 것을 빨리 해결해줘야 하기에. 남자 사냥 기질 본능이다. 그림을 보다가 음악이 들리면 현대미술을 잘 감상하는 것이다. 칸딘스키부터 백남준까지 그렇다. 남성에서 여성으로 백남준 미술의 코드를 바꾼 것이다.
남자는 여자를 보면 불안하지 않다. 왜 그런가. 한문의 어원을 보면 알 수 있다> 불안(不安)은 미안(未安)해 하지 않을 때 온다. 그래서 불안하다. 반성하지 않으면 불안해진다. *안(安)을 직역하면 집에 여자가 있다는 의미, 그래서 집(나라, 지구촌)에 여성성(생명 보살핌과 평화정신)이 없으면 불안하다. 불안(不安)과 미안(未安)과 편안(便安)은 긴밀한 관계가 있다고. "미안해야 불안이 없어지고 편안해진다"
노자는 2500년 전에 생명의 본질인 연약함, 유연함 등의 여성성의 가치를 최고로 찬양하다. 여성에게 행복한 나라 만들기, 여성의 성이 행복해야 나라가 행복하다. 스코틀랜드는 중고와 대학에서 세계 최초로 모든 여성들에게 생리대 무료로 제공한다. 혁명적 법이 통과. '생리 빈곤'을 종식시키기 위해서다.
[평] 백남준의 1962년 퍼포먼스(앨리슨 놀즈를 위한 세레나데(Serenade fur Alison)에서 여성은 생명을 잉태하는 거룩 존재로 그녀들의 생리혈은 보호-찬양받아야 한다는 퍼포먼스를 벌린 적이 있다
여기서 본문 시작
https://www.youtube.com/watch?v=oKG_1JndAdA
<1964년> 독일 생활 7년 청산, 뉴욕으로
1964년 이야기하기 전에 1962년에 이야기를 해야 한다
[백남준 아트센터] 2013년 1년 29일부터 3월 2일까지 열린 백남준 전시 제목 부드러운 교란 도록에 나오는 자료사진. 백남준 1962년 10명 남자가 나와서 하는 심포니 퍼포먼스, 어떤 것인지 상상해 보기 바란다. 백남준 왜 이런 극단적 방식을 취했을까? 그 답은 아주 간단하다. 인간이 너무나 극단적 관념에 찌들고 그 감옥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 그래서 백남준도 극단적 방식을 취하다. 시게코 여사도 같은 종류의 퍼포먼스를 했다. 인간이 관념에 노예가 되어 끔쩍도 안 한다. 피아노 퍼포먼스를 보면 여러 번 반복. 왜 끔쩍도 안 한다. 남여차원
다시 말해 <극단적 관념주의 추방굿>이었던 것이다. 이 문제가 백남준에게는 너무나 시급했던 과제였다. 다시 전쟁이 일어나는 걸 막으려 했다. 백남준 육체(대상 종속됨)가 아니라 신체(주체 정체성)를 표현하다.
<백남준과 뒤샹 그리고 쿠르베>
<서양미술사와 누드 아트> 누드를 안 그린 화가는 화가가 아니다 하나, 백남준과 샬럿 무어먼 백남준의 토플리스 이전에 이전의 뒤샹의 유명한 작품 샘이 있고 그것 이전에 쿠르베의 생명의 기원이 있다. 서양의 미술사는 누드의 역사다. 백남준과 뒤샹의 차이는 백남준은 100% 여성이 되려고 했고 뒤샹은 50% 여성이 되려고 했다 <오마이뉴스> http://omn.kr/1gybp
남성용 변기가 '현대미술'의 상징이 된 이유
국립현대미술관 '마르셀 뒤샹전'... '레디메이드' 창안 등 그의 작품세계 경험할 기회
www.ohmynews.com
<본론> 세기의 예술적 파트너, 백남준과 살렷 무어먼
-예술이라는 이름의 외설과 예술의 표현의 자유보장의 갈등
기계적인 사회일수록 시(은유)를 쓰고 음악(소리)을 들어야 정신병에 걸리지 않는다. 철학은 언어로 하는 것이 아니라 소리로 하는 것이다. 그래야 심신의 균형이 온다. 말씀 이전에 소리 즉 자연이다. -박정진 <백남준의 소리 미학(sound art)>이 중요해지는 이유다.
추신 "샬럿 무어먼 없었더라면 난 음악을 그만 두었을 것이다. 그녀를 알게 되고 그녀가 첼로를 연주한다는 걸 알았을 때, 나는 섹스와 연결된 적이 없었던 음악을 이제 다시 연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백남준
<사진> 로봇 'K-456'과 함께 1964년 백남준과 샬럿 무어먼이 찍은 사진. 두 사람은 마치 연인처럼 다정하게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피터 무어(Peter Moore) 백남준 평생 예술적 파트너 샬럿 무어먼. 1964년 뉴욕에서 백남준을 처음 만나다. 불행하게도 57세 요절하다. 후반에 암 투병으로 배가 임신한 사람처럼 나오기도 했다. 백남준 무어먼 의료보험이 없어 어려울 때 여러 번 치료를 대신 내주다.
<백남준은 남성과 여성을 굳이 구별하지 않고 그 경계를 없애다 그러다 보니 불가능한 성의 아트를 추구하다. 그럼 면에서 매우 선각적 페미니즘적 안목을 가지고 있었다
백남준에 없어서는 안 되는 환상적인 예술파트너 샬럿 무어먼 뉴욕 명문 음악학교 줄리아드에서 졸업 65년까지 미국 국립 교양악단 단원으로 첼로를 연주했다. 그러나 65년 이후 완전히 거기서 떠나다. 학창 시절 미스 진에 뽑힐 정도로 외모도 빼어났다. 천재 예술가답게 57세에 요절하다.
백남준이 65 어떻게 미국 뉴욕에 정착하게 됐는지 알아보자. 백남준이 뉴욕에 도착한 1964년 미국은 인종 분리를 끝내는 '시민권법'이 제정되어 민주주의가 더 고조되는 시기였다. 1년 전 문화예술계에선 전위예술의 총집합한 '뉴욕 아방가르드 페스티벌'이 '샬럿 무어먼(Charlotte Moorman)'에 의해 출범됐다. 1964년부터 달 착률 1969년까지 「미국은 최고 전성기」 「팝아트 전성기」
샬럿 무어먼은 1964년 '제2회 뉴욕 아방가르드 페스티벌'을 맞아 그 위상을 높이려 두루 인재를 찾고 있었는데 '존 케이지'와 '슈톡하우젠(독일 전자음악 작곡가)'이 백남준을 중요인물로 천거하자 그를 초대키로 한 것이다. 백남준은 1961년 독일에서 공연한 '괴짜들' 중 '머리를 위한 선' 등으로 이미 확고한 명성
<참고> 백남준 비디오 철학자 www.furtherfield.org/nam-june-paik-video-philosopher/
Nam June Paik – Video Philosopher - Furtherfield
Lynn Hershman Leeson interviews Nam June Paik. A historical interview between acknowledged pioneers of video and media arts. First published by Artweek, April 1980 Electronic Art and posted here on Furtherfield to celebrate the upcoming publication of Hers
www.furtherfield.org